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신학 -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
권율 지음 / 샘솟는기쁨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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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사랑,결혼에 대한 책을 93권을 읽었다.

그래도 실전 연애가 한 번도 없으니까 그냥 이론에만 그친다.

기독교신앙서적은 기도를 하고 자신을 가꾸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라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이 책을 보면 연애에 대한 애매모함이 많이 해결될 것 같아서 읽었는데 나한테 더 하라고 하는게 많다.

나의 짝이 어디 있는지 저자가 왠지 방향을 제시해 줄 것같았는데 비신자는 안된다고 한다.

서로 알아 보고 끌리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께서는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하실려고 남자친구의 스웨터도 만들고 웨딩드레스도 만드셨는데 엄마께서 헛수고를 하시는게 아니도록 이 책의 도움을 받고 남자친구를 꼭 만나고 싶고 잘 이끌어 가고 싶다.

나의 우선과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느냐이고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며 관계가 시작되었을 때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데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안에서 하는 방법을 알려주니까 좋은 것 같기는하다.

난 항상  내가 하나님이 연인이라고 생각하고 배우자기도를 어릴때부터 계속했는데 기도는 응답이 목적이고 기도가 수단이라고 이엠바운즈가 그러던데 응답을 못 받는 이유도 좀 알고 싶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배우자에 대한 이론을 이 책은 알려주기는 주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만 집중을 하고 자기자신을 계발하고 배우자를 만나도 함께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져야 하고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신앙훈련을 받았다.

이 책은 혼전순결을 사수하라고 하는데 사수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라는 것이다.

모솔이면 저절로 지켜지던데 혼전순결 서약할 때 너무 비장했다.

순결을 잃을 상황이면 죽기를 각오하거나 범죄자를 죽여 버리자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앞에 서약할 걸 지키겠다고 자살을 하거나 타살을 하는 건 또 다른 범죄이다.

나처럼 공부만 하고 책만 보고 집에만 있고 아빠엄마랑 다니는 사람은 평생 남자랑 손잡을 기회도 없는데 난 정말 비장했다.

남자랑 손잡은 게 교회장로님이랑 악수하고 대학때 찬양한다고 둥글게 모여서 손잡았던 게 다였는데 너무 비장했다.

그래도 저자는 사수하라고 하고 난 하나님뜻을 이루고 지켰으니까 하나님께 칭찬 받고 싶었는데 저자는 더 가혹하게 더더더  하지 말라고 하는게 더 있다.

난  더 혼란스럽고 고민스럽다.












저자는 목사, 상처입은 치유자, 선교사이다.

경북대 영문학과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SFC학생신앙운동 간사로 캠퍼스 사역을 한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자주 섬겼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 SFC활동을 했다.

저자는 성경을 최고의 연애 교과서라고 규정했다.

연애는 세속적인 개념부터 떠올리는데,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비전에 맞춰질 때 정말 아름답고 거룩한 수단이 된다.

저자는 연애와 결혼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들이 결국 하나님 사랑으로 이어지도록 우리에게 계속 도전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는지 또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저자는 생생한 언어로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이다.

연애와 결혼은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의 일상이고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연애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 나라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맥락에서 연애가 이해되어야 한다.

연애는 물론 성도의 모든 일상이 장차 임할 그 나라에 초점이 맞춰줘야 한다.

연애야말로 세상과 다른 존재임을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청년들의 연애를 통해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증거되기를 바라신다.

감정은 식거나 생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결단이자 확신이라고 한다.

이 부분이 항상 궁금하다.

감정의 흥분 상태는 언젠가 따라오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생긴 감정도 얼마 가지 못한다.

사랑의 결과로 생긴 것이지만 감정은 감정이다.

감정의 짜릿함이 가라앉아도 사랑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인류의 최초의 연애이자 결혼은 하나님께서  직접 짝지어 주신 것이고 그 후로 계속 소개되는 연애와 결혼도 당사자들의 로맨틱한 사랑보다는 부모의 의중이나 외적인 요소에 의해 거의 결정되다시피 했다.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이 그랬고 야곱과 라헬의 만남도 그랬다.

나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딱 한 사람을 만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생각에 변함이 없으니까

하나님께 물어 본다.

