사진은 사실 인상주의와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단 사진은 대상의 형태를 정밀하게 묘사할 의무에서 화가들을 해방시켜주었다. 인상주의자들이 형태의 정확성을 포기한 채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 효과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도실은 사진이 그동안 회화가 해온 그 과제를 넘겨받은 덕이었다. 인상주의자들은 기억을 돕는 자료(aide-mémoire)로 종종 사진을 사용했다.
사진을 사용하는 데 부정적이던 모네조차도 실은 지베르니에서 루앙대성당을 그릴 때 사진을 참조했다고 한다.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베냐민은 얼룩덜룩한 색점들로 이어진 인상주의 회화가 대도시인의 지각 방식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 P177

19세기 후반에 서구의 미술은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빠른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1850년 이후 채 50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수많은 예술 언어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20세기에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예술, 즉 ‘모더니즘’ 예술이등장한다. 흔히 ‘아방가르드(avant-garde)‘라 불리는 이 급진적인 예술도19세기 후반에 일어난 다양한 예술운동이 없었더라면 결코 탄생할 수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시기에 서구의 미술에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걸까? 미술사가들은 흔히 그 요인으로 유럽 안의 전통‘과
‘유럽 밖의 영감‘,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꼽곤 한다. - P181

빛과 물감은 성질이 다르다. 빛은 섞으면 섞을수록 밝아지는 반면, 물감은 섞으면 섞을수록 어두워진다. 이는물감으로 빛을 그린다는 인상주의의의 기획에 중요한 장애가 된다.
신인상주의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쇠라와 시냐크는 명도의 저하 없이 혼합색을 얻기 위해 물감을 섞는 대신에 원색의 색점을 화폭위에서 병치하는, 이른바 ‘색광주의‘를 제안한다. 이 이론에 따라 미세한 색점들로 화면을 구축하는 것을 ‘분할주의‘라 부른다. 분할주의를 적용할 경우 원칙적으로 화면에는 삼원색만 남게 된다. 후기로 갈수록 신인상주의 화면은 원색에 가까워져 강렬한 표현성을 띠게 된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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