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아들이 두번째 휴가를 다녀갔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무슨 책일까... 궁금해서 식탁 위에 놓인 책을

들춰 보니 '진중문고 ~ 군장병들에게 제공되는 책'이라고 씌여 있다.

아들은 휴가 나오는 기쁨을 만끽하며 버스안에서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명함 한장이 꽂혀 있는 것을 보니 아마 그곳까지 읽은 모양이다.

부제가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 에세이'이다.

혹시... 아들은 위로받고 싶어서 이 책을 읽은 것일까.

 

유난히 기쁜 날이 있는 반면 하루중에도 후회하는 일이 생기거나 과거의 일들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찬 날도 있다. 

이 책은 마음이 우울해질 때,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할 때, 바쁜 나날들 가운데

숨을 돌리고자 할 때 가만 들여다보면 좋을 것 같다.

책속에 실린 그림들은 언어학자인 저자의 해박한 보조해설이 곁들여져 더욱

특별하게 재탄생한다. 그림과 관련한 영화, 책, 음악, 신화 등의 이야기와 

단상을 통해 따뜻한 기억속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자의 그리움도 읽혀지고

명화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저자의 해석대로, 또는 마음 가는대로

다양하게 보며 즐길 수가 있다.

 

저자는 아버지 살아 생전에 좋아하던 떡국을 끓여드리지 못했다고 후회한다.

한동안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떡국을 먹지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 떡국을

먹으며 아버지를 기꺼이 추억하는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저자는 '마리안 스토크스'의 [떠나가는 기차]에서 떠난 기차의 흔적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떠나기 전에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고

말할걸... 하고 후회한다.

 

로댕과 클로델의 이야기는 역시나 마음을 사로잡는다.

로댕이 영광 속에 예술가로서의 정점에 이르는 동안 클로델은 거대한 스승 로댕의

그늘 아래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

인정받지 못하던 그녀의 감정은 피해망상증으로 바뀌고 클로델은 이후 정신병원에서

30년을 보냈다. 저자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사랑하는 사이도 가끔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낯설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본능이 이성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경계없음의 경지는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세계를 소멸시켜 경계없음에 도달하는 것은 하수이다.

자기영역을 굳건히 지키면서 경계를 넘어설 수 있어야 고수가 되는 것이다."~ 29

부모자식과 형제, 부부와 연인 사이에서도 경계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은 그야말로 비루한 한 여인의 나신에서 진한 슬픔과

비애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모델을 선 여인 '시엔'은 낮에는 재봉일을, 밤에는

매춘으로, 미혼모에 고질적인 성병에 걸린데다 또다시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한 채

버려졌다. 그런 그녀를 그리며 고흐 역시 생의 절망과 비탄을, 그리고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화가는 세상과 사람, 그리고 사물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므로...

그렇게 탄생한 [슬픔]을 보다 보면 절로 비탄의 감정이 솟아 나온다.

 

'오스카 코코슈카'의 [바람의 신부]는 단테의 신곡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불륜의 대가로 목숨을 잃은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지옥에 떨어졌지만

영원히 열정적인 사랑 속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삶이 축복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청회색의 음울한 색조를 보면 영원한 열정은 오히려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회오리바람 속에 몸을 내맡긴 두 연인은 서로에게 의지하고는 있지만 창백하고

몹시 힘겨워 보인다.

 

'뭉크'의 [질투]를 보면 한없이 무력해 보이는 남자가 전면에 등장하고 뒤쪽에

포옹하는 젊은 남녀가 보인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짜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리의 이야기이다.

오래도록 고군분투하여 만든 곡을 한번 들은 모짜르트가 살리에르도 경탄할 만큼

경쾌한 변주를 섞어서 연주하고 어떤 부분은 바꿔서 천상의 음들을 연주한다.

신은 공평하게 인간을 창조하지 않은 것만 같고 재능은 별다른 노력없이

타고나는 것 같다. 

물론 주어진 재능도 피나는 노력으로 갈고 닦아야 빛나는 열매를 맺는 것이겠지만...

음악과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평생 자신이 공들여 노력해야만 간신히 얻어지는

것들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순간적으로 완성해버린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다양한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지능 역시 타고난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능력이 출발선상에서 이미 차이가 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지나친 능력의 차이가 있을 때 부러움에서 출발, 결국은 자신을 삼키는 질투의

감정이 솟아 오른다. 저자는 말한다.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조지 벨로'의

[뎀지와 퍼포]처럼 한방에 강펀치를 날리라고...

시기와 질투는 자신감과 만족감을 잠식시키고 그 자리에 열등감과 패배감을

자라게 만드는 것이니 그런 감정들에 강펀치를 날리는 순간 적어도 자신의

마음속에서만큼은 영원한 챔피언이 된다고 열등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조언한다.

 

'사반'의 [가난한 낚시꾼]을 보면 욕심을 버리고 자연이 주는 만큼만 받아먹으면서

감사히 살겠다는 가족의 의지가 느껴진다. 바쁜 시간속에 내맡긴 자신을 찾고

싶거든 자연 속에 몸을 맡기고 문명을 떠나 깊이 들어가라고 조언한다.

 

'드가'의 [압셍트]는 구부정한 어깨에 눈의 초점을 잃고 멍하니 탁자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는 한 여자가 나오는데 그녀 옆의 둥근 쟁반에 압셍트 술병이 놓여 있다.

도수가 70도에 달하고 중독성이 강해 악마의 술이라고 불리우는 압생트는 정신착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고흐가 압생트를 마시고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설도 있다.

저자는 [압생트]를 보며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떠올린다. 

죽기 위해 라스베가스로 온 알콜중독의 남자와 현실이 혐오스러운 창녀...

둘은 서로 연민을 가지지만 사랑을 시작할 수가 없다.

'도로시아 태닝'의 [생일]처럼 출구없는 문에 갇혀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치지만

같은 자리를 맴돌고 탈출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들이 마음을 감금시키는 상태로

끝난다는 것이다. 중독은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현실을 망각하기 위해 시작했던 꿈은 깨어날 수 없는 악몽으로 점차 자신을 가두고

잊고 싶은 건 현실이었지만 정작 잃어버린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을 온전하게 느끼고 같이 지내는 사람들과 잘 통했으면 하는 마음,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길 기원하면서

그림이 내미는 손길에 마음을 내려 놓으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아픈 사랑, 엉킨 관계, 힘겨운 삶을 다독여주는 그림, 그 위에 고단한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조용히 초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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