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비비어의 성령님 - 성령님과 깊고 친밀한 관계 만들기
존 비비어 외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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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1일 오후 11시 17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reading

2014/02/21 23:17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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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이고 매일 2번씩 가정예배를 드리는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살았지만 하나님을 영적 지적 감정적으로 만나는데는 20살이 넘어서였다.
성경을 아무리 이해할려고 해도 말도 안돼는 허무맹랑한 소리같다는 느낌을 감추고 교회를 평생 다녔다.
창조과학회와 기독교세계관을 교수님과 함계 공부하면서 성경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을 완전히 열었던 것 같다.
여러가지 학문을 공부하면서 신의 영역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나님이 우주 저 멀리 나랑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나만의 하나님이자 아버지 통치자 대장 교사 어머니 친구 연인같은 존재가 확실히 되면서 행복한 나날을 살았다.
하지만 난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경쟁과 이 세상을 살아 내야 한다.
이어지러운 세상에서 나에게 성령님은 만나주시고 깊이 사귀실려고 많은 고통을 알게 하셨다.
성공력이 강해서 공부를 빨리 끝내고  성공을 하고 싶었는데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성공을  늣추시고 건강의 고통으로 긴긴 터널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고 만나고 알게 하신이가 바로 성령님의 사역인 것을 이 책으로 통해서 다시 한번 더 깨달게 되었다.
나는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 빨리 성공을 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빨리 하는게 목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성령님의 사역을 배우고 깊이 사귀며, 교제하게 하셨다.
성경 말씀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날 세계 최고나 성공자로 만들어 주시지 않아서 정말 억울했다.
공부를 하다가 몸이 약해서 쉬는 동안 나는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심을 깨달게 돼어 성령님께 간곡한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프면 정말 무능력하고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을 능가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정말 말그대로 착각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것 같다.
나도 작은 고통을 체험하지 못했을 땐 그랬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서도 그렇게 감사함을 몰랐다.
바울사도는 동족에게 많은 애정을 느꼈다.
하나님도 자기 자녀에게 더 많은 애정을 느끼실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지금 TV에서는 60년이 지난 이산의 아픔을 겪은  그 옛날에 헤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하여 휠체어에 몸을 싣고라도 그 먼거리와 추위를 뚫고 북으로 갔다.
 그뿐이 아니다 구급차에 누워서도 혈육을 보겠다고 간 고령자를 보면서 그리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오죽할까  자기 자녀를 더 많은 애정으로 성령님을 통해서 더 많은 은혜를 주실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못 밖은 것은 동족인 유태인이다.
현실에도 그렇지 않은가?
질투로 인하여 잘 아는 자가 더  괴롭히는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 그런  속담이 있다.
그 집의 장맛을 알아야 그 집의 흉을 더 잘본다는 말 처럼 우리 예수님을 더 잘아는 유태인 동족이 너무 뛰어나다 못해 놀라운 그를 질투하여 못을 받고 죽인 것이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자는 누구나 교통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령이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성적인 것만 알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알게 하시는 것은 성령님이다.    
옛날에 어떤 분은 항상 손을 주먹지고 다니셔서 왜 그런지 물었더니 한나님과 손을 잡고 동행해서 라고 하셨다.
나도 그 얘기를 듣고 잠깐 그래보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의 교제도 없다.
우선 성령이 없으면 사실상 그리스도인의 삶도 없다. 
성령이 없으면 기독교는 무미건조하고 단조롭고 평범해진다. 
성령이 없으면 우리의 수고는 고갈과 탈진을 면할 수 없다.
교회에 성령이 없으면 친목 단체로 변할 것이다.
오늘날 대형 교회는 성령의 체험을 하기보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장소에 불과할 때가 많다.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도 사도시대만 있는 것 같이 오해한다.
요즘은 지성은 뛰어나기 때문에 옛날 어른들처럼 순수하게 믿지 않고 입으로만 잘 믿는척한다.
그러면서 마음으로는 오직 시기와 질투와 허영과 욕심 뿐이다.
성령이 바로 하나님이다.
우리의 그런 모습은 성령님을 무시하는 행위같다.
공동체는 입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젊은 남자와 여자를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인정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분명히 때를 기다려 주시는 분이다.
우리도 그런 하나님을 본받아 때를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인내는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안에서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아브람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 지금도 중동에는 인내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성령이 없으면 비전도 없다.
성령이 없으면 기쁨도 없다.
성령이 없으면 평안도 없다.
성령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성령의 깨달음이 없으면 불안과 질투와 공포로 인해  남의 시선으로 묶여서 경쟁하고 비교하여 미친듯이 상대를 괴롭힌다.
상처는 절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성령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는다.
