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비스마르크 -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에버하르트 콜브 지음, 김희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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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심 1도 없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걸 보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치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들었다.

그래서 정치지도자를 보는 눈도 갖고 싶어서 읽었다.

선거도 절대로 안 빼먹고  한다.

정권에 따라 나라의 영향이 너무 큰 것 같다.

저자의 얘기대로 해외의 성공한 정치지도자에 대해서 알아 보는 건 뜻 깊은 일같다.

비스마르크가 실용주의적 정통 보수주의자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진짜 필요한 지도자의 마인드같다.

그때그때 맞는 해법을 제시하는 현실주의자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정치지도자와 의견제시자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 같다.

저자 에버하르트 콜브는 1933년생의 독일 역사학자다.

쾰른 대학교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교수도 명예교수가 되면 편하고 좋지만 중간에 쫓겨나거나 그만두면 골치 아프다.

1960년 괴팅겐 대학교에서 독일 국내 정치의 노동자 문제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콜브 교수는 특히 바이마르공화국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다.

콜브 교수는 1870년에서 1871년까지 벌어졌던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과 관련한 기록들을 철저히 분석,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프랑스로 하여금 선전포고를 하도록 도발했다는 역사의 통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을  했다.

콜브 교수는 1998년부터 오토 폰 비스마르크 재단의 상임 이사로 재직하며 비스마르크의 자료를 편집 출간하는 일을 주도해오고 있다.

프로이센은 게르만족이 살아남기 위한 이민을 통해서 만들어진 개척국가다.

비스마르크는 19세기의 사람이고 프로이센은 러시아,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강력한 국가로 둘러싸여 있었다.

우리나라랑 비슷하다.

러시아, 중국, 일본에 둘러싸인 불쌍한 우리나라,,거기다 북한까지,,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주변 강대국들을 견제하고 독일통일을 이루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스마르크같은 인물이 필요한 것 같다.

비스마르크가 20년 동안 수상을 하는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비스마르크때문에 독일은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요즘 헤겔의 미학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헤겔도 독일 사람이었다.

칸트를 계승한 관념 철학자였다.

독일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한국 정치가들이 비스마르크에게 배워야 할 점은 능수능란한 외교정책이다.

우리나라 외교정책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비스마르크의 다극외교를 통해 주변국들을 설득하고 연대하고 배제하는 외교정책을 펼쳤다.

오스크리아까지 포함한 독일의 대통일보단 북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소통일을 지향하는 현실적인 정치 감각이 뛰어났다.




























작은 독일통일론으로 주변 국가의 견제를 최소화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에서는 주변국들을 프로이센의 편으로 만들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의 전쟁 이후 독일은 하나의 통일국가이자 유럽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제국  2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는데 이 평화는 전쟁을 준비할 때 비로소 평화가 온다는 것을 기반으로 국가의 강한 면모를 유지하면서 이뤄낸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독일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밑바탕의 기원을 만들었다.

19세기에는 자본주의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빈부격차가 극대화됐고 이로 인해 주변 국가들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모든 불평등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한다.

비스마르크는 이 점을 잘 파악했고 복지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막고자 능동적인 정책을 펼쳤다.

비스마르크의 정확한 이름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이다.

독일사람도 이름이 길어,,

비스마르크의 시조같은 분의 이름은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폰 비스마르크다.

16자네,,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름이 길어,,

왜 이렇게 길어,,

주변사람들이  그 이름들을 다 외우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

19세기는 역동적이고 정치와 경제, 기술 발달은 정말 빨리 변화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구조의 전면 개편이 이뤄졌고 종교에서 벗어나는 세속화 과정이 일어나 전통 생활 방식이 바꼈다.

비스마르크가 탄생한 시기는 빈에서 제후와 정치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동안 유배지 엘바섬에서 프랑스로 돌아온 나폴레온은 권력을  탈환하려는 미자막 시도를 했다.

빈회의는 나폴레옹 이후 유럽과 독일의 여러 공국을 새롭게 재편하려는 결정을 선포했다.




비스마르크는  귀족출신의 아버지밑에서 태어났고 형제가 6명 있었지만 3명은 죽었다.

외교관이 되려고 법학을  전공하고 약혼을 했다고 하는데  비스마르크의 개인사보다는  그가 어떤 정책을 폈는지 그게 제일 궁금하다.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만한 정책말이다.