다른 것에는 응답을 늦게 하시거나 어쩔 때는 안 하는 것도 있는데 연애나 배우자에 대해서는 바로 아니다라는 대답만  많이 들었다.

크리스천 연애와 결혼 또한 하나님의 비전 성취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비전은 온 세상이 죄가 없는 하나님 나라로 완성되는 것이고 십자가의 복음이 온 땅에 영광스럽게 증거되는 것이다.

저자는 연애 신학이라고 하는데 신학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다 또는 우리가 하나님을 말하다는 뜻이다.

연애 신학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연애를 통해 말씀하시다 또는 우리가 연애를 통해 하나님을 말하다라는 의미이다.

성경 말씀은 문맥이 제한하지 않는 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말씀이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주님의 명령이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임을 사수해야 한다.

사수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상을 정면으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동성애는 완전 반대한다.

사도바울은 창세기 2장 24절을 인용해서 비밀이 크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언급하고 나서 곧바로 이 비밀이 크다고 했다.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가  큰 비밀이라는 것이다.

결혼 관계의 궁극적인 실체가 그리스도와 교회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남편과 아내 또는 신랑과 신부로 비유한다.

교인들이 결혼 제도의 큰 비밀만 제대로 인식해도 이혼율이 이토록 높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는 얘기가 있다.

난 연애할 사람과 결혼할거다.

연애는 결혼의 부분적인 그림자이다.

연애와 결혼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르다.

연애는 연합을 이룬 상태가 아니라서 파기가 가능한 일시적인 관계이다.

결혼은 파기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언약이다.

연애중에는 결혼 생활에서 누리는 완전한 배타성의 은밀한 관계를 누릴 수 없다.

연애와 결혼은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친밀한 관계가 이어진다는 측면에서는 연속적이지만 각각의 본질적 속성을 볼 때는 불연속적이다.

사랑은 존재의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은 명사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동사이다.

스스로 고정되어 있거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동적인 존재의 영역에 속한 것이며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의 유한한 언어로 간단하게 정의될 수 없다.

스턴버그라는 학자는 사랑의 3가지 요소인 친밀감, 열정, 책임이 정삼각형을 이울 때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라고 분석한다.

사랑을 구성하는 형식에는 의지와 감정이 포함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정의하면 사랑은 감정을 수반하는 의지의 작용이다.

사랑을 감정적인 측면에만 두면 감정이 사라지면 헤어져야 한다.

처음에 연애를 시작할 때는 사랑호르몬이 작용을 하고 그 호르몬이 사라지면 의지로 노력을 해야 한다.

연인들이 바라봐야 할 같은 방향은 하나님의 비전이다.

비전은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이다.

비전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바를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즐기는 존재가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 그분의 피조물이다.

사랑의 의지를 지탱하는 외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비전이지만 사랑의 의지를 작용시키는 내적인 기준은 서로의 사명이다.

사랑의 의지는 우리의 궁극적인 비전을 위해 이성을 사랑하려는 갈망이다.

연애를 시작한 사람이 결혼을 두고 결단해야 할 시점이 올 때 계속 사랑의 의지를 작용시킬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서로의 사명이다.

이것은 성령의 이끄심에 대하여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이기 때문에 사랑의 의지를 작용시키는 내적인 기준이다.

불타는 사랑을 하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서로의 사명을 확인하고 조율해야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

나도 연애하고 싶어서 하나님한테 연애해도 되냐고 물으면 바로바로 하지 말라고 응답하셨는데,,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어떤 짝을 정해 두시고 그나 그녀를 찾아가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오류 없는 예지의 맥락에서 자기가 누구를 만나게 될지 내다보고 계신다고 조심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이때도 선택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의도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하나님이 특정한 짝을 정해 두셨다는 운명론적 생각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런 생각에는 단 하나의 길이 자기에게 최선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난 한 명만 만나고 싶은데,,

자신을 위해 예비된 최고의 짝이 특정한 그나 그녀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최선의 길은 단 하나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수많은 가능성으로 나타난다.

