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상견례>는 <방자전>,<시라노 연애 조작단>, <부당거래> 등에서 조연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계의 블루칩이 된 송새벽의 첫 주연작이다.
배우 송새벽은 어딘지 어눌하고 부족한 듯 싶지만 내면의 멋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인상이 선하고 연기하는 표정과 말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주연에 대한 부담이 있느냐는 질문에 단지 연기 시간이 늘었을 뿐, 주.조연이 함께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답을 했다 한다.
좋은 연기를 위해 무대 아래부터 똑바로 살자고 생각한다는 그의 인터뷰 글을 보며
그가 머지않아 우리 영화계에서 큰 배우가 되리라는 예감이 든다.
영화의 첫 장면, 군대를 마치고 나오면서 보초를 서는 후임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현준의 한마디 "욕 봐라이~ㅇ"는 커다란 감동이다.
눈물나게 웃게 했던 그 말은 전라도의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다.
감독과 배우 모두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내는 그 탁월함에 박수를 보낸다.
"음흐흐흐~~ "하며 눈을 감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을 때는 이사람의 모습이
본디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실제로도 전라도가 고향인 송새벽, 김수미, 박철민 등의 사투리에 흠뻑 빠져 즐거웠다.
마음은 언제나 고향에 머물러 있는 나로서는 이 영화를 통해 향수를 달랜 셈이다.
누구 할 것 없이 배우들 모두 맡은 배역에 맞춤옷처럼 딱 드러맞는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찰진 재미와 웃음을 선사한다.

다홍과 현준은 펜팔을 하며 마음을 주고 받는다.
휴대폰이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는가.
편지를 통해 느리지만 천천히... 수줍게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는 과정은
아름답고 담백하다.
속전속결로 만남과 이별이 이뤄지고 빠르고 간편하게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개인 휴대폰과 문자를 사용하는 현대에서 80년대의 아날로그 사랑은 답답해 보일지도 모른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하늘을 쳐다보고 미소를 띠고.
받은 편지를 소중하게 가슴 안에 품는다.
엎드려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연인에게 보낼 편지를 다듬고 또 다듬는다.
80년대는 그랬다. 그것이 낭만이고 느림의 미학이자 멋이었다.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시대를 그리워한다.
그 시절을 살았던 나는 촌스럽게 만나고 수줍게 사랑하는 현준과 다홍을 통해 옛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자꾸만 선을 보라는 다홍 아버지의 성화에 급기야 현준은 부산행을 결심하고...
'서울말 하기' 특훈을 받게 된다.

다홍의 부모를 만난 현준은 자꾸만 튀어 나오려는 전라도 말 대신에 또박또박 서울말을
하기 위해 분투한다.
복싱으로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했던 배우 이시영이 애교스러운 말과 표정으로
사랑에 달뜬 경상도 처녀 역할을 멋들어지게 소화한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다홍 오빠 운봉으로 분한 정성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면 그는 국내에서 최고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만화가 현지가 현준의 필명임을 알고 주저없이 현준의 편이 된다.

그토록 반대하는 만화가의 길을 걷는 아들 현준을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아들은 그토록 반대하는 경상도 처녀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데
경상도 처자와의 혼사는 절대로 안될 일이다.

다홍의 엄마 춘자는 톳죽을 허겁지겁 먹는 현준을 보고 전라도 총각임을 알았지만
어릴 적에 엄마를 잃은 애처로운 전라도 청년 현준을 감싸 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자신 역시 벌교 처녀였지만 전라도가 싫다는 남편을 속이고 철저하게 서울여자로
위장하고 수십 년을 살아왔다.
이제 그 위선을 벗고 밝은 천지에 전라도 여자로 살아가고자 한다.
영광은 모든 것을 다 용서할 수 있어도 전라도 사람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전라도 사람들은 애초에 상종해서는 안되는 것들이다.

양념 역할을 톡톡이 하는 박철민과 김정란, 경상도 노처녀와 전라도 노총각은
현준.다홍에 이어 또 하나의 커플이 된다.
경상도와 전라도...
서로 의지하고 위하며 사랑하고 살아도 부족한 한세상이다.
이제 그만 너네없이, 구분말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내내 웃었다.
그것으로 영화는 충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