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내게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인 확률을 의미했다. 지구상에서는 모든 것이 내게 불리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별 하나하나를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로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느낀다.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곳 말이다. -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9109 - P47

첫째, 우주는 태어난 직후 1조 분의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엄청난 팽창을 했다. 바로 그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빅뱅 이론’이라 하지 않고 그냥 ‘빅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둘째, 약 137억 5,000만 년 전에 태어난 우주는 지금까지도 계속 자라고 있다. 우리는 한 번도 꺼지지 않은 불길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9109 - P70

도플러 이동에 기반을 둔 ‘시선속도(천체가 관측자의 시선 방향에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속도‐옮긴이)’라는 이름이 붙은 복잡한 수학적 계산 방법을 이용해서 스위스의 선구적 천문학자들은 페가수스자리 51b가 모항성에 끼치는 인력 효과를 감지했고, 따라서 거기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유추를 해냈다. 빅풋(미국·캐나다의 로키 산맥 일대에서 목격된다는 전설 속의 미확인 동물‐옮긴이)의 발자국을 보고 빅풋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과 같다. -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9109 - P75

아버지의 그 고백이 내게는 거의 종말처럼 느껴졌다. 나의 삶과 아버지의 삶이 내 머릿속에서 한순간에 모두 스쳐 지나갔고, 그런 다음에야 나는 깨달았다. 아무도 아버지처럼 나를 사랑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도, 거리낌도 없었고, 견줄 데도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 이해한 그 순간, 나는 그것을 잃기 직전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 <우주에서 가장 작은 빛>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9109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라고 믿을 때마다 그것은 예전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장담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 <본즈 앤 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6288 - P71

그날 밤에 나는 세상에 두 가지 허기가 있다는 걸 배웠다. 첫 번째 허기는 치즈버거와 초콜릿 우유로 채울 수 있지만 두 번째 허기는 내 안에서 때를 기다린다. 몇 달, 심지어는 몇 년이고 미룰 수 있어도 언젠가 난 거기에 굴복할 것이다. 마치 내 안에 거대한 구멍이 있고, 일단 그 구멍이 어떤 사람의 형태를 갖추면 오로지 그 사람만이 구멍을 채울 수 있는 듯했다. - <본즈 앤 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6288 - P93

소매를 걷어 올린 빨간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나이 든 남자였는데 — 그래도 하먼 부인보다는 젊었다 — 딱히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바라보지도 않는 듯했다. 버스가 지나가자 그는 차창을 올려다보며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 승객들 얼굴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를 찾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 순간 위쪽 절반이 비스듬하게 잘려 나간 그의 한쪽 귀가 눈에 들어왔다. 귀 때문에 남자는 길고양이 같아 보였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날 계속 바라보더니 버스가 모퉁이를 돌자 손을 들었다. - <본즈 앤 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6288 - P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난 믿기지 않아, 엄마가 이런다는 게. 엄마는 어디 데이트하러 나가지도 않잖아. 하물며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한 주씩이나 보내러 가다니. 그 사람이 도끼 살인마인지 뭔지 모르잖아."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06

"그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사람은 아니잖아. 그 사람은 내 시를 좋아했어. 그래서 자기 책을 스페인어로 번역해달라고 했던 거고. 그러면서 몇 년 동안 편지도 교환하고 전화 통화도 했잖니. 우리는 공통점이 많아. 그 사람도 홀로 네 아들을 키웠어. 나는 원예를 좋아하고 그 사람은 농장을 갖고 있고. 난 초대를 받아 우쭐한 기분이야…….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사람인데."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06

"너 그래서 그러는구나. 이 엄마가, 아니 50대 여자가 남자랑 잘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쨌든 그 사람은 ‘우리 바람이나 피웁시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 그냥 그랬지. ‘우리 농장에 한 주 다녀가시는 건 어때요? 블루보닛이 만발하기 시작했어요. 내 새 책 원고를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낚시도 하고 숲으로 산책도 나가고.’ 닉, 나 좀 봐줘라. 엄마는 오클랜드 카운티 도심의 병원에서 일하잖아. 한 주 동안 숲속을 거닐 생각을 하는 엄마 기분이 어떻겠어? 게다가 블루보닛! 이 엄마한텐 천국일 거야."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07

그녀의 존 외삼촌처럼 콧소리 섞인 남부 특유의 느린 말투로 계속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텍사스는 어떻게 알아요? 그 옛날 노래를 어떻게 알아요? 이혼은 언제 했어요? 아들들은 어때요? 술은 왜 안 마셔요? 왜 알코올중독이 되었었죠? 왜 다른 사람들의 책을 번역해요? 곤란하고 괴로운 질문들이었지만, 그렇게 관심을 받으니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위로가 되었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08

그녀는 소음이 없는 도시를 보니 어린 시절, 다른 시대가 생각났다. 사이렌 소리도, 교통 소음도, 라디오 소리도 없었다. 말파리가 유리창에 부딪치며 윙윙거렸다. 가위질 소리. 두 남자의 대화 리듬. 더러운 리본을 휘날리는 선풍기 바람에 오래된 잡지책이 바스락거렸다. 이발사는 그녀를 못 본 척했다. 무례해서가 아니라 예의 때문이었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09

"오클랜드에서라면 지금 뭘 하실 시간이에요?" 그가 트럭에 타면서 물었다. 오늘은 소아과에서 일하는 날이었다. 코카인 중독자가 낳은 아기들, 총상 입은 아이들, 에이즈에 감염된 아기들. 탈장과 종기. 대부분 자포자기 상태의 성난 빈민들 상처를 돌보는 일이었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10

