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19세기 유럽 빈곤층이 먹던 호밀빵과 2020년 한국에서 시판하는 호밀빵은 재료나 기법, 보존 환경 등 모든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사실 어린 시절의 내가 맛보고 싶었던 것은 물리적인 검은 빵 자체가 아니었다. 알프스 고원의 전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향긋한 냄새가 나는 마른풀 침대와 천장에 난 창문으로 올려다보는 별하늘, 병약하지만 상냥하고 예쁜 금발 머리의 단짝 친구, 학교에 가지 않고 온종일 염소들과 뛰노는 삶…… 한마디로, 나는 현실의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을 ‘검은 빵’에 대입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빵은 이미 내가 원하는 검은 빵이 아니라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내게 검은 빵이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027 - P28

호밀빵, 그중에서도 천연 발효한 반죽으로 만든 호밀빵을 뜻한다. ‘흑빵’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호밀은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밀보다 재배가 쉬워서 예로부터 유럽에서 주식으로 먹었다. 특히 북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호밀빵을 많이 먹었고, 그 외 지역에서도 서민층이 쉽게 얻을 수 있는 탄수화물 공급원으로 통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에 가까웠다. 호밀은 밀과는 달리 특유의 시큼한 맛과 향이 난다. -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027 - P28

오늘날에는 제빵 기술의 발달로 그나마 먹기 좋을 만큼 부드럽게 개량된 호밀빵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섬유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고 혈당 지수가 낮기 때문에 당뇨 환자나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 좋다. 꼭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그 담백한 맛과 특유의 알싸한 향 때문에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면 맛도 좋거니와 포만감도 오래가서 한 끼 식사로 그만이다. -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3027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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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모멘트 아케이드moment arcade에 들어섭니다. 사람들의 모든 순간이 짧게 가공되어 업로드되는 곳. 누군가가 체험한 기억 데이터를 사고파는 기억 거래소 모멘트 아케이드. 저는 산책하듯 아케이드 여기저기를 걸어 다닙니다.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 - P178

모멘터가 체험한 어떤 순간의 감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니까요. 저처럼 인생에서 아무런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는 사람에겐 공부가 된답니다. 아, 사람들은 저 순간에 저렇게 감정을 느끼는구나, 하고요.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 - P180

"그만 죽고 싶다."
엄마는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이렇게 반어법으로 표현했어요.
"죽긴 왜 죽어.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려야지."
저는 이렇게 반어법으로 답하며 엄마와 이별할 날만을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 - P185

자기의 업보마저 잊은 불완전한 반쪽짜리 인생. 저는 그런 인생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허탈했어요. 당신 애들이 정말 잘 지내고 있느냐고 멱살을 잡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습니다. 멋대로 다 잊은 사람에게 무얼 더 바라나요. 엄마의 비겁한 인생이 고스란히 내 것 같았어요.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 - P187

저는 그 인생에서 나온 더 불완전한 인생이었으니까요. 엄마와 저는 불행의 공동 채무자였어요.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 - P188

엄마는 그 후에도 종종 되돌려봐야 상처만 소환되는 비루한 과거로 시간여행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말했죠.

‘내가 원해서 엄마 딸로 태어난 게 아니야.’

그렇게 제 삶의 의미까지 덩달아 부정하는 순간, 제 삶에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어요. 애써 잊으려 노력해왔는데 엄마의 치매로 또렷이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엄마를 견디지 못하는 만큼, 제 삶을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을요.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 - P188

엄마의 치료비는 전부 제 빚으로 남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엄마의 빚을 갚다 끝날 것이라는 차가운 선고를 마주했습니다.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 - P190

세상은 제게 엄마만큼이나 무책임해 보였습니다. 엄마가 죽고 난 뒤 옆집 아주머니가 위로한다고 찾아와 종교를 권할 땐 정말이지 한숨이 나더군요. 밥 한 끼 먹자고 연락해준 지인이 다단계 가입을 제안하자 화를 내고 말았어요. 연락도 뜸하던 친구가 보낸 모바일 청첩장을 보곤 연락처를 삭제해버렸지요. 어쩜 하나같이 다들 무심하고 무정한지. 술에 취해 비틀거렸던 어느 밤, 제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를 느끼고 파출소로 달려갔던 날엔 집에 돌아와 한참 울었습니다. 약하고 상처 입은 사람이 이용당하기 쉬운 세상. 엄마만큼이나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무례하고 난폭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환멸을 느꼈습니다. 저는 결국 골방에 처박혔습니다.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 - P193

‘살아야겠다.’

