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황주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은 저자 황주환이 20년 가까이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교육현장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한 책이다.

제목을 보고 아기자기한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들이 실려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은 첫 페이지를 들추며 여지없이 깨졌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문제들을 다시 되짚어보게 하고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돌아보지 않으면 무관심속에 묻혀 버릴 진실의 파편들이 책의 곳곳에 실려 있다. 

우리 사회의 감춰진 부조리를 마주 대하는 것은 아예 모르거나 혹은

의식없이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자기만족과 행복은 마음 안에서 나온다' '사랑한다'

등등의 말들이 때때로 지배의 논리나 이데올로기로 포장되고 편하게 살아가기

위한 위장임에 다름 아님을 지켜보게 된다.

저자의 날카로운 글은 깨달음과 각성으로 이끌어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피할 수는 없는 일... 끝까지 생각하고 되물어야 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고 단지 입시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모든 것이 대학입시라는 블랙홀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한국사회에서 중.고교의 교육이란 그 자체로 완성될 수도 없고

생명력 또한 지닐 수 없다.

모두가 공교육 부실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학교가 어떤 인간상을 추구하고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경쟁만을 강요하고 최고의 성적만이 인정받는 교육현실에서 어떻게 남을 위한

배려와 공동체 정신이 생길 수 있을 것인가..

독일로 이민 간 우리나라 아이가 출신국의 놀이를 소개하라고 해서 의자 주위를

빙빙 돌다가 먼저 차지하는 놀이를 가르쳤다고 한다. 신호가 떨어졌는데도

아무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서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저 자리에 앉으면 친구가 떨어지는데, 어떻게 내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어?"

오직 경쟁과 석차만을 학습 받아 이미 앉은 친구마저도 밀쳐내는 우리네

모습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저자는 경쟁이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라고 단언한다.

경쟁력은 상호협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선진교육이 증명하고 있다.

과다경쟁으로 인해 인성과 윤리마저 스러져가는 사회이다.

이제 교육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경쟁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진정 어떤 사회를 희망해야 하는가...

저자는 아주 작은 것의 시작, 아주 작은 마음들에서 비롯되어 세상은 바뀌고,

세상은 몸을 틀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책속의 책... 이와 같은 종류의 책을 만나 기쁘다.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사유에 영향을 미친 책들을 소개하는 글들이 실려 있다.

저자는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청년 예수를 떠올린다.

겟세마네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던 예수와 주린 배와 슬픈 어깨를 가진

청년 전태일의 고독을 알 것 같다고 고백한다.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루쉰의 <아큐정전>, 강명관의 <열녀의 탄생>,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 등의 책들과 그들에 대한 저자의 서평을

읽는 기쁨이 무척이나 크다. 

특히, 그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전범 아이히만은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 서게 된다.

유대인인 아렌트가 그의 재판을 지켜보며 작성한 보고서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아이히만은 맨손으로 새 한마리 죽이지 못하는 자신이고 한번도

'직접 자기 손으로'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기에 자신에 대한 살인죄 기소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복종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였고 이상이었으며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진술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그의 정신상태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소견을 내렸다고 하니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단지 명령대로 충실하게 자신의 일을 한 셈이다.  

그는 사람이 권위 앞에서 도덕과 정의의 감각이 얼마나 쉽게 마비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보기이다. 

아렌트는 무사유(無思惟)를 악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한 무사유다.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자는 간절하게 질문하라고 조언한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거침없는 질문들, 정치적인 것들에 대한 거부,

갇힌 언어에 대한 자기반성,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질문하기 등을 

생각하다 보니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고 얼마나 많이 사유해야 하는지 아뜩하다.

내자신이 참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겠다.

 

"이 불감(不感)의 땅에도 길이 있을까?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또 언제나 희망을 멈추지 않았던 루쉰의 예언을

가슴에 새기자.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질문이 우리의 길을 만들 것이다." ~ 6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