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문외한인 나도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데 아름다운 우리 가곡들이다.

오래전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나오는 '백학'이라는 곡을 참 많이 좋아했다.

'백학'은 체첸공화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유목민 전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음악이다.

이민족의 침략이 잦았던 우리 민족의 정한과 많이 닮아 있어서인지 드라마의 내용보다

음악이 좋아 한참을 빠져 지냈다.

 

CD 3장으로 이루어진 음반 <한국인이 사랑하는 명작가곡>은 주옥같은 우리 가곡을

총망라해서 실었다. 1장의 CD에 16곡씩, 3장에 48곡이 들어있다.

가지고 있던 CD 2장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우리 가곡>과 중복되는 곡들이 많지만

훨씬 더 많은 곡들이 실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음악을 들을 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귀가 즐겁다지만 우리 가곡들을 계속

듣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 민족의 정서, 정한이라는 것이 왜 이다지도 슬프고 애조띤 것이어야 하느냐는

탄식이 절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이상타.

밝고 경쾌한 '뱃노래', '희망의 나라로' '나물캐는 처녀' 등을 들을 때보다 '바우고개',

'비가', '산유화', '그대 있음에', '그리운 금강산'이 훨씬 더 가슴을 저미게 애절하고

아프면서도 한없이 좋으니 말이다.

아마도 내 유전자 속에 조상들의 정서가 깊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청산에 살리라' ~ 김연준 작사.작곡.  테너 박성원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길고 긴 세월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산들바람' ~ 정인섭 작사.현제명 작곡  테너 김화용

"산들바람이 산들 분다. 아~ 너도 가면 이 마음 어이해. 아~ 꽃이 지면 이 마음 어이해"

하!!! 기가 막힌다.

달밝은 가을밤에 산들바람 불고 너도 가고 꽃이 지면 내 마음 허전해서,

쓸쓸해서 어떡하냐구요...

 

'바우고개' ~ 이흥렬 작사.작곡  메조소프라노 김학남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이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님이 즐겨즐겨

꺽어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바우고개'는 우리 가곡 중에서 '비가'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옛 님이 그립고 눈물 나는데...  진달래꽃은 님이 없어도 혼자 피어 더욱 서럽게 하네...

가사는 옮길 수 있지만 이토록 아름답고 쓸슬한 노래들을 옮길 수가 없어 안타깝다.

 

'산유화' ~ 김소월 작사.김성태 작곡  테너 박인수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김소월은 왜 꽃이 피네보다 꽃이 지네를 강조했을까...

테너 박인수의 '갈 봄 여름'의 노래 대목이 슬픔을 더한다.

 

'비가' ~ 신동춘 작사.김연준 작곡  메조 소프라노 신은미

"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은 내 노래는 찾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 우는 벌레 소리 뿐이어라.

별같이 빛나던 소망 아침이슬 되었도다."

별같이 빛나던 소망이 아침이슬 되어 사라지고...

찬란한 태양과 불타는 노을마저 사라지고...

내 젊음도 시들고...

'비가' 이외에 다른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언덕에서' ~ 민형식 작사.김원호 작곡  바리톤 오현명

"저 산 넘어 물 건너 파랑 잎새 꽃잎은 눈물짓는 물망초 행여나 오시나 기다리는 언덕에

님도 꿈도 아득한 풀잎에 이슬방울 왼종일 기다리는 가여운 응시는 나를 나를 잊지 마오."

왼종일 기다리는 가여운 응시는 나를 나를 잊지 마오...

 




 

우리 가곡은 자연에 대한 회귀사상과 그리움, 연인에 대한 기다림과 갈망, 어린 시절의 추억과

고향생각, 이별의 정한, 드물게 미래의 희망을 노래한다

경쾌한 곡들마저 완전한 기쁨이 아닌 중성적인( 절반쯤은 슬픔에 절은...)기쁨을 노래한다.

기뻐도, 슬퍼도 속으로 삭히고 인내하고 견뎌온 삶에 기인하는 것일까.

국내 실력있는 성악가들의 각기 다른 음색과 톤으로 우리 가곡들의 고운 가사를 음미하며

듣는 기쁨이 참으로 크다.

48곡 전부를 반복해서 들으며 선율의 아름다움과 우리말 가사의 수려함에 거듭 놀란다.

주옥같은 우리 가곡이 널리 들려지고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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