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의 비밀
틸만 뢰리히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카라바조의 이전에도 미술이 있었고 카라바조 이후에도 미술이 있었다.

그러나 카라바조 때문에, 이 둘은 절대 같은 것이 될 수 없었다.' ~ 책의 첫 페이지

 

전통과 관습의 굴레 안에 가두기에는 너무도 자유로운 영혼 카라바조...

천재화가 카라바조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사후 400주년인 2010년을 기념하여

역사소설가 틸만 뢰리히에 의해 출간되었다.

저자는 카라바조의 격정적인 삶을 한 편의 다큐처럼 펼쳐 보여준다.

그의 짧았던 삶의 궤적에 맞춰 작품을 그리게 된 배경과 상황을 묘사하고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마치 까라바조가 살아나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의 짜임만으로도 재미있으며

당시 사회 문화와 종교적 분위기등을 엿볼 수 있다.

732쪽에 달하는 장편이지만 그림에 대한 재미있는 추리들이 곁들여져 술술 넘어가고

소설의 주재료인 명화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카라바조는 파괴적인 성향과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으로 악마적 천재로 불리우며

광기어린 삶을 살았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양성애자이기도 했던 그는 급기야 사람을 죽이고 쫓겨

다니다가 객지에서 서른 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살인의 이유가 죽어가는 사람의 표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함이었다는 말이 있다)

그는 변두리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도시에서 유명한 창녀를 모델로 성모 마리아를 그렸으며 거지와 집시, 하인들을

사도들로 표현했으며 성스러운 이야기들을 파괴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으로 묘사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단순하면서 움직임을 포착하고 마음의 느낌대로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들 속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았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추하거나 더럽거나 뚱뚱하거나 야위어서 우리가 흔히 길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행인이나 술꾼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일갈했다고 한다.

"집시와 거지 그리고 창녀들. 오로지 그들만이 나의 스승이며 내 영감의 원천이다."

 

종교화와 성화가 유행하던 르네상스 후기에 접어들어 공포스럽도록 사실적인

그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로 갈린다.

당시 실력자였던 델 몬테 추기경의 전폭적인 후원을 입기도 하였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그의 재능을 시기하는 무리들은 그의 작품이 반그리스도적이며

악마적이라고 평가하였다. 

19세기의 영국 작가 존러스킨은 카라바조가 추악함과 공포, 죄의 오물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썼다고 한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그의 작품속 인물들은 파괴적이고 음습한 기운을

풍기면서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의 얼굴은 이탈리아 화폐에 등장하고 있으며 그는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국민화가로 자리잡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카라바조의 23작품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작품은 '의심하는 토마스'이다.

예수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는 토마스와 호기심 가득한

시선의 두 사도들, 옷깃을 잡고 상처를 열어 보이며 힘없이 고개숙인 예수가 있다.

예수의 환부에서는 당장 피고름이라도 흐를 듯... 

토마의 손가락 끝에서는 예수의 몸 속 상처가 만져지는 듯 하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로 주제를 부각시키고 사실감을 더하는 그의 기법은 강렬하다. 

자신을 모델로 한 <병든 바쿠스> 역시 인상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이며 삶에 지치고 찌든 모습이지만 구원을 갈망하는 것 같은

소년의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영혼의 구원을 바랐을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

실제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작가가 상상한 결과와 비슷한, 혹은 더욱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듯 싶다.

파도에 휩쓸려 죽는 그의 최후는 마음아프다.

바로크 미술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한 획을 그었던 대가의 최후는 참으로 허무하다.

기구했던 삶과 예술혼, 정열적이고 파괴적인 그의 성향이 불세출의 작품들을 탄생시켰다면...

그 자신은 고독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평범한

화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명화를 감상하게 된 행운을 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의심하는 토마스' 1602~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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