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페미니즘하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1
이은용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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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고전이나 성경을 읽을 때 가끔 여성부분에서 멈춰서게  된다.

하나님은 정말 남자와 여자를 차별해서 창조했을 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고전책들은 남자가 주도를 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면을 부각했다.

여성은 혼자이면 완전하지 못하고 남자와 함께 해야 완성된다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기독교안의 페미니즘책을 읽었는데 하나님은 여성과 남성을 차이가 있게 창조하셨지 차별을 두시지 않았다.

성경을 근거로말이다.

타락을 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절대적 차별이 생긴 것이다.

상대적 차별은 어느정도 근거가 있는건지 몰라도 절대적 차별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과거의 잘못된 가부장 때문에 비틀어지거나 불합리한 면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운동인데 정치에서 이용하려고 하는 것 때문에 가끔 보수에서는 페미를 없애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유는 여자도 그냥 여자로서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 근거를 찾고 싶어서이다.

젠더로 권력의 있고 없음을 가를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어린 페미니스트 와즈다를 읽으니까 사우디아라비아는 얼마전까지 여성은 자전거를 못 탔다.

난 모든 일이나 현상에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따르는 건 아니라는 걸 책을 많이 읽으면서 더 알게 됐다.

페미니즘도 왜 타당한지 항상 그 근거를 찾아야 겠다.

그 근거 때문에 책을 계속 읽는 것 같다.







저자는 19954월부터  오로지 기자로 살았다.

201511월부터 자본과 권력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언론<뉴스타파>에서 객원 기자로 뛰고 있다.

래전부터 보고 들은 대로 쓸 수 있는 곳을 바랐기에 <뉴스타파>에서 기사를 쓰게  되었다.

저자는 이로운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마음을 다졌다.

​저자는 직업이 기자여서 이런저런 세상일 살펴보는 데 익숙하다.

세상일을 살펴보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잘못됐다 싶으면 콕 집어 가리키고는 한다.

기사로, 이건 이래서 잘못된 듯 하고 저건 저래서 고쳐야 할 성싶다고 쓰는 거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페미니즘처럼 뜨거운 걸 가슴에 품게 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머리에 넣기 시작해 가슴으로 품게 됐다.

오랫동안 남자 쪽으로 기운 나머지 여성이 힘들었던 세상, 그 세상을 고르고 판판하게 할 바탕이라 여기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르고 판판한 세상을 우리 함께 만들자고 말하려 애쓰는 까닭이다.

잊어서는 안 될 그날, 하늘이 놀라고 땅이 뒤흔들렸다.

한국사람 누구나 크게 놀란 입 다물지 못했다.

칼 든 남자가 날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살갗에 저절로 소름이 돋는다.

특히 여성 삶엔 곧바로 닿는 두려움이었다.

화장실에서 까닭 없이 죽을 수도 있다는 무서움, 캄캄한 밤 뒤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가슴속을 점점 더 크게 방망이질하는 공포 사실 이런 두려움과 무서움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늦은 밤 화장실 찾아가는 게 무섭다.

밤공기 마시며 골목길 걷는 게, 남자임에도 , 화장실 안에 사람이 있거나 골목길에 뒤따라오는 이라도 있으면 그를 살핀다.

가만히 뒤돌아보기도 한다.

여성 혐오 살인자 강남 화장실에서 묻지마 여성 살인을 했다.

김성민의 조현병 내력을 얽어 강남역 10번 출구를 물들인 노란 쪽지물결이 멈추기를 바란 자들이 있었다.

여성 혐오를 깨뜨려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강남역 10번 출구로 나선 시민의 뜻을 우연조현병으로 은근히 비틀려 한 것이다.

기독교 경전 때문에 여성은 남자 갈비뼈 하나쯤으로 여긴 자가 많다.

갈비뼈는 그 의미가 아니라니까,,

 그래서 여자에게 소홀히 대하는 거라면 경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남녀평등을 가르치려고 중앙 갈비빼를 택한 것이다.

