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mimesis, 즉 자연의 모방이라는 개념은 변형된다. 라틴어의 우아함의 절정을 이루는 로마 문학의 ‘은의 시대’ 동안 퀸틸리아누스, 키케로 등 수사학 이론가들은 mimesis 이야기는 하지 않고 대신 imitatio에 관심—물론 라틴어로—을 기울이는데, 이것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제 문제는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문학적 모범의 모방이다.(폴 프라이, 『문학 이론Theory of Literature』)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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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은 사려 깊은 모방’이라는 볼테르의 말도 있듯이 그런 정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는데, 서구 낭만주의 시대에 와서 뒤늦게 만들어진 주장도 있다. 원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는 이론이 존재했다. 그러나 자연의 모방인 mimesis는 로마 시대로 오면서 이미 imitatio로 바뀐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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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흔히 창조적이라고 여겨지는 문학 번역은 비창조적이고, 비문학 번역이 오히려 창조적이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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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창조성의 바탕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문학 번역은 흔히 ‘있는 대로’ 번역할 것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즉 ‘복제’를 이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매우 비창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비문학 번역은 그런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극단적인 경우에는 다시쓰기를 허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실제로 원문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든가 하는 의미에서는 비문학 번역이 훨씬 창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비문학 번역은 현재의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응하여 transcreation이라는 발상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문학 번역은 번역이란 게 원래 transcreation이라고 주장하든가, 아니면 문학 번역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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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번역은 일차적으로 같음, 즉 동일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다른 언어로 같은 내용을 재현하는 작업이지 않은가. 따라서 어떻게 보면 번역의 이상은 창조가 아니라 복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가장 기계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알라딘 eBook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중에서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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