비스마르크는 36세에 정상급 외교관이 되었다.

그는 독일과 유럽을 가장 잘 아는 정치가였다.

중병을 앓기도 한 비스마르크는 47세에 수상과 외무 장관이 되었다.

충분히 강한 힘을 갖추고서 예방전쟁을 거부하는 자세야말로 비스마르크의 평화 정책이 자랑하는 최고의 원칙이다.

비스마르크의 건강상태에 관심이 있어서 봤는데 류머티즘, 안면통증, 유행성 감기, 복통, 오래전에 다친 다리, 신경증이 괴롭혔다.

그의 식습관은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엄청나게 먹어댄다고 한다.

그의 아침상에는 로스트비프나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차갑게 먹는 훈제 오리고기, 지빠귀구이, 오븐에 구운 푸딩이 한꺼번에 나왔다.

이 모든 음식을 적포도주, 샴페인, 맥주와 함께 먹었다.

젊을 때는 날씬한 몸매를 자랑했던 수상은 124킬로그램까지 됐다고 한다.

그는 불면증도 있었다.

나중에는 다이어트를 해서 90킬로그램까지 뺏다고 한다.

나라를 위한 것도 좋지만 건강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는 외교, 경제, 문화, 언론, 무역, 중재역할을 잘 한 것 같다.

멀티형 인간인 것 같다.

















독일국민들은 비스마르크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고 한다.

좋은 평가는 소독일 민족국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소독일로 유렵 권력 지형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비판은 문화투쟁과 보호관세 관철, 사회민주주의의 무자비한 탄압이었다.

난 그가 왜 사회민주주의를 탄압했는지 알 것 같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만든 부동산법을 보면 졸속중에 졸속이다.

비스마르크는 자유주의좌파진영, 사회민주주의자들, 가톨릭 성향 정당의 역사가들과 첨예하게 대립했다고 한다.

보수주의자이지만 국가적 현실 정치, 실용정치를 한 것이다.

수익 대 비용을 잘 알아 본 것이다.

정부는 비스마르크에게 좀 배워라,,

독일은 16개 주와 독립 도시들로 이뤄진 연방 국가이곡 국민들은 자신들을  독일인이라고 하지 않고 프로이센, 바이에른, 혹은 헤센 사람이라고 한다.

신성 로마제국 이후 500여 개까지 난립했던 공국들이 독일의 바탕이 되어서 자부심이 넘치는거라고 했다.

철저한 지방자치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꽃피운 게 독일이다.

연방 정부가 내린 결정일지라도 주 정부는 얼마든지 거부할 권한을 가진다.

1990년 통일 이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는 문제를 놓고 각 주들이 충돌하며  벌인 논란은 정말 뜨거웠다.

거의 10년 동안 이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정부 기관 여섯 곳은 본에 그대로 남았다.

독일은 텔레비전을 켜면 언제나 토론이 벌어진다.

영토의 크기가 국력이던 시절,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 잉글랜드라는 열강에 포위된 독일공국들은 각자도생하면서도 연대를 꾀할 수밖에 없었다.

중소공국들이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손을 잡는 연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로마에서 중세를 거치는 동안 게르만은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없는 야만족이었다.

게르만족의 열등감이 있었다.

북유럽의 동토에서 먹고 살기 위해 약탈을 일삼던 개르만족은 계속 남쪽으로 내려오면 살아남으려 분투했다.

내세울 게 없는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독일은 프랑스가 피의 혁명을 벌이는 동안 종이 위의 혁명, 사상과 문화의 혁명을 이루어냈다.

철두철미한 근본부터 따지며 원칙과 체계를 세우기에 골몰한 이 혁명은 바람직한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매진했다.

이 노력으루 집약해 표현하는 개념인 계몽은 온갖 신화와 전설에 목을 매는 세계관 대신 인간을 역사의 주체 자리에 놓으려는 시도다.

인간이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철학, 과학, 예술, 기술 둥에 걸쳐 독보적인 업적을 이루어냈다.

이 과정에서 키워진 자부심은 민족을 위한 하나의 통일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열망은 집약되었다.

독일은 힘에는 힘으로만 맞설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했다.

합리적 생각을 바탕으로 공동체가 나아갈 최선의 방향이 무엇인지 역사 속이나 현실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뛰어난 이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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