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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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난다. 주인공은 마이너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고 극단적인 경험을 한다. 그 중 하나가 죽음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렇지만 장르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의 흡입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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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는 너무 난폭했고, 테네브리즘에 너무 치우쳤어요. 루벤스는 돈을 너무 많이 벌었고, 통통한 여자를 너무 좋아했지요. 아이도 너무 많이 낳았고요. 그리고 렘브란트는 너무 교만했어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52

서양 회화가 급변하는 19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앵그르와 들라크루아와 쿠르베 등 세 명의 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19세기에는 미술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급변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57

단순히 스폰서가 왕에서 시민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 시장이 탄생했다는 것도 커다란 변화였습니다. 그 결과, 화가는 남들에게 의뢰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작품을 그려 시장에서 파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60

또 한 가지 서양 회화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은 사진의 등장입니다. 이전까지 서양 회화는 무조건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존재 의미였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63

사실과 똑같이 묘사한다는 부분에서는 사진을 당해낼 수 없다는, 이른바 사실성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두 가지 커다란 혁명의 결과, 사회 전체가 격변해나가는 와중에 회화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19세기 이후 서양 미술의 중심은 프랑스가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63

에콜 드 보자르를 졸업하고 로마 상을 받고 살롱에서 입선해서 최종적으로는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는 것이 당시의 출세 코스였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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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인 시민이 미술의 스폰서이기 때문에 화려한 종교화나 역사화보다는 초상화나 풍속화가 선호되었습니다. 또한 시민의 가정에 장식할 만한 크지 않은 작품이 많았습니다. 페르메이르32의 작품은 실로 네덜란드 회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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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신이 무너지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매우 극적인 기적의 순간을 그린 것이지요. 그런데 루벤스는 카라바조만큼 테네브리즘에 집착하지 않았어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192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여신들. 일반적으로 아글라이아(빛의 여신), 에우프로시네(기쁨의 여신), 탈리아(만발한 꽃의 여신)를 가리킨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10

카라바조의 바로크가 ‘빛과 그림자의 대비’였다면, 루벤스의 바로크는 ‘과잉’이 키워드입니다. 작품 수도 너무 많고, 소통도 너무 잘하고, 과하게 통통하고 어린 여자를 좋아하고, 그리고 아이도 너무 많이 낳았죠. ‘인생에는 지나침이 없다!’라는 느낌이 작품에도 묻어나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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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의 화면은 후기로 갈수록 표현성이 강해진다. 거기서 후기 인상주의가 탄생한다. 사실 후기 인상주의는 더 이상 인상주의 운동의 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가 없다. 후기 인상주의 화면은 외부 사물의 ‘인상(impression)‘이 아니라 내면의 정서적 표현(expression)‘에 가깝기 때문이다. 고흐의 작품에는 아직신인상주의에서 유래한 분할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고갱의 작품에서는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다. 대상은 어두운 윤곽선으로 둘러싸이고, 그 안쪽은 실제로 보이는 것과 관계없는 표현적 색채로 처리된다.
고흐와 고갱은 조형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림이 동시에 정신의 표현이 되게 했다. - P221

고흐에게도 색채는그저 재현의 수단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는 "색은 그자체로 뭔가를 표현한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고흐는 노랑을 좋아했다.
노랑이 감정적 진실의 상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서 노랑은 태양과 삶과 신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초기의 모노크롬에서 벗어나 색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온전한 색채의 형이상학‘에 빠져든다.
색의 상징주의. 이 중세의 전통이 동시에 현대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칸딘스키는 모든 색에 저마다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고흐의 작품은 그 밖에도 다양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 P235

상징주의는 19세기 후반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상징‘이란 가시적인 것 속에 담긴비가시적 의미를 가리킨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가시적 세계를 그저 ‘재현‘ 하려 했다면, 상징주의는 가시적 대상을 비가시적인 의미의 ‘상징‘으로 제시하려 한다. 이를테면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스핑크스나 오르페우스의 형상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어두운 힘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상징주의는 독일·오스트리아 · 노르웨이 등으로 뻗어나가 하나의 국제적 운동이 된다. 20세기 미술 특유의 상징적 성격은 상징주의 운동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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