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궁그미를 위한 철학 탐정 열두 살 궁그미를 위한 인문교양 시리즈
스티네 옌선 지음, 조르진 오버바터르 그림, 정유정 옮김 / 니케주니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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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티네 옌선은 유명한 철학자이자 어린이책 작가이며 프로그램 제작자이다.

덴마크에서 태어나 어릴 때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그림은 조르진 오버바터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어린이책과 애니메이션을 위한 그림을 그린다.

이 책은 철학자들과 관련된 수수께끼와 비밀, 그에 관한 문제를 풀게 된다.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하는이유는 이성과 과학이 발달되어서 그런거 아닐까 항상 혼자 생각만 했었다.

이 책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공부도 열심히하고 음악을 사랑했지만 평생 건강 문제로 고생했다.

어지럼증과 두통때문에 힘들어 했다.

스무 살이 된 니체는 본대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 신을 믿지 않게 되면서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니체는 유럽에서 몸이 허약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아 나선 끝에 알프스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정착하게 되었다.

신선한 공기 덕에 기분이 나아졌다.

니체는 기독교 사상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과 반대된다고 했다.

기독교 신앙이 삶의 부정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고통에 관한 교회의 모든 가르침을 믿지 않았고 신은 죽었다고 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이런 기독교인이 된다.

니체는 그가 꿈꾸던 로맨틱한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운이 좋지 않았다.

그는 겨우 3시간을 만난 여성에게도 즉흥적으로 청혼할 정도였다.

여성들은 니체의 콧수염이 혐오스러워서 전부 거절을 했다.

그의 건강은 점점 더 나빠져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고 광기에 사로잡혔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는 학대받고 있는 말을 향해 돌진하더니 목을 감싸 안고 그 자리에 쓰러져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그는 벌거벗고 춤을 추면서 자신이 나폴레옹이자 예수이며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니체는 기독교를 비판했고 그의 아버지 무덤이 있는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의 이름과 사망한 날짜가 적힌 교회 등록부에는 유명한 반그리스도인 니체라고 쓰여 있다.

니체가 신이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신을 죽였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디에서 위안을 얻을 것인가라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에 썼다.

니체는 고통은 제멋대로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사후세계는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언자 차라투스트라에게 알아내도록 했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아직 셀카가 없던 시절, 오토 아이콘이라고 자신을 직접 아이콘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남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시신을 박제로 만들어 자기 자신을 영구히 남기겠다는 것이다.

벤담의 오토 아이콘은 벤담이 갖고 있던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지팡이를 쥐고 있는데 그 지팡이에는 애완동물처럼 양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 지팡이 이름은 대플이라고 붙였다.

벤담과 대플을 여전히 볼 수 있다.

벤담이 원하는 대로 런던의 한 대학에 있는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다.

그의 시신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전시되기 위해 건초와 짚으로 채워진 뒤 봉합되고 엄선된 과학자들에 의해 해부되고 연구되었다.

한 세기 반이 지난 후 벤담의 머리가 사라졌다.

대학생들이 몰래 침입해 유리관을 부수고 벤담의 박제된 머리를 가져다 축구를 했다.

결국 새로 밀랍을 만들어서 벤담의 몸통에 단단히 고정하기로 결정했다.

그 얘기를 더 자세히 하면 1975년 다른 대학의 학생들이 벤담의 머리를 가져간 일은 유명하다.

벤담의 머리를 100파운드에 팔려고 했다.

이들이 실제로 벤담의 머리로 축구를 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랬을거라는 소문이 있다.

장 자크 루소는 고모 손에 자랐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빴다.

고모도 그에게 신경을 잘 못써서 그런지 루소는 버릇없는 아이로 자랐다.

종종이웃집 솥에다 몰래 오줌을 싸기도 했다.

훗날 그는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변기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요페라는 병에 걸렸다.

어쩌면 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양육이라는 주제에 빠지게 된 루소는 교육책인 에밀, 교육에 관하여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책에서 아이들은 놀며 배워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문화적으로 정해진 잘못된 생각들에 영향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루소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 책이 한 권 있긴 했는데 바로 무인도에서 탈출해야 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로빈슨 크루소이다.

루소는 부모들이 아이를 딱 한 명만 낳아서 길러야 한다고 했고 아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하던 일도 그만두고 돌봐야 한다고 했다.

루소의 양육 요령 중 하나는 일부러 아이가 숲속에서 길을 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루소는 그가 바라던 고상한 여성이 아닌 재봉과 세탁 일을 하는 데레즈와 연인이 되었다.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루소는 그가 집필한 교육책을 금지하여 한 교회와 맞서게 되었다.

루소가 그 책에 종교에 대한 불평을 늘어 놓았기때문이다.

책은 실제로 판매가 금지되었고 조직적으로 불태워지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한 출판사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여 그 책을 미리 인쇄해 두었고 그렇게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동료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은 그에게 다른 종교를 믿는 영국으로 이주하라고 조언했다.

루소는 그의 개 술탄과 함께 도버해협을 건너게 됐다.

그는 여행 내내 뱃멀미가 나서 비가 오는 중에도 갑판 위에 나가 있었다.

데이비드 흄은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선했다.

영국왕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까지 받게 해주었다.

그런데도 루소는 흄이 자기를 불쌍한 게으릉뱅이로 취급하며 끊임없이 모욕한다고 생각했다.

루소는 계속해서 불평하며 하나둘씩 적을 만들어 갔다.

결국에는 아이도, 아내도, 친구도 없이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루소는 아이가 숲속에서 길을 읽도록 내버려 두라고 한 이유는 환경에 변화를 주어서 아이들의 배움을 장려할 수 있다고 믿었다.

루소는 다섯 명의 자녀들을 모두 버렸다.

너무 가난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었다.

하지만 루소는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로 충분한 돈을 벌지는 못했어도 자신을 도와주는 부자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라는 신분과 자식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했다.

정말 나쁜 남자다.

그렇게 엄청난 교육책을 썼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키울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라이벌이자 동료 철학자인 볼테르는 익명의 편지로 이 비밀을 세상에 알렸다.

루소는 이를 알고 매우 화를 냈다.

난 이 책을 읽고 루소의 책을 읽지 않기로 했다.

인간의 수준이 아닌 사람의 책은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칼 포퍼는 1946년 철학 교수가 되기 위해 뉴질랜드에서 런던으로 떠났다.

언어 철학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인기 많은 포퍼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저명한 사상가들의 모임에 초대해 철학을 논하고 철학적 난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포퍼는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라는 가설을 증명하려고 했다.

검은 백조 한 마리만 찾으면 그 가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도덕 원칙에 대한 진술은 증명하기가 힘들다.

그 얘기를 듣고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를 흔들었다.

그 이유는 포퍼가 참석자들에게 수수께끼보다 더 진지한 과제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열광적인 찬사를 받은 것이 못마땅했다.

부지깽이 논쟁에서 누가 이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책의 얘기들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부수적인 얘기들이라서 더 재미있다.

철학자나 철학의 논외적인 얘기들이 궁금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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