"이 계절, 우리 집에 가는 길. 이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픽업트럭은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길을 따라 달렸다. 아무도 없는 그 길은 꽃이 무성하고 공기가 향기로웠다. 분홍, 파랑, 자홍, 빨강. 그 가운데 노란색과 연보라색 꽃들이 흐드러졌다. 향기롭고 더운 바람이 차 안에 가득했다. 엄청난 뇌운이 형성되면서 천지가 노란빛에 휩싸였다. 이 빛을 받은 꽃들이 아득히 이어지며 무지갯빛 광휘를 발했다. 종달새, 들종달새, 붉은깃찌르레기가 길 옆 수로 위로 쏜살같이 날아다녔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트럭 엔진 소리보다 높았다. 마리아는 창턱에 팔뚝을 대고 습한 머리를 내밀어 얼굴을 괴었다. 이제 아직 4월인데 텍사스의 후텁지근한 열기가 온몸에 번졌다. 꽃향기는 마약처럼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10

그녀는 목욕을 하고 자리에 누웠다. 피곤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뭇잎들이 소용돌이치자 주위의 은은한 색채가 흐려졌다. 양철 지붕에 비 내리는 소리. 그녀가 자고 있을 때 딕슨이 와서 그녀가 깰 때까지 옆에 누워 있다가 그들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게 전부였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13

그들은 갈퀴 모양의 발이 달린 욕조 안이나 배 안, 또는 숲속에 들어가 사랑을 나누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비 온 뒤 포치에 아롱거리는 초록빛 속에서 서로를 안았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13

사랑은 무엇일까? 마리아는 자고 있는 그의 반듯한 얼굴선을 보며 자문했다. 사랑한다는 것.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을 수 있을까?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14

그 책이란 테이블 위에 널린 수백 장의 카드를 말하는 것이었다. 왜 이제야 자기 원고를 읽으라는 걸까? 말하기 힘들어서 그러는지 모른다. 그녀도 그럴 때가 있다. 그녀도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말하는 게 너무 힘들면, 그냥 시를 보여줄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대개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16

곧 성큼성큼 뒤따라온 딕슨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기슭에서 밀려나가고 있는 배 위에 올랐다. 그는 키스를 하다 축축한 바닥에 그녀를 내리누르고 그녀의 몸을 나체밀었다. 그들이 서로 껴안고 요동치는 동안 배가 아래위로 출렁이며 빙빙 돌다가 물가의 갈대숲에 흘러들어가 정지했다. 그들은 뜨거운 햇볕 속에서 배와 함께 흔들거리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녀는 그런 넘치는 격정이 단순한 분노에서 오는지 상실감에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일광욕실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그날 밤이 거의 다 새도록 말없이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비가 오기 전에 코요테 우는 소리, 닭들이 나무에 올라앉아 우는 소리를 들었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3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에서 종종 회자되는 ‘오야가차’라는 말이 있다. 부모를 뜻하는 ‘오야‘에, 장난감 캡슐을 자동판매기에서 무작위로 뽑는게임을 지칭하는 ‘가차’가 붙어 ‘오야가차‘이다. 한국어로 ‘부모 뽑기 게임‘ 정도로 옮겨지는 젊은이의 은어이다. 부모를 뽑기장난감에 비교하는 표현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은 "오야가차에서 꽝이 나왔다"라는식의 자학적 뉘앙스로 자주 쓰인다. "부모를 잘못 만난 탓에 인생이 꼬였다"라고 한탄하는 일종의 풍자인 것이다. 뽑기 게임의 승패는 오로지 운에 달려 있다. 모두 선망하는 ‘레어템‘을 뽑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몇 운 좋은 아이들뿐, 대다수의 아이들은 흔해빠지고 변변치 않은 장난감을 뽑고 자신의 불운을 탓한다. - P35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사회학자 울리히 벡 Ulrich Beck이 주장한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개념을 자주 떠올린다. 그는 근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윤택하고 안락한 삶을 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위기에 인류를 노출시켰다고 주장한다. - P42

한국과 일본은 OECD 가입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매우 큰 두나라(2017~2020년 기준 OECD 성별 임금 격차는 한국이 31.5퍼센트로 꼴찌, 일본이 22.5퍼센트로 꼴찌에서 세 번째)이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일하는 여성의 노동 조건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뜻이다. - P58

일본의 디지털 대사전에 당당하게 수록된 ‘여자력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능력, 혹은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줄 아는 능력‘이라고 그럴싸하게 정의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참으로 난감하다. 자신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미의식‘, ‘철저한 자기관리‘, ‘부드러운 말솜씨‘, ‘요리 솜씨를 가꾸는 것‘ 등 남성의 구미에 맞는 여성을 묘사하는 항목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 P61

사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차별로 볼 것인가, 혹은 차이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관점에 따라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차별인가 차이인가 하는 추상적 논란보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개인을 억압하지 않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구체적 방법론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양성평등 문제는 ‘정답‘보다는 ‘해답‘이 필요하다. 일본도 한국도 아직 그 해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다. - P62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 등에 따라 성정체성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과 평가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LGBT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개인적 선택을 문제 삼아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해도 좋은가‘라는 점이야말로 이 문제의 본질이다. - P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 유령들의 패자부활전
장석준.김민섭 지음 / 갈라파고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논픽션과 픽션의 구성이 독특하네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다룬 능력주의(meritocracy)와 우리네 상황을 연관지어 읽어보면 좋을듯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