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만 명의 관객을 끌었던 연극, 15만 부가 넘게 팔린 책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스토리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네 남녀의 '여전히 사랑은 현재 진행형'임을 아름답게 그린다.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단호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주인공 김만석의 고백은
어떤 종류의 사랑보다도 절실하다.
영화<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표현의 제약이 따르고 무대 배경의 제한이 있는 연극과
다른 맛을, 음악과 영상이 없는 웹툰이나 책에서 얻을 수 없는 깊은 감동과 재미를
무한대로 선사한다.
영화는 원작인 강풀 웹툰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특히, 이순재), 주요대사,
이야기의 흐름 등에서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보인다.
농익은 네 주인공들의 명품연기는 인물들의 감정의 폭과 깊이, 그리고 완급을 자유롭게
묘사하고 있다. 기쁨과 떨림, 일상적인 생활에 이르기까지 감정들의 섬세한 묘사로 인해
원작의 인물들은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 되어 재미와 감동을 배가시킨다.
(원작자인 강풀 역시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주인공들의 사랑은 치열하고 격정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절실하고 애틋하다.
주인공들의 독백처럼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할게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두 쌍의
사랑 이야기를 보며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늙음... 그리고 깊어가는 외로움, 살아있는 한 사랑은 계속되지만...
사랑은 가슴 떨리는 기쁨이면서도 황혼기의 사랑은 짧은 만남, 긴이별을 앞에 두고 있기에
그만큼 더 외롭고 절절하다.
사랑 하나
새벽마다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깨우면서 우유배달을 하는 김만석할아버지(이순재).
그는 까칠하고 욕도 잘하지만 김만석 속깊고 마음 따뜻한 사람이다.
이름도 없이 송씨로 평생을 살아온 수줍은 송씨 할머니(윤소정)는 폐지를 모아 팔며
근근히 생활한다.
눈이 조금씩 흩뿌리던 새벽 어느 날 160번지 언덕길...
160번지 언덕길에서 우연하게 만난다.
그사람을 생각하기만 해도 미소가 떠올라 벙긋거리고 사진을 쳐다보며 홀로 웃는
가슴 설레는 사랑이다.
사랑 둘
주차장에서 일하며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장군봉 할아버지(송재호).
치매에 걸렸지만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 뭐했어?" "얘기해 줘" 하는 애교 많은
순이 할머니(김수미)
평생 아끼고 사랑해온 군봉과 순이.
혼자 가는 길이 무서운 아내를 위해, 아내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기에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만석은 못마땅하다. 대체... 군봉과 송이뿐은 왜 머리를 맞대고 저렇게 다정한걸까..
그런데... 알고 보니 송이뿐은 군봉에게 한글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만석이 건네는 연애편지를 읽지 못하는 송이뿐은 오로지 만석이 건네는 연애편지를
읽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한글을 배운다.
그녀의 제일 먼저 배운 글씨는 "김. 만. 석" 세 글자다.

글씨를 읽지 못하는 송이뿐을 위해 만석은 그림편지를 썼다.
송이뿐의 웃음소리가 담장 아래에서 귀기울이고 있는 만석의 귀에 크게 울려 퍼진다.
10시 30분 첫 데이트 약속이다.

송이뿐은 곱게 차려입었다. 참... 곱네...
만석의 입가에 벙싯 벙싯 웃음이 새어 나온다.
송이뿐은 김만석 할아버지가 송씨의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이쁜' 이 아니라 세상 천지에 송이만 있다는 뜻으로 '송이뿐'으로 지었다.

군봉은 주차장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치매 아내를 돌보는 일이 마냥 즐겁다.
아내와 같이 할 수 있는 한...
평생을 사랑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편하게 모시겠다고 했지만 "자주 찾아 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첫째 아들이 떠나가고
역시 "자주 찾아 뵙겠다"는 말을 남기고 둘째 아들도 떠나갔다.
딸 역시 떠나고 돈이 필요해 군봉을 찾아 오지만 엄마에게 가 보라는 군봉의 말에
식당 일이 바쁘다며 돌아간다.
그렇게 모두 떠나고...
부부에서 가족이였는데 다시 부부만 남았다는 군봉의 말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자식들이 모두 떠나고 군봉과 순이는 서로 반찬을 놓아주고 얘기하고 등을 기대고
살았지만 순이는 치매에 말기암까지...

군봉은 마지막 결심을 하고 자식들을 불러 모은다.
"느그 어매 고생했다...."
순이는 돌아가는 자식의 등뒤에 대고 인사를 한다.

동사무소 직원인 만석의 손녀 연아는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이문식, 오달수, 송지효 등의 조연들의 연기는 극에 활력을 주며 소소한 재미와
웃음을 선사한다.

눈이 흩날리는 언덕길,
가로등 켜진 새벽 골목길,
군봉할아버지가 순이 할머니를 업고 언덕길을 오르는 장면,
케익과 꽃핀을 선물하며 "그대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
바닷가로 소풍을 나가 황혼을 바라보던 네사람의 뒷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팔기에는 돈이 안되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만석할아버지의 오토바이와
장군봉의 낡은 택시처럼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은 여전하다.
"한번 안아봐도 되까?"
"다시 볼 수 있으까?"
"죽기 전에 다시 볼 수 있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