성령님이 있다면 상대방 때문에 절대로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요즘 사람들은 외모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성형을 안하면 손해를 보는 것 같다는 둥 성형외과 의사의 기술이 하나님의 지혜라는 둥 얘기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섭리를 어기는 것 같다.
천국에 갔을 때 줄이 너무 길어서 물어 보니까 하나님이 원래 주신 얼굴이 아니고 얼굴이 달라서  얼굴대조가 안돼서 천국으로 들여 보내주지 못하는 거라는 얘기가 있다.
하나님은 각자의 달란트를 주셨다.
하나님의 지으심을 깡그리 망가뜨리는 지혜는 주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런지 성형부작용이 많은 것 같다.

성령이 주인인 곳에만 자유가 있다.
그런데 성령이 주인이기보다는 교회목사가 주인인  장로님이 주인인 교회도 있다,
현실은 돈과, 쾌락이 주인인줄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외치며 속으로는 전갈보다 독한악한 마음 품고있다. 
 성령님은 물건이 아니다.
입으로 부르짓는 우리들의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능력은 많은 노력과 기도와 체험에서 나온다.
우리 엄마는 자신의 일 때문에 보통때는 친구나 가까운 사람을 만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런데 오래 다니는 한의원에서 여러번 들은 말이라며 일러주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너가 다니는 그 교회에는 사람 만나기 위해서 간다고 한의원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이 그랬다고 한다.
그 아줌마들의 아들이 옛날에 대학가기가  힘이 들어 미국으로 도피유학을 갔다가  혼기를 놓쳐서 내가 다니는  교회에 자매가 많다고 해서 간다고 했다.
지금의 교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곳, 결혼 혼기를 놓쳐서 여자들이 많으니 남자가 기준에 아주 못미쳐서 부족해도 결혼이 가능 하다고  모이는 그런 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난 교회에서도 성령님을 깊이 만나고 싶었는데 내 친구는 찬양을 하다가 손을 들고 일어 나서 예배에 끝나고 찬양이 은혜로웠냐고 물으니까 자기가 관심을 두고 있는 형제가 자기를 잘 보라고 일어나고 손을 들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분염히 보고 계신데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사람들이 자꾸 말을 해서 속상하다.
이런 세상에서 난 어떻게 하나님을 구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내가 하나님과 더 깊이 교재하고 잘 보일 수 있을 것 같아 유리한 것 같은데 내가 빨리 성공하지 못하고 고난이 많으니까 하나님께 따지게 되기도 하다.
하나님이 없는 것 처럼 사는 사람들이 더 세상에서는 잘 사는 것 같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 성령님은 아주 슬프하시지 않을까?
하지만 성령님은 자신을 온전히 주인으로 믿지 않고 이용하는 자에게는 절대절대 함께하지 않는다.
나도 어쩌면 하나님을 잘 믿어서 성공하고 세계 최고가 돼고 싶다는 하나님을 이용할려고 하는 마음이 무의식속에 있었을 거다.
사람들도 하나님은 인격이 있다고 하면서 사실은 전혀 하나님의 인격을 믿지 않고 이용하고 악용한다. 신인 성령님이 형체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령의 속성이 성경이 확실히 나와 있다.
우리는 왜 성령하나님이  잘못 이해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허영과 이단적인 것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인격이신 삼위 일체를 현실의 성도들은 이용하려고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을 먼저 알아야 하는것은 그의 사역과, 인격적인 깊은 속성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스승이 영원히 모든것을 해 주신다면 언제나 앞선자가 물러나야 또 다른 자가 자랄 수 있다.
우리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승천하셔야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사랑 하시는 것은 우리 육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주 크게 사랑하신다.
육신의 부모와 자녀는 때론 보상 심리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이 세상에는 공짜란 없고 언제나 거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라는 공짜의 선물을 주시고 우리와 인격적이고 깊은 사랑을 하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쉬울게 없으신 분인데도 우리를 찾으신다.
그게 미스터리이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면 성령님께 집중을 하면 된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 해주시고 성경만 보면 까막 눈 같은 나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연애편지처럼 느끼게 해주시고 성경의 글들이 살아서 툭툭 튀어 나오게 해주신다.
성령님은 나에게 천재의 영도 부어 주시고 불가능을 가능하게도 해주신다.
실패했을 때조차도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질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전우주적으로 사랑하시고 인정하시고 깊이 신경 쓰시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빨리 성공을 못해도 하나님앞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지나치게 하나님과 성령님과 말씀에 집중을 하면 난 지나치게 행복하고 지나치게 기쁘게 살 수 있다.
하나님만 소유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고 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맛있는 것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남자친구도 필요하고 로스쿨도 필요하기는 하다.
그래도 나에게 가장가장 최고는 하나님,,,성령님,,,이다.
이 책은 그런 성령님을 많이 알게 해줘서 다행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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