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세계관 강의 - 시간을 관통하는 통찰의 힘
최용준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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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틀이다.

난 기독교세계관을 잘 정립하면 빨리 성공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꼭 아니다.

기독교세계관과 유물론, 진화론들과의 전쟁이다.

그런 사상의 전쟁에서 어떻게 이겨야 하는 건지 그런 아이디어를 또 받고 싶다.

모든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을 가지고 살아 간다.

이 생각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는 세계관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은 선천적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며 계속해서 형성되는 하나의 진행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 근본적 고찰을 하지 않고 살아가며 자기 생각과 삶에 관한 깊은 성찰 없이 사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 채 인생을 산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의도하지 않는 인생을 살다가 마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민감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실제로는 비그리스도인들과 아무 차이가 없는 삶을 살수도 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가져야 할 세계관을 다룬다.

다른 세계관과의 비교를 통해 어떤 세계관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를 보여 준다.

세계관과 삶은 분리될 수없고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세계를 바로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기원의 문제이다.

모든 세계관의 첫 관심사는 만물의 기원이 무엇인가이다.

서양의 희랍 철학이 그렇고 동양 철학도 마찬가지다.

이 부분에서는 주로 창조와 진화적 세계관을 중점적으로 비교하면서 그 의미를 얘기한다.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악의 문제이다.

이 새상은 무엇인가 정상이 아니라는 보편적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낙원이 아니라 원치 않는 악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뿌리를 알아야 한다.

궁극적 해결의 문제를 알아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지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햐야 할 것이냐가 그다음 관심사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가 무엇인지 안다면 그 사람의 삶은 분명 확신 가운데 사는 삶이 된다.

우리는 이 세상의 최후에 관해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종말의 모습을 바로 알고 예측할 수 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세는 그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과는 분명 다르다.













하나님이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법칙이 있었다.

우주 만물을 관찰해 보면 질서가있다.

이런 질서와 법칙은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분 짓는 경계가 된다.

창조주는 법의 제정자이시므로 그 법을 초월하지만 피조물은 그 법에 종속된다.

창조를 얘기할 때 창조주, 법, 피조물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창조의 법에는 자연법이 있다.

이것은 중력의 법칙, 운동의 법칙, 열역학의 법칙, 광합성의 법칙, 유전의 법칙 등과 같이 전 우주에 미치는 직접적인 창조의 법칙을 뜻한다.

자연과 학자들의 연구는 사실상 세계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법칙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학문 활동은 각 분야와 영역에서 하나님께사 창조하신 법칙을 발견해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이 진화론을 배격하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모든 생물 중, 종과 종 간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같은 종 안에서는 여러가지 다양한 변이가 일어날 수 있지만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바뀌는 것은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말한다면  만일 진화론이 맞을 경우 지금도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경우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 경우가 있나?

없쟎아,,

어류에서 양서류로,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파충류에서 다시 조류로, 그리고 조류에서 포유류로 진화되는 경우가 지금도 계속 일어나야 되는데 인류 역사상 그러한 경우는 없었다.

연결고리가 발견되지 않는다.

진화론은 현 자연계를 지배하는 열역학 제2법칙에도 맞지 않다.

열역학 제2법칙이란 다른 말로 무질서도 (엔트로피)증가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모든 만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질서도 감소하고 무질서도는 증가한다.

새 자동차도 타지 않고 가만히 두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녹이 슬고 점점 그 성능이 떨어진다.

진화론은 우연히, 어떻게 해서 여러 가지 물질이 이리저리 조합되어 새 자동차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하등 동물에서  고등동물로 진화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며 질서도가 증가하는 과정인데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 그러한 법칙은 존재하지 않기에 진화론은 허구이다.

창조에 있어 두 번째 법은 규범이다.

이것은 십계명과 같이 인간의 사회와 문화에 적용되는 당위의 법칙으로 준수할 수도 있지만 어길 가능성도 있는 도덕법 또는 문화법이다.

여기에 인간의 책임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규범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창조의  법인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지혜란 바로 이러한 규범적 법칙을 바로 분별해 이 법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은 우리에게 아무런 삶의 의미를 주지 못한다.

