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빌려드립니다 - 백수 아빠 태만의 개과천선 프로젝트
홍부용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독특한 발상으로 독특한 내용을 담은 책 <아빠를 빌려 드립니다>의 저자는

인터넷 구직란에서 '아빠를 빌려 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낸 남자의 이야기를

소설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주인공 태만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아들 되어주기, 스토커로부터 위험을

막아주는 아버지 노릇하기, 미혼모의 아버지되기, 아버지의 꾸중을 원하는

사람에게 잔소리하기, 편부.편모 아이들의 아빠 되기 등의 일을 한다.

충분히 있을 법 한, 단막극처럼 연결되는 이야기들은 현대 사회의 삭막해진

관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아홉살 아이 아영의 눈에 비친 아빠 태만은 한심한 백수이자 엄마의 말대로

'쓸모없는 물건'이다.

태만은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명문대를 졸업한 인텔리이지만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세상 탓으로 돌리는 나약한 사람이다. 

증권회사에서 잘 나가던 시절, 상사의 아니꼬운 꼴을 견디지 못했던 그는

직장을 나와 애견사업을 하다 망하고 십년째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동네 문방구 앞에서 아이들을 제치고 게임을 하고 쇼호스트의 유혹에 넘어가

홈쇼핑의 물건들을 사재기하고, 게임방에서 시간을 죽이며 친구를 불러 밤새

술을 마시고 뒷날 하루종일 잠을 자는 것이 그의 반복되는 일과이다.

부인 지수는 미용실을 운영하며 생활전선에 나서 백수 남편과 아이를 부양한다.

지수는 태만을 쓸모없는 물건으로 치부하고 아영은 자신에게 쓸모없지만

남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서로 나누는 '엘리펀트 데이 ~ 나눔의 날'에

자신에게 쓸모없는 아빠를 내놓고 친구의 모포를 가진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결손 가족에게 완전한 사랑을!

위기에 처한 가족에게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태만은 딸 아영의 아이디어대로 인터넷에 '아빠를 빌려 드린다'는 카페를 개설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 훌륭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고 자신 역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아니기에 '아빠 렌탈 사업'의 전망이 밝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빠가 되어 주는데...

태만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빠가 떠나고 엄마에게마저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라고 아이의 엄마에게 충고한다.

아이와 엄마가 두려움을 깨고 마음을 여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는 자신의

어릴적 상처와 마주한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아들 노릇을 하면서 어릴 적 자신을 두고 떠났던 엄마를

생각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알고 싶어하는 의뢰인에게서는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엄마가 떠난 것은 태만의 잘못이 아니고 단지 엄마의 선택이었으며 엄마 나름의

방식대로 자신을 아끼고 사랑했으며 세상의 모든 사랑이 같은 색깔일 수 없듯이

표현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차츰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겁먹은 어린 태만을 쓰다듬어 상처를 치유한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거나 상대적인 결핍에 목마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빠가 되어 상대의 입장에 서서 배려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 역시 사랑에 굶주려 하던

작은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 딸 아영에게 부족한 아빠, 아내에게는

부족한 가장이었음을 깨닫는다.

 

가정은 미성숙한 부모들에 의해 뒤틀리고 문제화되고 있다.

대가족 안에서 여러 사람들과 두루 접하면서 원만하게 해결됬던 아이들의

양육 문제는 현대 사회의 핵가족화에 따라 부모 두사람에게만 맡겨졌고 자칫

미숙한 부모에 의해 가족관계의 분리와 해체, 그로 인한 고독감이 절실해진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편리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그 뒤안에서

외로움과 소외문제 또한 커져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소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이고 사랑이 전제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차이, 세대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자잘한 상처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책속의 여러 모습들은 사랑과 이해, 배려와 관용, 용서와 희생을 통해 서로

성장해 가야 할 가족의 바람직한 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작가 후기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남긴다.

"한때는 아버지라 무조건 좋아하고 따르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가 지나자 무능한 아버지를 미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담담하게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다.

한 인간으로서 나약하지만 호기로운 아버지를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아버지에게 보내는 긴 편지다." ~ 285쪽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모든 아버지들의 삶이 버겁고 무겁지 않을까.

아버지들은 자신에게 딸린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에 고집대로, 원칙대로,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살 수 없을 것이다.

하루 끼니를 잇기 위해 몸을 부렸던 예로부터 먹고 살기에 큰 어려움이 없어진

오늘에 이르러서도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한몸 부서지도록 고생하는 것이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그 지난한 일을 떠맡아야 하는 아버지들,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불쌍한 사람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위대하다.

자식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대하다.

나 아닌 타자에게 모든 것을 쏟을 수 있도록 허락된 부모라는 그 이름에 축복을....

아이들에게 생명을 준 모든 아버지들에게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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