깍지 낀 그의 손에서 상대를 놓지 않겠다는 결심이 전해집니다. 소소한 거룩함이 보통의 순간 속에서 선언되는 걸 목격합니다. 이상한 일이죠. 겨우 그 한 시간의 산책을 대리 경험하고 싸늘하게 굳었던 마음이 무너졌어요. 사소하지만 숭고한 순간. 이런 귀중한 마음을 생애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채 죽을 순 없어. - <밤의 얼굴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20771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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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 테이크아웃 3
김학찬 지음, 권신홍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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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날것의 기상천외함이 있다.
얼마전 정말 정신없었던 - 내가 아니고 그 영화가 - 한 영화가 떠올랐다.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엣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근데, 이 단편은 정신 없다가도 담백하다.
왜냐고? 솔직하니까.

거짓말처럼 술술 나오는 입말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다. 팩폭에 당한 느낌이다. 형제란… 부자지간이란… 비틀기가 거의 꽈배기 수준인데 마냥 밉지만은 않은 건 왜지? 나도 집에선 두 살 터울 남동생을 둔 형인데, 하하.

“뽀삐 똥을 치우면서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판사판(理判事判), 동귀어진(同歸於盡)으로 얼굴에 똥칠을 하고 돌아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형을 보면서도 수군거리겠지만, 형을 욕하기 위해 내 얼굴에 똥칠을 할 수는 없었으니, 아버지 잔소리가 옳을 때도 있었다.” - <우리집 강아지> 중에서

티키타카 형제간 사업도 가관이다. 능청도 이런 능청이 없다. 형제사이가 콩가루 집안같은데 가만 보면 ‘뼈’가 있다. 촌철살인의 사회비판이라면 그럼 뼈대있는 집안인가?

“단어를 계속 바꾸고 어순을 끊임없이 조정해라. 붕어빵 뒤집듯 단어와 문장을 계속 뒤집어라. 잘 쓴 리포트를 조심해라. 나쁜 리포트는 잡히지 않지만 잘 쓴 리포트는 걸린다. 좋은 것을 훔치면 모두가 다 안다. 좋은 것은 다른 학생들도 베껴 오니까. 자신이 가져온 게 얼마나 좋은지 알아보질 못하니까. 독특한 표현은 지우고 진부하게 채워라.” - <우리집 강아지> 중에서

이 작가의 소설집이 드디어 나왔다 한다. 필력에 비해 다소 늦은감이 없지 않지만, 꼭 한 번 읽어봐야 겠다. 근데 이 단편이 첫 작품으로 수록되었다 하니… 꼭 사서 읽을 필요가 있나 살짝(?) 망설여진다. 그래서 좀만 더 기다려 보자 하고 전자책 발행 알림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또 다른 앤쏠로지 옴니버스 단편집으로 간다. 이 작가의 또 다른 단편에게 ‘프러포즈’ 하러~ ‘우리집 강아지’ 대추와 함께, 뽀삐 아니고~

이 책의 첫꼽문으로 도입부 첫 문장 하나면 작품 요약 끝!

“모든 형들은 개새끼다 ”
(나 빼고)

근데, 이란성 쌍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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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집 강아지 테이크아웃 3
김학찬 지음, 권신홍 그림 / 미메시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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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이 독특하고 이상한 단편의 첫꼽문이자 한줄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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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김학찬 작가는 이런 도쿄를 찾아온 어느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찾아 헤매는 비일상적인 스토리를 전개합니다. 첫 장면부터 위트가 넘치는 이 작품은, 이 넓은 도쿄에서 하루키를 찾아 헤매는, 현대판 ‘파랑새 찾기’와도 같습니다. 하루키를 찾았는지 아닌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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