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은 유머와 해학이 적절하게 녹아들어 비장미와
더불어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 <평양성>은 <황산벌>의 후속작으로 668년의 평양성 전투를 다룬 코믹사극이다.
'은퇴'의 변으로 출사표를 던진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일까.
다행히 100만 관객을 넘었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관객몰이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류승룡, 이문식, 윤제문, 정진영, 이광수, 황정민, 선우선 등의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제각기 개성있는 연기를 펼치지만 전체적인 조화와 몰입이 어렵다는 느낌이다.
곳곳에 유담, 김병만, 유승완, 이준익 등이 까메오로 등장, 의외의 웃음을 선사한다.
평양성을 둘러싼 고구려, 신라, 당나라의 살벌한 삼각관계 속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오래도록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영화는 고구려, 신라, 당나라 등 자국의 이익을 저울질하는 수뇌부 권력자들과
전쟁에 참가한 양민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어느 누가 승리한다 해도 양민들에게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 전쟁이다.
어머니에게 돌아가기 위해 살아 남아야 하는 '거시기'들이 있고
공을 세워 논마지기를 장만하여 고향에 돌아가려는 '문디'들이 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신라를 집어 삼키려는 야욕을 품고 있다.
김유신은 신라군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면서 고구려와 협력하여 당나라를 몰아내려고 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게 최곤기라."

튼튼한 요새와 위용을 자랑하는 평양성.
벌집을 이용한 무기와 강력한 신무기, 그리고 단결한 고구려 병사들이 있다.

성안에 있는 고구려군은 도토리밥으로 연명하고 김유신은 쌀을 보내 회유하려 하지만...
(얼핏 북한에게 쌀을 원조하는 남한의 모습이 떠오른다.
감독은 현재 우리의 국내외 관계를 영화에 담으려고 한 것 같다.
그가 의욕적으로 영화 저변에 깔아놓은 여러 생각들...
바로 그런 점들로 해서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고 산만하게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 모른다)

거시기(이문식)는 황산벌 전투에서 5천의 결사대가 모두 죽었을 때도 홀로 살아 돌아가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군대를 두 번 온 거시기는 동료 군인들에게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전수한다.
첫째, 나대지 마라. 전쟁터에서는 나대면 디지는겨!
("전쟁에서 일찍 일어나는 새는 밥 숟가락 뜨기도 전에 죽는다니께!")
둘째, 자세를 낮춰. 오줌도 앉어서 싸부러!
("전쟁 처음 나와 신기허재? 정신없이 구경하다가는 좋은 꼴 못본다니께!")
세째, 군대는 줄이여. 줄 잘못 스믄 디지는겨!
("내가 황산벌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놈이여, 이번에 내가 어느 줄 서는지 잘 봐!")

고구려성에 들어간 거시기는 고구려의 여장부 갑순과 결혼하게 되고...
갑순이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전보다 갑절의 고생을 하게 된다.

성안으로 들어가 성문이 열리는 것을 막아야 하는 특공대가 결성된다.
논 8마지기를 받기로 하고 문디 일행이 성안으로 들어간다.

전쟁이 아닌 협상만이 살 길이라 믿는 형 남생의 계략으로 성문이 열리고...
끝까지 평양성을 사수하려 했던 연개소문의 둘째 아들 남건(류승룡)은 적의 창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망했지만 외세에 기대어 자신의 번영과 안녕을 추구했던
신라와는 격이 다른 자주(自主)의 기운이 있는 나라이다.
그 기운을 살려...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영화적인 상상력을 가미해 신라와 고구려의
합동작전이 보다 극적으로 재구성되었더라면 재미와 감동이 배가되지 않았을까.
이준익 감독은 660년 황산벌전투를 2003년 내놓았고 8년 후인 2011년에 668년 평양성 전투를
내놓았으니 8년 후에 676년 당나라를 완전히 물리치는 삼국통일에 대한 영화를 후속편으로
내놓지 않을까... 문득 든 생각이다.
진정성이 살아있는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