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고전미술‘의 이념은 19세기 중반에 여기저기서 거센 도전을받게 된다. 여기서 ‘고전미술‘이라 함은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classicisme)를 거쳐 신고전주의(néoclassicisme)로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의 주류를 가리킨다. 물론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바로크(baroque)나 로코코(rococo), 혹은 낭만주의(romantisme)를 생각해보라. 하지만 이 일탈마저도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고전미술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아니었다. 그렇게 500년 동안 지속되던 이 강고한 고전미술의 이념이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술의 현대성(modernity)‘이 이미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 P17
먼저 형식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르네상스 이후 500여 년에 걸쳐 서양미술을 지탱해온 기본적 규약은 ‘원근법‘이었다. 원근법은 한마디로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중세 미술의화면은 어디까지나 2차원 구성의 평면‘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x, y축에 새로 z축을 추가하여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의 깊이를만들어내려 했다. 원래 원근법은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FilippoBrunelleschi, 1377~1446)가 건축주에게 앞으로 지어질 건물의 완성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 개발한 투시법이다.‘ 이 기술은 그의 나이 어린 제자이자 친구인 마사초(Masaccio, 1401~1428)에 의해 처음으로 회화에 도입되기에 이른다. - P18
고전미술이 원근법적으로 구축된 공간 속에 소묘와 채색을 통해 실물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묘사를 한 것도 실은 환영 효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교훈을더 생생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고전미술의 중요한특성이 도출된다. 즉,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 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고전미학을 완성한 철학자 헤겔은 미를 ‘이념의 감각적현현‘으로 정의한 바 있다. 즉, 미란 정신적 메시지를 물질적 매체에 담아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 P28
말하자면 이 세 가지가 고전미술의 주요한 제재‘를 이룬다. 이렇게 회화의 제재로 채택된 이야기를 ‘이스토리아(istoria)‘라 부른다. ‘이스토리아‘를 흔히 ‘역사(history)‘로 옮기곤 하나, 그 말의 원뜻은 ‘이야기(story)‘에 더 가깝다. 미술사에서 말하는 ‘역사화‘란 역사적위인을 다룬 회화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이 성서든, 신화든, 역사든, 그 안에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그림은 모두 ‘역사화‘ 라 불린다. - P29
과거의 미술은 자신을 ‘아름다운 가상‘으로 이해했다. 이 고전적 이념을 무너뜨린 것은 쿠르베의 사실주의였다. 사실주의는 19세기의 과학적 실증주의, 사진술의 발명, 그리고 1848년 혁명이 낳은 예술이었다. 과거의미술이 신화나 성서 속의 ‘허구‘를 그렸다면, 쿠르베는 자신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민중의 ‘현실‘을 그리려 했다. 과거의 예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자들은 미술의 목표를 ‘진실‘에서 찾았다. 진실이 늘 밝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의 추하고 어두운 모습마저도 만약 그것이현실이라면, 기꺼이 작품 안에 받아들이려 했다. - P35
미술에 현대성이 관철되는 과정은 ‘아름다운 가상‘ 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전미술의 붕괴는 19세기 중엽에 사실주의(réalisme)와 더불어 시작된다. 이는 ‘미술‘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사실주의를 미술 이념으로 내세운 것은 외려 쥘 샹플뢰리 (JulesChampfleury, 1821~1889)나 에드몽 뒤랑티와 같은 문필가들이었다. 문학의 영역에서 사실주의 운동은 스탕달과 발자크의 소설에서 그 모습을드러낸 후,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1857)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에 미술에서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사실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Courbet, 1819~1877)다. - P37
사실주의는 한마디로 고전적 예술 이념에 대한 안티테제라 할 수 있다. 18세기 초반 예술의 주류로 행세하던 것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미술이었다. 전자는 차가운 이성을, 후자는 열정과 상상력을 강조하지만, 두 흐름 모두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을 공유하고있었다. 신고전주의는 신화 · 성서 · 역사라는 전통적 제재(‘이스토리아‘)를고수한 반면, 낭만주의는 상상을 자극하는 기이하거나 이국적인 사건에 집착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흐름 모두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였다. 그렇지만 사실주의자들은 달랐다. - P38
사실주의의 등장은 1850년을 전후하여 서구인들이 세계를 육안이 아니라 렌즈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독일의 평론가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에서 사진술이 ‘아우라적 지각 방식을 파괴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실에 시적 분위기를 씌우는 게 아니라 거기서 일체의 분위기를 걷어내고 그것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 사실주의 회화를 지배하는 일상성과 냉담함의 느낌은 이 새로운 지각 방식의 예술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P43
사실주의 회화에서 비로소 민중은 역사상 최초로 예술의 주인공으로등장한다. 과거에 민중은 회화에 등장하더라도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사실주의 회화에서 민중이 예술적 영웅이 될 수 있었던것은, 그 시기에 일어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 민중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떠오른 것과 관련이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표현된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사실주의 회화는 1848년 2월 혁명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2월 혁명 이후서로 동지였던 시민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갈등이 불거진다. 쿠르베는 1872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파리코뮌)에 참여했다가 혁명이 실패한 후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한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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