원숭이로부터 우연히 진화되었고 또한 앞으로 다른 생물로 바뀔지 모르며 모든 법칙은 그저 우연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이 속에는 어떠한 윤리도 없고 그저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잔인한 정글의 법칙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될 수 밖에 없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도 없는 무자비한 사회를 낳을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에는 50년된 요스티 밴드라는 오케스트라가 있다.

200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장애인이다.

각자 다양한 장애가 있지만 수십 년 전부터 자신의 장애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그들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에 집중해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찾아 함께 연주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나도 나중에 유튜브에서 찾아 봐야 겠다.

오케스트라의 슬로건은 각 사람은 특별하다이다.

이들이 연습하는 동영상을 보면 악보도 읽을 수 없지만 각 음에 색깔을 붙여 연주한다.

단언들을 보면 자신의 장애에 맞은 악기를 개발해 함께 연주하면서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 찬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연말에는 네덜란드의 왕가와 정부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송년 음악회를 하는데 전국에 생중계된다.

연주가 끝난 후 왕이 직접 꽃을  들고 와서 축하해 주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얘기만 들어도 감동적인 것 같기는 한데 요즘 세상에 왕이 왠말이야,,

왕이나 독재자는 이 지구에서 사라져야 한다.

기독교가 극우라구?

극우가 뭔지 알고나 하는얘기인지,,

제발 책을 읽고 극우가 뭔지 찾아 보고 얘기를 해야지,,

나보고 천재나 엘리트만 좋아한다고 뭐라고 하는데 그들이나 난  얘기를 하면 알아 듣쟎아,,

극우는 국수주의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인데 기독교는 그것을 초월해,,

인격적인 하나님은 오묘하고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무한한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계속해서 신실하게 그 질서를 유지하신다.

또한 사람에게 자연 법칙을 잘 연구해 자연 세계를 다스릴 뿐만 아니라 선한 청지기로서 잘 보존하라고 말씀하셨으며 이 모든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을 섬기라는 사랑의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따라서 이 사랑의 법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며 또한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더욱 개발하고 문화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악은 기생충과 병균과 같다.

기생충이나 병균이 우리 몸에 침투하면 몸의 구조 자체는 큰 변화가 없지만 그 기능은 점점 약화되어 병들게 된다.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것과 같다.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컴퓨터의 외형은 그 모습과 구조를 유지하지만 소프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어 컴퓨터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죄가 창조 세계에 들어오면서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계의 모든 영역을 부패시키고 타락시켰다.

피조계는 맑고 깨끗하던 호수가 오염되듯 죄로 더러워지고 말았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고 경험이 많다고 할지라도 죄와 악의 실재성과 그 엄청난 파괴력을 바로 알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다.

솔로몬은 가장 지혜롭고 지식이 많은 왕이었지만 그가 철저히 부패한 죄인임을 잠시 잊었기에 말년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도 이 죄의 영향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도 별수 없이 넘어지고 말 것이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긴 했어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아름다운 창조 세계의 질서와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았다.

이것을 보통 하나님의 일반 은총 또는 보존 은총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과 가정 제도도 죄가 들어오자 매춘, 가정 파괴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결혼의 신성함과 가정의 소중한 가치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창조 세계의 구조는 죄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존 은총으로 계속 그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그 방향이 원래의 궤도를 이탈해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 구조와 방향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성경적 통찰이다.

성경적 인간관은 양면적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만믈의 영장이지만 동시에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다.

무한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진 인간인 동시에 가장 악한 존재다.

이 두가지는 상반되지만 한 인간 속에 함께 공존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뒤틀린 세상이고 깨어진 세계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존 은총도 있다.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죄를 범할 가능성을 지닌,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로봇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하고 타락한 이후에 모든 인간은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 되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고 자신의 선행이나 노력으로는 도저히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구속 사역을 이미 이루셨기에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의롭게 된 죄인이 되었다.

이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났기에 더 이상 죄와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긴다.

이 책은 한번 더 생각하기가 있어서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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