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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코의 오이시이 키친
타니 루미코 지음 / 우린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일본음식'하면 떠오르는 두가지가 있다.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일본에 다녀오셔서 말씀하셨다.
"아야. 일본에 꼭 가봐라. 참말 깨끗하고 좋아야. 거리랑, 집이랑 진짜 깨끗하드라.
특히, 음식이 아조 정갈하고 보기 좋게, 먹기 좋게 조금씩 나오드라. 꼭 가봐라."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고 소식을 하시던 아버지는 조금씩 나오는 일본음식이
낭비가 없고 깔끔하다는 데서 만족하셨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같이 어울려 축구하고 잠자리 잡으러 다니고 너네 집 구분없이
밥도 같이 먹던 송이라는 이웃집 아이가 있었다.
송이의 엄마는 일본에서 살다 왔는데 양배추로 만든 부치개를 맛잇게 만들곤 했다.
이사를 오고 소식이 끊겼지만 송이와 송이엄마를 생각할 때면 그때 먹었던 양배추전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음식은 그렇게 같이 먹었던 시간과 사람들을 더욱 그립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다 자라 청년이 되었듯이 아마 송이도 잘 생긴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가수 김정민의 예쁜 일본인 아내가 내놓은 책 <루미코의 오이시이 키친>을 통해
'오코노미야키'가 바로 송이엄마의 양배추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리와 레시피를 읽어 보며 마치 송이엄마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루미코는 얼굴만큼 요리도 예쁘게 잘한다. 아니, 얼굴보다 마음이 더 예쁘다.
그녀는 매일 남편의 체력관리를 위해, 밥투정하는 아들 둘을 위해 밥상에
무얼 차릴까 고민하고 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영양가 높은 식단을 짠다.
대부분의 요리 관련 책들이 그렇듯이 계량을 철저히 하는데 비해
루미코의 계량단위는 가족의 구미와 식성에 맞추는 것이다.
이를테면, 1큰술은 '밥숟가락 수북이'이고 1작은술은 '티스푼 수북이'이다.
재료가 좀 모자라도, 조금 모양이 안나고 살짝 부족한 맛이 난다고 해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즐겁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음식이고
맛있는 요리라는 그녀의 음식 철학에 수긍이 간다.
TV 음식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넣어야 할 재료들의 목록을 보며
'어휴!! 제대로 된 요리는 내게 너무나도 벅찬 일이야' 라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가쓰오부시가 없다면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장식용 파슬리나 김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 먹기 싫은 재료가 잇다면 억지로 넣지 않아도 된다는 그녀의 말은
요리를 참 자유롭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정성과 사랑을 듬뿍 담아 요리를 만드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책속에는 요리와 관련 레시피에 덧붙여 일기처럼 자신의 생각들을 기록한 글들이
실려 있다.
음식을 권하면서 "더 먹어, 더 먹어! 이건 살 안 쪄!"라고 말하는 한국인들을 처음에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것이 한국인들의 정이고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잘 차려진 상을 보면서 "상다리 부러지겠다"고 말하는 것에 진짜로 상다리가 부러지는
것으로 알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며 사는 모습,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담겨 있어 요리만큼이나 생활을 예쁘게 꾸려 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소개하는 음식들의 레시피는 쉽고 간단해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재료도 구하기 쉽고 집에 있는 재료들로도 짧은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 많다.
오니기리는 남편과 같이 등산갈 때나 아침에 입맛 없다고 밥먹기를 힘들어하는
큰아들에게 만들어주면 색다른 맛에 잘 먹을 것 같다.
비오는 날에 양배추를 큼직하게 썰어 오징어 한마리 썰어 넣고 맛있게 부쳐봐야겠다.
"요리는 단순히 '먹는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을 만드는 일이고 그 순간의 행복을 전하는 일이고,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속삭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앞에 놓인
한 그릇 음식이 때로는 사랑이 되고, 위로가 되고, 그리움이 되고, 배려가 되고,
유쾌한 농담이 된다."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