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한쪽에는 원작이라는 창조물, 다른 한쪽에는 기계번역을 두고 그 사이에 끼어서 옴짝달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이상, 빠져나갈 길을 찾는 것은 둘째 치고 번역이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창의성의 문제를 다시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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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강의에서는 주로 소설과 인문학 텍스트를 다룬다. 예를 들어 1학기에는 도널드 서순의 『유럽문화사』(뿌리와이파리, 2012)와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문학동네, 2014)를 다루고, 2학기에는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교양인, 2011)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하나를 번역해보는 식이다. 인문학 텍스트와 소설을 하나씩 고른 셈이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56

이런 식으로 남의 번역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자신이 번역해나가는 방식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볼 때는 좀 불분명해도, 함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는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함께 번역하고 토론을 하는 과정의 일차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59

어떤 면에서는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를 쓰는 글보다도 관계 속에 있는 자신을 보여주는 번역이 그 사람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61

물론 나는 크게는 강의실이 좋은 번역의 기준들이 언어화되고 체화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지만, 작게는 강의를 둘러싼 나의 자기 비하의 계기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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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석이나 해설 없이 유려한 한국어 문장으로 옮긴 본문만으로 독자를 이해시킨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으리라. 번역은 외국어 실력에서 시작하여 한국어 실력에서 완성된다. -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80946 - P12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의사소통은 번역 과정을 거친다. 새로운 뜻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원문을 옮기는 게 번역이라면, 원뜻을 살리되 자기 상황에 적용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해석이니, 좋은 대본을 정해서 공들여 번역하면 훌륭한 해석도 나올 것이다. 이것이 이상적인 번역이 선사하는 효용이다. 원본 언어를 독자의 언어로 옮겨야 하는 임무를 띤 번역자는 그런 면에서 의사소통의 양편을 두루 보살펴야 하는 힘든 일을 떠맡는다. -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80946 - P12

나는 이 책에서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일뿐 아니라, 외국어 투 표현을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으로 바루는 일이라든지, 전문 영역의 용어를 교양 영역의 용어로 바꾸는 과정까지 번역이라고 넓게 규정했다. -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80946 - P13

이 책의 주제는 공부하는 번역자가 되자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양편을 두루 살펴야 하는 고된 임무를 성실히 완수하려면 꾸준히 공부하는 길밖에 없다. 출발어의 맥락을 잘 파악하려면 배경지식을 꾸준히 쌓아야 하고, 도착어인 한국어의 맥락을 잘 파악하려면 독자의 처지나 조건에 맞게 한국어 표현을 섬세하게 발굴하고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780946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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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사소한 취향이 있다.
소설가가 등장하는 소설은 질색이다. 수험생일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니까. 가슴 조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가까스로 현진건의 <빈처>와 이태준의 <토끼 이야기>를 읽고 다음 중 가장 적절한 것을 골라야만 했다. 운수가 나쁜 현진건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어떻게 <야인시대> 김무옥(이혁재 분)과 얼굴이 똑같지?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17

소설 속 소설가, 영화 속 영화감독을 보고 있으면 호흡이 곤란해졌다.
쉿. 네가 소설가인 건 비밀이 아니야. 그렇다고 등장인물까지 소설가일 필요는 없잖아.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18

모든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공리公理다. 그러나 자신을 팔아먹는 작가는 상상력이 고갈된 것이다. 진실이다. 아무리 궁금하더라도 길의 끝까지 걸어서는 안 된다. 남겨둔 골목이 있어야 한다. 파산한 소설가들에게 할 수 있는 복수를 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책들을 중고서점에 헐값으로 팔았다. 헌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새 책 한 권이 팔리지 않을 테니까.
취향은 집요해야 한다.
그렇게 알고 있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19

나는 꿋꿋하게 오사카와 도쿄를 다녀온 뒤, 오사카에서 다코야키를 먹은 일을 굴려서 장편소설을 써낸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다 비슷하게 사는 걸 보고도 소설을 써낼 수 있었다. 뻔하게 살더라도 중요한 건 약간의 차이에 있으니까. 요즘은 미슐랭에서 별 받은 집에 가도 맛있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영감도 떠올릴 수 없지만, 다코야키만 먹어도 맛있군, 정말 맛있어, 챱챱챱, 후루루룩 할 수 있던 때이기도 했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26

《상실의 시대》에서 기억나는 것을 하나 더 짜내면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남자라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속았다. 막상 읽고 나서는 하루키가 피츠제럴드에게 권 당 인센티브나 스톡옵션을 받기로 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주)피츠제럴드 재단에서 하루키에게 거액의 광고비를 지급하고 홍보용으로 《상실의 시대》를 쓰라고 한 것은 아닐까?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32

어쨌든 감상문을 반복해서 쓰다 보니 《위대한 개츠비》는 정말 위대해 보였다. 괜히 반성문을 쓰라는 게 아니다.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정서는, 잃어버릴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진부하지만 그녀를 만난 뒤에는, 그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나는 ‘그녀의 월드 She’s World’에 입장한 뒤였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33