작은 갈비빼로 소홀히 생각하게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중앙 갈비빼로 여자를 만든 것은 오직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인데 사람이 잘못 알고 실수한 것이다.

여성은 모자란 사람 이것도 잘못 됐다 여성은 모자란 사람이 아니다.

모자람으로 깔봤다면 세상은 모순이 많다.

여성은 백치미가 아니다.

얼굴이 아름답게 생겼다고 백치미로 덮으려는 것도 모순이 많다.

시대는 변했다.

조선시대가 아니다.

이치에 밝은 여성이 어찌 못생긴 덕이라 깎아내렸던 것이라니 비겁하게도 여성 혐오를 바탕으로 삼아 가부장제 사회를 짜고 다졌다.

이렇게 답답한 세상이다.

모든 게 변하고 있는데 이렇게 여성 혐오주의가 변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니 문제가 많다고 본다.

어머니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고 해서 지금처럼 아버지 마음대로 지배력을 누린 것이 아니다.

아기를 낳는 데 알맞은 여성 몸과 사냥하는 데 그나마 쓸 만한 남자 근육에 따라 제 나름으로 할 일을 나눠 맡아 했음뿐이었다.

그것 두고 더 무겁거나 가벼운 일로 나눠 서로를 대하지 않았다.

다만 유전자를 뒤로 이어가려면 아기를 낳을 사람이 꼭 있어야 했기에 자연스레 어머니가 집안 핏줄기 한가운데에 섰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때를 잊었을 뿐이다.

곰곰히 기억을  되살려 보면 여성 혐오가 쓰레기인 걸 알 수 있을 터,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쓰레기가 아니기에 쉬버리고 새로운 삶을 꾸려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함께, 세상 누구든 고르고 판판히 마주하는 게 가장 먼저 시작할 일일 것이다.

지구 곳곳에 온갖 혐오가 넘쳐 난다.

하지만 화해와 화합을 원하지 혐오와  여자 남자를 가르고 전라도 경상도를 가르고 반일을 조성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

뚜렷한 까닭 없이 총칼 휘두른 일 헤아리다 보면 사람이 점점 미쳐가는 것 아닐까 걱정되고 이걸 도무지 풀어낼 수 없을 듯 싶다.

이런 세상에 어찌 더 살아 갈 수 있을지 한 걱정이기도 하다.

누구나 걱정 없이 함께 웃는 삶을 만들어 갈 실마리가 무엇이고, 그 끝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몹시 궁금하다.

한국에서 주로 이삼십 대 남자가 여성 혐오에 잎장서는 건 취업 따위에서 여성에게 밀렸거나 계속 밀릴 두려움과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하니 왠지 밑지는 듯한 생각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직 온전히 그렇다고 밝혀진 것 같지는 않되 일리는 있다.

특히 취업에서 계속 밀리는 듯한 두려움의 뿌리에는 여성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성 즐거움을 가득 채워 줄 리 없을 테니 괜히 화가 나고, 성나니 욕하며 미워하는 거다.

스스로 모자란 걸 느끼던 남자들이 여성 혐오 깊이와 크기를 키워 가부장제남자중심사회를 짬짜미했다.

이 또한 여러 시민이 같이 다듬고 헤아려 깨뜨릴 일이다.

미투와 함께하는 사람에게서 밝은 빛을 본다.

누구 하나 몸과 마음을 억지로 짓밟히지 않는 세상에 우리는 누가 아파하면 얼마나 아픈지 살펴 따뜻이 감싸주고 한다.

세상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잘 안다기 보다 그리 느낀다고 할 수 있다.

가족과 유치원과 학교에 모인 사람들 삶 바탕이 그러니까.

혼자서가 아닌 함께 어울리는 삶, 자신들도 아파 봤으니 아픈 사람에게 눈길 주고 보듬는 삶.

자​신은 착하고 여성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희롱하거나 추행할 생각도 없다.

그럼 다 된 걸까 미투로 세상 참 시끄러운 듯한데  자신들은 괜히 얽히고 싶지 않다.

