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 아웃케이스 없음
구스 반 산트 감독, 숀 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 <밀크>는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인 하비 밀크(1930-1978)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미스틱 리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숀 펜은 영화 <밀크>로 2008년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다.

숀팬은 동성애자이면서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권운동가,

사람들과 자신의 삶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인물 하비를 마치 자신인 양 실감나게 묘사한다.

<엘리펀트>,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 등등 탁월한 연출력으로 실험영화와

예술영화를 만들어온 구스 반 산트가 연출을 맡았다.

하비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인 그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자 했고 이 영화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셈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조쉬 브롤린이 하비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하비의 의안을

사사건건 반대하는 댄 하이트 역을 맡았다. 

마침내 그는 하비를 살해한다.

(실제로 댄 하이트는 하비를 죽인 과실치사죄로 5년 형을 살고 나온 이후 2년 뒤에

고향에서 자살하고 만다)






<스파이더맨>과 <127시간>에서 흥행배우로 거듭난 제임스 프랑코가 아름다운 애인 

스콧(후일 에이즈로 사망한다)역을 맡아 열연한다.

(영화에서 하비가 흑백사진에 담은 제임스 프랑코의 웃는 얼굴이 아름답다)

언제나 새로운 형식으로 일정한 틀을 깨버리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연출과 

명배우 숀팬을 비롯,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감동 그 자체이다.

영화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하비와 동고동락하며 인권운동을 했던 동지들로

엔딩 크레딧에 그들의 근황이 소개되어 흥미롭다.


영화는 50~6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자들을 탄압했던 시기의 흑백자료화면과

영상들을 비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긴박하게 보여 주면서 시작한다.

하비는 40세 되는 생일에 지하철 입구에서 스콧을 만나 새로운 희망을 품고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지금은 동성애자들의 메카가 되었다)에서 작은

사진가게를 연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편견과 부딪치면서 차별받는 소수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한다. 마침내 그는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소수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선거에 뛰어든다.




 
아일랜드계와 카톨릭 보수주의자들의 세력이 강했던 지역에서 세 번의 도전 끝에

시의원에 당선된다.



 
영화는 중간 중간 하비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을 보인다.

정치판에 들어서면서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그는 자신의 생각들과 신념에 대해

육성으로 녹음하여 남긴다.

(하비가 남겼던 녹음 기록들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데

큰 밑그림이 되었다고 한다.




 
 하비는 언제나 "여러분을 동지로 모십니다."라는 말을 서두로 연설을 시작한다.

그 말은 울림이 있으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버리는 마력이 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생명을 바쳤고 지켜내야 하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사람들간의 연대와 결속을 중요하게 여겼고 자신이 그랬듯이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신념을 불어 넣어 주고 동기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수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일이다.

영화는 하비가 1978년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신념을 위해 살았던 그의 마지막 8년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하비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치로 풋치니의 오페라 장면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공화정을 지지하던 친구를 숨겨두고 친구의 이름을 팔지 않았던 카바라돗시의 죽음과

이를 슬퍼하면서 오열하는 토스카...

무대를 바라보는 하비의 옆모습이 말할 수 없이 쓸쓸하다.

집에 돌아와 담요를 덮고 쇼파에 앉아 창밖 먼 하늘과 새벽의 여명을 바라보며

스콧에게 전화해 울먹이며 말한다.

"잃고 싶지 않아"  "이 느낌을 .............."

소름끼치는 장면이다.

숀팬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를 보낸다.

이토록 진한 슬픔과 허무를 숀팬 그가 아니면 나타낼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밀크>의 상영관이 적었고 상영 자체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의 상황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하비가 활동하던 70년대는 동성애자들이

하느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반윤리적인 존재들이라고 지탄받았으며

자신이 게이임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커다란 용기이던 시대이다.

개인의 천부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그의 정치운동은 단순하게 동성애자들만의 권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노인, 흑인과 동양계,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없는 미래에 대한

염원이자 희망이었다.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살다 간 하비 밀크가 존경스럽다.




"저는 이 운동이 계속 되기를 요청합니다.

이건 저의 개인적인 소득도 아니고

자만도 아니며, 권력에 대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들'이 밖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게이뿐만이 아니라, 흑인도, 동양인도, 노인들도, 장애인들도

'우리들'이어야 합니다.

희망이 없으면 '우리들'은 포기합니다.

희망만으로는 우리가 살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그러나 희망 없이는 삶이 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

그리고 당신도

당신도

그들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 하비 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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