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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서는 기쁨 - 우리 인생의 작디작은 희망 발견기
권영상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동시와 동화로 아이들의 감성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작가 권영상이
첫 산문집으로 <뒤에 서는 기쁨>을 내놓았다.
명예와 부, 권력,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남보다 많이 소유하고
앞서 나가려는 세상에서 '뒤에 서는 기쁨'이라는 말이 주는 여운이 매우 크다.
살다 보면 가끔, 아득한 인생이 목마를 때가 있다고 한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할 일 없이 목마름을 느낄 때마다 긁적인 것들이
<뒤에 서는 기쁨>에 실린 셈인데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
그는 가장으로 집안을 이끌어야 했고 동분서주했던 지난 날들의 소회를 풀어 놓는다.
아버지로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어머니의 지병과 가족들의 생계 걱정으로
어깨에 인생의 등짐을 가득 인 채 고단해 했을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자식을 바라보는 자신의 심정에 빗대어 가난한 시절 자식의 교육을 포기시키면서
마음 아팠을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감사와 애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회한에 대해서도 털어 놓는다.
그는 산행을 하며 등에 짊어진 등짐의 무게로 중심을 유지하듯이 인생의 등짐도
이와 같다는 가르침을 던져 준다.
소박하고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고 나지막히 말하는 그는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들 중
눈물을 보이지 않은 아빠는 없을거라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눈물겨운 아버지이다.
그는 자신의 나이 마흔 살과 오십 살을 이야기한다.
마흔 중반에 너무나 먼 데 놓여 있다는 이유로 사막을 그리워했다.
별자리에 의존하여 한없이 사막을 걷고 싶은 그리움,
그곳에 가면 고단한 생애가 신기루처럼 행복한 인생으로 바뀔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
그러다 그는 꿈처럼 사하라에 갔고...
온갖 진부한 것들이 부서져 내리고 새로운 것들이 알 수 없는 내면에서 깨어났다.
오십을 먹고 가끔은 누구에겐가 안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고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느라 돌볼 겨를 없는 자신이 가여웠다.
그는 오십 나이가 시인이 진부해지는 자신의 시를 두려워하듯 세속화되어 가는 자신의
인생을 괴로워할 나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그렇게 외로워하고 뭔가를 그리워하며 나이를 먹는가 보다.
저자가 인생 곳곳에서 사하라를 그리워했듯이...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움켜쥔 욕심들을 빈 들판에 툭 내던지고 싶다.
새로운 힘을 얻어 살고 싶다.
그는 대관령 아래 호숫가 주변의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고 농사를 짓던 아버지와
땅에 대해 그리워한다.
아마도 나의 유전자 안에 뿌리깊게 각인된 땅에 대한 그리움도 이와 같을 것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는 저자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우연히 최근에 읽었던 책들 몇 권이 출판사 '좋은 생각'의 책들이다.
생각을 일깨우고 감동을 주는 책에 감사하다.
글을 읽으며 잘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곰국 2인분
지병으로 몸져누운 어머니가 우렁이국을 먹고 싶다고 했다.
비 내리고 천둥치는 6월에 비에 가득한 무논을 뒤졌다.
손을 뻗어 논바닥의 우렁이를 찾다가 문득 아버지의 구부린 등허리를 봤다.
흥건히 젖은 등줄기에 사정없이 비가 내리꽂혔다.
아버지의 휜 등엔 어머니의 병환이라는 무거운 짐이 얹혀 있었다.
아버지는 그 힘으로 사셨다.
짊어진 짐의 무게로 고단한 삶을 달갑게 받아들이며 사셨다면 사셨다.
노래 한 곡 불러다오
아버지는 어려운 분이셨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아버지를 똑바로 올려다보지 못했다.
어느 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중학생인 나를 무릎에 앉히고 노래를 청하셨다.
"아무거나 해 봐라." 아버지의 목소리가 간곡하게 들렸지만
"별로 아는게 없는데..." 나는 주르르 눈물이 흘러나왔다.
"못 배운 아버지와 다를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목소리는 빈 밭의 바람소리처럼 허전하게 들렸다.
내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무얼 생각하셨을까.
어머니가 병석에 길게 누워 계셔도 내색 한 번 안하셨는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공부를 많이 하면 무얼 하나. 아버지를 위해 노래 한 곡 불러 드리지 못한 공부를.
자, 이쪽에 서라
내가 시골에서 다니던 중학교는 집에서 10여 리나 떨어져 있었다.
그 길에는 귀신이 산다는 느티나무 숲이 있었고 밤이면 호랑이가 나온다는 고갯길도 있었다.
달도 없이 깜깜한 비 오는 밤, 늙은 느티나무 숲이 보이면 두려움에 가슴이 뛰었다.
책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숨죽여 걷고 있을 때였다.
"영상이냐?"
아버지는 아직 먼데 서 계시고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지만,
거기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졌다.
"자, 이쪽에 서라."
아버지는 비가 들이치는 쪽에 서시며 내쪽으로 우산을 씌우셨다.
이미 온몸이 젖을 대로 젖은 아버지는 당신의 몸으로 비를 막아 주셨다.
사실 아버지가 고갯길에서 마중오신 날은 단 하루이다.
단 하루! 단 하루 아버지가 나를 마중해 주셨는데 늘 그러셨다고 기억되는 이유는 뭘까.
뒤에 서는 기쁨
딸아이와 함께 동네 산을 오른다.
자연스럽게 나는 딸아이 뒤에 서서 산을 오른다.
나는 여태껏 가족을 위해 늘 앞에 서서 여기까지 왔다.
전셋방 하나를 얻어 옮길 때도, 명절에 고향을 내려갈 때도 가족을 데리고 앞장서 갔다.
나는 의무감에 앞이라는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다.
계단 길과 호젓한 소로의 갈림길에서 딸아이는 젊은이답게 계단길을 택한다.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지만 서슴없이 내 방식의 길을 버리고 딸아이의 길을 따르며 기뻤다.
나의 길을 고집한다 해도 세상의 모든 순서가 그렇듯 언젠가 나는 내가 가는 길을
누군가에게 비켜 줘야 한다.
자식을 앞세우고 산에 오르는 이들이 왜 부러웠는지 알겠다.
삶의 이치를 천천히 받아들이는 기쁨 때문이 아닐까.
"만주의 어느 호수 밑에 떨어진 연꽃 씨앗이 천 년이 흐른 어느 날,
사람의 손에서 다시 꽃으로 피어났다.
꽃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씨앗은 죽지 않는다.
비록 비좁은 씨방이지만 씨앗은 그 안에서 천 년 뒤의 어느 봄날을 꿈꿔도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승에서 그냥 한 생을 살고 마는 것 같지만 어쩌면 연꽃 씨앗처럼 먼 억 겁의
세월 밖을 꿈꾸며 살아 내는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 4-5쪽 권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