? 귀찮으니까.

​자신들이 가만히 있어도 누구 하나 나무랄 사람도 없다.












울타리를 미리 쳐 둔 채 미투에 얽히지 않으면 삶이 그야말로 완벽한 것 같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니, 사실 당신과 당신의 펜스룰은 비겁한 거다.

한국의 여성 검사들이 50%라고 한다.

검사들 사이에서 "​너는 여자 애가 발목이 그리 굵으냐! 여자는 자고로 발목이 가늘어야 한다"고 말하거나  술에 취해 머리나 어깨를 툭툭 때려댄 검사가 있었다고 한다.

여성이 있는 자리임에도 틈만 나면 음담패설을 늘어놓은 검사들도 있었다.

 웃으면 "여자가 그리 웃음이 헤퍼서 어디 쓰냐"고 나무랐다가 웃지 않으면 "여자는 안 웃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 검사, 노래방에서 부둥켜안고 춤 추자며 끈질기게 손 내민 검사,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검사부장은 왜 그 여종업원 팬티를 머리에 쓰고 있었느냐 "며 낄낄댄 여러 검사한국 검찰에 정말 이런 검사가 있는 건 처음 알았다.

법조인이 되려면 검사도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성검사는 힘들 것 같다.

"너 정도 나이면 남편감을  외국에서 찾거나 재혼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고 말한 검사회식 마치고 흩어질 때 "너는 안 외롭냐? 나는 외롭다. 나 요즘 니가 이뻐 보여 큰일 "이라던 핫아비 검사,

​"누나 저 너무 외로워요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저 한번만 안아 줘야 차에서 내릴 거예요"라던 버릇없는 검사.

​"에고 우리 후배 한번 안아 보자"며 와락 껴안는 짓이 잦았던 또 다른  핫아비 검사. “잊지 못할 밤 만들어 줄테니 나랑 자자고 말한 핫아비 검사 하나 더,

한국 검찰에 정말 이런 검사가 있는 걸까.

대체 손가락 몇 개를 써야 다 꼽을 수 있을까.

참으로 딱하고 기막힌다.

한국 검찰에서 여성을 물건처럼 여겨 여성의 몸을  향해 더러운 손을  뻗고 혀놀리는 검사가  사라지길, 바란다고 한다.

여성이 고르고 판판한 세상 씨앗에 힘을 보태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보통선거는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 앉은 자리가 높은지, 남자인지, 배우고 익힌 게 많은지 따위를 가리지 않고 다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표 던질 수 있는 체계에 여성이 함께한 게 얼마 전이란 얘기다.

125년 전인 1893년 뉴질랜드 여성이,  1906년 노르웨이, 1913덴마크와 아이슬랜드 1915, 러시아 1917, 캐나다 독일 1918, 미국 1920, 이어지기 전까지는 표를 던질 권리가 없었다.

영국 1928, 스웨덴1931, 브라질 1933, 터키1934, 필리핀1937, 프랑스1944, 이탈리아 1945으로 늦어졌다.

일본은 1946년에야 보통선거를 시작했고, 중국 1947, 벨기에와 한국은 1948, 그리스1951, 멕시코1953년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신지예 후보는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여성 정치인이 여성 정책, 성 평등 정책을 이끌어 나가고 여성의 목소리를 스스로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지배하는 가족짜임새는 1만 년 동안 아들에게로 이어져 오늘에 이어졌다.

남자는 바깥일, 집밖에 나가 경제 사회에 얽힌 노동에 걸맞는 지위와 명예 따위를 누렸다.

한국 남자가 자기 짝을 두고 집사람이나 안사람으로 낮춰 부르게 된 바탕에 가부장제가 있는 셈이다.

여성과 남자를 여남이라 하지 않고 남녀라고 한다.

이것 역시 여자를 낮추어 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2015년 십이월 12일에야 처음 표를 던질 수 있었다.

페미니즘은 오랜 가부장제 때문에 비틀어지거나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생각이고 움직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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