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섬을 품다 - 섬은 우리들 사랑의 약속
박상건 지음 / 이지북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시인 노향림은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라고 노래했다.

나에게도 섬과 바다, 그리고 그리움은 같은 단어처럼 여겨진다.

완도군 신지도 동고리...

바닷가 섬마을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 4년 동안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섬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주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바닷가 섬마을에서의 추억으로 따뜻할 것이다.

시골이나 섬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오랜 소망 또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한 것이니

수십 년을 지배해온 내 의식과 정서의 뿌리인 셈이다. 

어디 4년에 그치랴...

선구점을 했던 아버지는 현금이 부족한 뱃사람들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팔았다.

물고기와 김, 미역 등의 수확철이 되면 엄마는 섬사람들에게 수금을 하기 위해

추우나 더우나 젖먹이인 나를 포대기에 업고 섬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다.

아마도 엄마는 해풍을 맞으며 이집 저집의 대문을 두드렸을 것이고

언덕위에 올라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멈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았을 것이다.

그런 후에 나를 추스려 업고 잰걸음을 재촉했으리라.

잰걸음을 걸었을 엄마의 흰고무신이 보이는 듯 하다.

엄마의 등뒤에서 쌔근쌔근 잠자던 나는 볼을 간질이는 바닷바람에 뒤척이며 깨서

엄마와 함께 먼 바다와 하늘, 갈매기와 떠가는 고깃배를 쳐다보았을 것이다.

바닷바람은 땀방울이 흐르는 엄마의 얼굴을 말개 주었듯이 엄마의 등뒤에서 흥건한

땀에 젖었을 나의 얼굴과 머리도 말겨 주었으리라.

유난히 나를 사랑하셨던 아버지...

무인도에서 아버지와 단둘이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큰바위 위에 누워 보이던 흰구름,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달게 자던, 그리고 드물게 울리던 낚시 방울 소리가

아직 들리는 듯 하다.

섬마을의 언덕길을 걷다 지쳐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큰 댓자로 누워 노을빛으로

물들던 하늘을 바라보았던 시간들이 모두 과거로 흘러갔지만... 

그리움은 여전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 섬과 그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간다.

 

섬을 좋아하는 내가 섬여행 전문가인 저자의 책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저자의 섬이야기에 흠뻑 빠졌고 바람난 봄처녀처럼 섬여행을 하고 싶은 갈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바다, 섬을 품다>는 동해와 서해를 돌아 남해섬에 이르는 40곳의 섬들을 저마다의

특색을 담아 소개하고 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섬들은 소제목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동해 최북단 ~ 대진항

눈 내리는 해안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 후포항

고요하고 적막한 바닷가 ~ 죽변항

들리는 건 통통배, 갈매기, 파도 소리뿐 ~ 구룡포항

나를 돌아보는 여행 ~ 석모도

매바위에 앉아 노을에 취하다 ~ 제부도

외로움이 차오르는 어촌 포구 ~ 영목항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보지 못하네 ~ 압해도

고요하고도 진한 여운 ~ 흑산도

작은 섬 거느리고 쪽빛 바다에 웃는 ~ 완도

풋풋한 삶의 오솔길 따라 ~ 마량포구

일몰이 아름다운 해안도로 ~ 삼천포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섬 ~ 사량도

 

섬은 그안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며 거친 바다바람과 싸우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만선의 고깃배가 들어와 파닥이는 고기들 앞에서 경매가 벌어지고 수 초 만에

낙찰이 이루어진다. 찬바람 거센 바다를 헤쳐온 고기들은 싱싱하다. 

밤잠 설치며 항해한 어부들의 삶의 무게는 고기가 팔리는 순간 가벼워진다.

어부들은 그 홀가분한 마지막 마음을 위해 늘 먼바다로 출항할 터이다.

저자는 섬과 바다의 적막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눈물지으며

폭풍과 썰물, 지는 노을을 보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고 한다.

밀물과 썰물의 이치를 보며 삶이란... 어쩌면 접고 펴는 일, 무엇을 접고

싶거든 반드시 먼저 그것을 먼저 펴주라는 지혜임을 깨닫는다. 

꽉 차서 부서지던 바다는 썰물이 되어 밑바닥을 드러낸다.

작은 게 한 마리에서 지렁이까지 세상에 다 보여주면서 하찮은 미물에게도

삶이 있고 사랑이 있음을 알려준다.

비워내기이다. 다 채우기 전에 한 번은 비우라는 삶의 상징이다.

"더러는 비워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폭풍이 불어올 때 방파제를 향해 무섭게 뛰어오르던 파도는 어느 순간 잔잔해진다.

자연의 위대함은 우리에게 자연 앞에서 매사 겸허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등대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여러곳에서 밝힌다.

닻을 올리고 갈매기 떼 데리고 출항하는 섬사람들의 희망이 되어 빛나는 등대.

꺼지지 않는 삶의 등불로 바다를 지키고 밝혀주는 등대.

사람과 배가 오가는 곳에 늘 등대가 있다.

등대가 있기에 마음 편히 먼바다에서 항해를 하고 어부들은 고기를 잡는다.

자연에 거스름 없이 순응하며 욕심없는 삶을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순수한 인정과

풋풋한 삶, 그리고 이름도 조건도 없이 여전히 이 한세상 누군가를 위해 불을

반짝이는 등대는 서로 닮아 있다. 

바다와 섬과 섬사람, 그리고 등대는 영원히 동행하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섬여행은 철썩이는 파도소리, 빛나는 햇살, 섬 안의 들길, 섬 모롱이를 걸으면서

보이는 해안 절벽 아래 펼쳐진 바다 풍경, 어민들의 생동하는 삶의 현장,

섬사람들의 정겨운 인심, 등대의 한적함과 여백의 아름다움 등을 마음껏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하는 섬여행은 생활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여유로움, 평온함,

사랑, 낭만, 추억 등을 떠올리게 하는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 김생진의 '무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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