이왕 사과하는 김에 미안한 말을 하나 더 보태면 하루키는 정말 평범하게 생겼다. 서울에서도 하루키와 똑같이 생긴 아저씨를 하루에 여섯 번은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바라봐도 기억하기 어려웠다. 아무나 찍어서 하루키라고 우겨도 하루키 본인을 빼면 뭐가 이상한 줄도 모를걸. 하루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소설가는 얼굴이 아니라 작품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건 오빠 얼굴이 열린 결말이라서 그런 거 아냐?"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36

그녀가, 하루키가 맞았다.
아니라고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가방 안에서 《1Q84》 BOOK1, BOOK2를 꺼내 사인을 해서 줬으니까. 하루키는 아니지만 하루키를 닮은 하루키스러운 사람이 《1Q84》를 두 권이나 들고 다니다가 술집에서 사인을 해서 주는 우연의 일치는 있을 수가 없고, 책은 더럽게 무거웠다. 무게감은 실재했다. 어쩐지 멋있었고, 나중에 소설가가 되면 꼭 따라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다코야키 소설책을 쌓아놓고 여섯 시간 동안 맥주를 마셨는데 말 한번 걸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단골 술집 주인조차 나를 모른 척했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42

당연하게도, 피터캣 안에는 하루키가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하루키는 조금도 늙지 않았고, 오히려 젊어진 것 같았고, 눈을 감고 위스키를 음미하는 모습마저 똑같았다. 나는 하루키를 만나서 당황했다. 아까 술을 너무 빨리 퍼마셨나?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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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보다 더 크다.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은 금붕어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_머리 겔만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18

그렉 이건Gregory Mark Egan의 소설 『쿼런틴Quarantine』은 난해한 양자역학을 정면으로 다루는 하드SF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이미 절판되었으나 마니아들 사이에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원래 가격의 두 배는 보통이고, 서너 배를 호가하는 경우도 흔하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19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 첫 번째. 관측이 대상에 영향을 준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0

양자 중첩이란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 것을 말한다. 웃음이 나오면서 슬플 때 ‘웃프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양자역학의 중첩이 아니다. (더구나 잘못하면 ‘썩소’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죽어 있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을 수 있다면 이것은 중첩이다. 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거다.
좀 더 물리학적으로 말해서 당신이 한 순간 두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 있다면 중첩이다. 몸을 둘로 나누라는 말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하나의 몸이 동시에 두 장소에 있는 것이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0

원자나 전자가 사는 미시세계에서는 중첩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사실 이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일찌감치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앞서 소개한 물리학자들의 어록이 그 결과물이다. 아무튼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있다면 전자 하나로 두 개를 만들고, 그 두 개로 각각 두 개씩, 그러니까 모두 네 개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무한히 많은 전자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건 예수가 했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아닌가!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1

아무튼 이처럼 관측을 통해 중첩이 깨지며 하나의 상태로 결과가 귀결되는 과정을 ‘파동함수의 붕괴collapse’라고 부른다. 단어가 무척 생소할 거다. 한국어판 『쿼런틴』에서는 ‘붕괴’ 대신 ‘수축’이라고 표기했다. 파동함수란 양자역학이 가질 수 있는 괴상한 상태를 기술하는 수학적 도구이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2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선택이 일어날 때마다 중첩이 생성된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하는 순간, 우주는 이 두 선택의 중첩으로 나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의지가 중첩과 관계있는 것일까? 진실은 간단하지 않다. 당신이 가만히 있다고 선택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움직일지 가만히 있을지 선택한 결과 가만히 있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매순간 우주의 모든 ‘것’들에서 끊임없이 중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중첩 상태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양자역학이 만들어진 이래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혀온 질문이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3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중첩을 이루는 모든 상황들은 동시에 존재한다. 이들은 서로 독립적인 우주이다. 우리는 그 우주들 가운데 하나의 우주에만 살 수 있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3

사실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에 따르면 이 경우 전자의 위치는 완전 무작위(!)적으로 결정된다. 양자역학은 특정 결과가 얻어질 확률만을 알려줄 뿐이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4

양자역학의 정통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내가 관측하여 얻은 결과를 제외한 다른 가능성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내가 짜장면을 먹기로 했다면 짬뽕을 먹는 우주는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문제일 수도 있다. 짬뽕을 먹는 우주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짜장면을 먹는 우주에서는 다른 우주의 존재에 대해 어떤 단서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관측이 다른 가능성을 모두 없애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4

나의 의식은 우주를 선택한다. 하지만 나의 의식은 자유의지의 산물인가? ‘모드’의 결정은 ‘모드’라는 신경회로의 자유의지인가? 사실 모든 것이 무작위로 정해지는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자유의지가 무엇인지는 그리 명확하지 않다. 양자역학에서 자유의지까지 오면 이제 갈 데까지 간 것이다. 수습불가의 상황이란 얘기이다. 작가 그렉 이건은 이 난국을 어떻게 수습했을까? 『쿼런틴』의 마지막 문장이다.

모든 것은 결국 평범한 일상으로 귀속되는 법이다.

그러하다. - <김상욱의 과학공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88085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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