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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어딘가 두 평 마음의 집이 있다 - 주말캠핑 3년, 소심한 가족의 푸른 이력서
김종보 지음 / 황금시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남편과 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에 자연을 느끼며 자라기를 바랬다.
당시에 꽤 고가의 텐트와 장비를 구입했고 여름 한철이면 계곡이나 바다로 향했다.
계곡에서 아이들과 조그마한 물고기를 잡고 밤이면 무섭도록 크게 들리던
물소리와 차가운 공기에 놀라기도 하면서 간단하게 준비해간 참치캔으로
김치찌개를 끓여 맛있게 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동해안의 어느 해수욕장에선가.
밤새 모기에 시달리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텐트를 치며 힘들었던 기억을
끝으로 아쉽게도 텐트 생활을 접었다.
더구나 작은 아이가 보이 스카우트 캠프에 텐트를 가지고 가더니
그예 고장내고 말아서 텐트를 다시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마음이 동하면 늦은 밤 행장을 꾸려 자는 아이들을 보듬어 옮겨 차를 달렸다.
강원도 대관령 어느 기슭에서 새벽의 여명을 보며 감탄하곤 했던 것도 생각해보면
젊어 한때 가능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때보다 짐이 줄고 아이들도 다 자라 힘이 들지 않지만
예고에 없던 여행을 떠나는 선물같은 일들은 오히려 줄었다.
작가이자 3년차 캠퍼인 김종보는 책 <숲 어딘가 두 평 마음의 집이 있다>에서
가족과 함께 3년 동안 사계절 캠핑을 다니며 느꼈던 소회들을 기록하였다.
저자의 약력이 이채롭다.
스물세 살에 시인이 되고 '빈터'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문단에서 사라졌다.
근 17년 만에 돌아온 그는 아이가 다섯 살이 된 가을부터 캠핑을 다니면서
인터넷 캠핑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책속에서 그는 오래 묵힌 김치가 곰삭아서 제맛을 내듯이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글솜씨를 막힘없이 펼쳐놓는다.

모든 첫경험이 그렇듯이 그 가족의 첫 캠핑은 성공적인 것이 아니었다.
10월 강원도의 밤기온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그들의 이빨 떨리는 소리가 내게도 전해져 온다.
나 역시 텐트안에서 잠을 이루던 불편함을 잊지 않았으니..
베개도 불편, 바닥도 울퉁불퉁, 엄청난 더위 아님 추위에 시달린 시간들을
여직까지 기억한다.
돌이켜보면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했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들의 첫 캠핑은 그야말로 추위와의 싸움이었고 이후 그는 리빙셀을 비롯
고가의 장비들을 마련하면서 카드빚에 시달리지만 새로 도착해온 장비들을
기쁘게 맞으며 설레임을 안고 주말이면 캠핑을 떠난다.
눈이 내리는 중미산에서 폭설을 만나 제 몸보다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며
신이 난 아이를 보며 저자는 무능한 가장이 아이에게 공짜로 하게 된
눈 선물에서 야영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캠핑을 시작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깨닫는다.
야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야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러면서 그는 불필요한 장비들을 중고장터에 내놓고 반드시 필요한 장비들만을
지니자고 결심한다.
낙엽을 털어낸 산음의 가을숲에서 때가 되면 버릴 줄 아는 숲의 모습을 보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자고 결심한다.
그는 그렇듯이 숲에서 떠나고 이별하는 법과 버리는 법을 배운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숲속에서 가족과 함께 계절을 느끼고
눈과 비를 만나고 밤이면 쏟아지는 별을 헤아리면서
계절따라 산이 주는 열매를 거두며 추억을 쌓는다.
때로 사나운 비와 번개, 우박, 그리고 폭설을 만나 대피하는 등 무모하기도
하지만 이 가족의 사는 방식이 참으로 예쁘다.
아직 아이가 어리고 부부는 젊고 가족이 힘을 합쳐 추억을 만드는 일이니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는 이사를 앞두고 주말이면 자주 찾았던 서삼릉 숲을 찾아 생각한다.
자신들이 사라진 서삼릉 숲에 또 다른 무모하고 막무가내인 가족이 나타난다면,
그들이 숲을 사랑하고 주중에도 숲에 대한 짝사랑으로 사랑니를 앓는 사람들이라면
가끔 한쪽 눈 감아주며 하룻밤의 외도를 허락하라고...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흔적 없이 사라질 그들의 하룻밤을
허락해도 좋지 않겠는가.
숲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며 즐기는 곳도 아니다.
단지 한 마리 새처럼 깃들다가 떠나는 곳임을 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