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강제윤 글.사진 / 홍익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등짐을 하나 지고 낯선 곳을 걷는 상상을 한다.

그곳이 섬이어도 참 좋겠다.

걷다가 지치면 햇빛에 겨워 가늘게 뜬 실눈으로 쪽빛 바다와 둥둥 떠있는

저쪽 섬들을 바라보고 이쪽 섬을 한없이 돌다가

흐르는 구름과 파도소리를 벗삼아 달디 단 낮잠 한 번 청하고 싶다.

나는 상상속에서 어딘가를 끝없이 걷고 있다.

한도 끝도, 원도 없이 걷다 보면 내 생각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4400 여 개의 섬이 있다.

그 섬들 가운데 500여 개의 섬이 유인도이다.

섬 순례자인 강제윤 시인은 2006년 가을부터 10년 동안 사람이 사는 모든 섬을

걸어서 돌아보려 한다.

그동안 그는 200여 개의 섬을 걸었다.

시인의 책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는 바로 그 섬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곳에서 늘 같은 모습으로 살아온 섬사람들에 대한 가슴 따뜻한 기록이다.

시인의 깊어가는 사색들과 만나고 제목 만큼이나 멋진 자연의 풍광을

담은 사진들에서 한참을 머무르게 된다. 

섬길을 걸으며 섬에 얽힌 전설과 섬의 역사, 섬사람들의 인정과 사는 모습들에 대해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때로는 처연함으로 읊어 내려가는 저자에게서 우리 산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나그네의 모습이 엿보인다.

섬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인정을 전해 듣는 기쁨이 크지만 섬여행이 즐거움과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서 묻어나는 시인의 안타까움에 깊이 공감이 간다.

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섬사람들의 수호신으로 살아온 토착신들이 내몰리고

당산신앙을 비롯한 토착신앙의 사라짐,

혹여 이 땅의 정신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닌가,

간척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갯벌이 없어지고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섬,

노인들만 남은 섬, 평생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섬노인들의 현실,

무차별 포획으로 인해 좋았던 어장의 추억이 그저 옛날 일이 되어버린 현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그나마 있는 학교마저 폐교되는 현실 등등...

어찌해볼 수 없는 현실의 무거움과 막막함이 느껴진다.

 

저자는 천천히 걸으면서 스스로와 대면하고 세계와 내밀하게 소통하면서

사색의 정수를 들려준다.

 

"섬은 마치 생의 압축판같다.

그토록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은 끝에 결국 도착한 곳은 처음 그 자리이다.

그곳은 섬에서 가장 낮은 자리이다.

사람이 높은 곳에 있다가 아무리 낮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해도 처음 그곳이 아닌가.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253

 

"태풍이 다가오는 바다에서 나는 문득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살았던 것이 과연 삶이었을까.

나는 늘 지난 삶이 실제 같지 않다.

지나간 시간은 모두가 꿈이고 전생인 듯 아득하다.

이 순간도 꿈일까.

오늘 망망대해의 유람선은 태풍 앞에서 한 가닥 가랑잎에 불과하다.

가랑잎에 의지한 목숨들.

어째서 삶은 이토록 위태로운 바다 같은가.

험난한 생애의 바다에서 생사는 한순간이다.

하지만 순간인 줄 알면서도 영원처럼 살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삶이니,

삶이여,

한 조각 꿈처럼 덧없다 한들 어찌 더없이 소중하지 않으리!" ~ 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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