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사소한 취향이 있다. 소설가가 등장하는 소설은 질색이다. 수험생일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니까. 가슴 조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가까스로 현진건의 <빈처>와 이태준의 <토끼 이야기>를 읽고 다음 중 가장 적절한 것을 골라야만 했다. 운수가 나쁜 현진건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어떻게 <야인시대> 김무옥(이혁재 분)과 얼굴이 똑같지?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17
소설 속 소설가, 영화 속 영화감독을 보고 있으면 호흡이 곤란해졌다. 쉿. 네가 소설가인 건 비밀이 아니야. 그렇다고 등장인물까지 소설가일 필요는 없잖아.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18
모든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공리公理다. 그러나 자신을 팔아먹는 작가는 상상력이 고갈된 것이다. 진실이다. 아무리 궁금하더라도 길의 끝까지 걸어서는 안 된다. 남겨둔 골목이 있어야 한다. 파산한 소설가들에게 할 수 있는 복수를 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책들을 중고서점에 헐값으로 팔았다. 헌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새 책 한 권이 팔리지 않을 테니까. 취향은 집요해야 한다. 그렇게 알고 있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19
나는 꿋꿋하게 오사카와 도쿄를 다녀온 뒤, 오사카에서 다코야키를 먹은 일을 굴려서 장편소설을 써낸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다 비슷하게 사는 걸 보고도 소설을 써낼 수 있었다. 뻔하게 살더라도 중요한 건 약간의 차이에 있으니까. 요즘은 미슐랭에서 별 받은 집에 가도 맛있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영감도 떠올릴 수 없지만, 다코야키만 먹어도 맛있군, 정말 맛있어, 챱챱챱, 후루루룩 할 수 있던 때이기도 했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26
《상실의 시대》에서 기억나는 것을 하나 더 짜내면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남자라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속았다. 막상 읽고 나서는 하루키가 피츠제럴드에게 권 당 인센티브나 스톡옵션을 받기로 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주)피츠제럴드 재단에서 하루키에게 거액의 광고비를 지급하고 홍보용으로 《상실의 시대》를 쓰라고 한 것은 아닐까?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32
어쨌든 감상문을 반복해서 쓰다 보니 《위대한 개츠비》는 정말 위대해 보였다. 괜히 반성문을 쓰라는 게 아니다.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정서는, 잃어버릴 것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진부하지만 그녀를 만난 뒤에는, 그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나는 ‘그녀의 월드 She’s World’에 입장한 뒤였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33
이왕 사과하는 김에 미안한 말을 하나 더 보태면 하루키는 정말 평범하게 생겼다. 서울에서도 하루키와 똑같이 생긴 아저씨를 하루에 여섯 번은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바라봐도 기억하기 어려웠다. 아무나 찍어서 하루키라고 우겨도 하루키 본인을 빼면 뭐가 이상한 줄도 모를걸. 하루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소설가는 얼굴이 아니라 작품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건 오빠 얼굴이 열린 결말이라서 그런 거 아냐?"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36
그녀가, 하루키가 맞았다. 아니라고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가방 안에서 《1Q84》 BOOK1, BOOK2를 꺼내 사인을 해서 줬으니까. 하루키는 아니지만 하루키를 닮은 하루키스러운 사람이 《1Q84》를 두 권이나 들고 다니다가 술집에서 사인을 해서 주는 우연의 일치는 있을 수가 없고, 책은 더럽게 무거웠다. 무게감은 실재했다. 어쩐지 멋있었고, 나중에 소설가가 되면 꼭 따라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다코야키 소설책을 쌓아놓고 여섯 시간 동안 맥주를 마셨는데 말 한번 걸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단골 술집 주인조차 나를 모른 척했다.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42
당연하게도, 피터캣 안에는 하루키가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하루키는 조금도 늙지 않았고, 오히려 젊어진 것 같았고, 눈을 감고 위스키를 음미하는 모습마저 똑같았다. 나는 하루키를 만나서 당황했다. 아까 술을 너무 빨리 퍼마셨나? - <누벨바그 2 소설 도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8447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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