다만 그것이 죄의 영역으로 치닫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하나님이 특정한 내 짝을  정해 두셨다는 생각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혹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짝과 결혼하면 내 인생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택지  하나를 정해 두시고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리를 힘들게 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엄마한테 우리 아빠 한 명만 주셨을까,,

그래서 나도 한 명만 만나려고 하는건데,,

저자가 여러 명 만나서 그런 얘기하는 거 아닌가,, 

죄의 영역으로 치닫지 않는 한 우리가 기도하면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는 최고의 짝이 미리 정해진 그나 그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나 그녀를 사랑할수록 그 사랑은 결국 하나님께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혼전순결을 사수하라고 한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열정과 순결에서 엘리엇은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일에 자신이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엘리엇은 결혼 전 키스에  대한 욕망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결혼 전에 키스까지는 해도 되는 거 아닌가,,

결혼 전 순결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적 연합을 증거하는 방편이고 연애는 그 일을 부분적 그림자로서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다.

성관계는 파기할 수 없는 언약 관계의 부부 사이에만 허락된 것이다.

성적 쾌락은 부부가 서로 하나 됨을 오감으로 인식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난 솔직히 궁금한게 있는데 그런 행위를 할 때 영화에서는 깜깜해지는데 깜깜하면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은데 그래도 할 수 있는건가,,

전 존재의 벌거벗음은 두 차원의 관계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영적 순결과 한 배우자를 향한 나의 육체적 순결이다.

순결의 개념은 언약  관계에 있는 한 대상을 향한 배타적인 신실함이다.

크리스천 연인들은 결혼 전에 순결을 사수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연애를 하면 스킨십하는 방법을 서로 공부를 해오는 건가,,

저절로 잘하게 되는건가,,

하나님은 연인들의 감정 상태를 소중히 여기시지만 그 감정이 극도로 불타서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식하지 못하게 되면 그 커플을 향해 질투의 불을 표출하신다.


















저자는 스킨십은 어디까지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데 더 이상 타협할 수 없는 스킨십의 최후 지점은 키스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결혼 전에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키스는 하지 말아야 한다.

엥? 왜? 난 연애하면 꼭 키스는 해보고 싶은데,, 너무너무 궁금한데 왜?

키스에 대한 책도 읽었는데 왜 안돼?

키스는 순결과 관계없쟎아,,

키스는 앵두를  따다가 입술에 갖다대는 느낌이고 귀에서 종소리가 나고  코가 부딪힐 수 있고

초콜릿맛이 나고 구한말 선교사들이 전파해서 고려시대에는 키스가 없었다고 했는데 책얘기가 좀 그렇다.

그런데 또 궁금한 건 이빨를 꽉 물고 있으면 키스를 할 수 없는건가,,

저자는 이 얘기에 책을 덮어 버리거나 저자에게 야유를 보낼거라고 했는데 난 저자에게 그러고 있다.

자기는 다 해봤으니까 기대나 궁금함이 없겠지,,

저자는 목사의 양심을 걸고 성경에 비추어 주장을 굽히지  않을거라고 한다.

키스가 성경에 근거해서 영적 간음이라는데,,

저자는 성적 욕구가 강한 형제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단칼에 정리하라고 한다.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자신을 믿도록 고단수를 쓰는 형제도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녀가 받아들이는 수준의 스킨십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수위를 높여 간다.

그녀가 안정감을 갖도록 서서히 길들이는 방식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그루밍수법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익숙해져 형제의 의도대로 순응하게 된다.

미혼의 자매들은 스킨십을 두고 결혼한 선배나 부모님과 일정 부분 공유해야 한다.

저자에게 상담한 어떤 형제는 자매가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마지노선을 넘어서 거기에 탐닉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하나님의 중심적 연애를 사모하는 영적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저자가 페이스북을 하던데 저자가 첫사랑과 헤어지고 지금의 사모님을 만났다고 했는데 저자는 결혼 전에 자매와 키스를 안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그런 건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성희롱이 되니까 물어 볼 수는 없다.

난 다른 책에서 연애할 때 순결은 지키지만 키스는 해도 되고 결혼 직전에는 애무인지 애모인지도 해도 된다고 읽었다.

난  연애를 하면 하면 키스는 해봐야지라는 생각은 책을 통해서 갖고 있었다.

난 순결도 지키고 키스도 안하고 다른 애들은 순결도 안 지키는 것 같은데 난 하나님때문에 키스도 안 되는건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직접 물어 보겠다.

뭐라고 하시는지 언제 응답을 해주실지는 모른다.

오늘 밤부터 기도를 할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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