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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 다츠지 - 조선을 위해 일생을 바친
오오이시 스스무 외 지음, 임희경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조선인의 인권과 그 변호를 위해 헌신한 후세 다츠지는 민중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정의감이 있었다.
그는 '자기혁명의 고백'에서 민중의 변호사가 될 것임을 선언했다.
"인간은 누구라도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정직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이것은 양심의 목소리이다.
나는 '사회 운동의 일개 병사로서의 변호사'로서 살아갈 것을 민중의
한사람으로서 민중의 권위를 위해 선언하다." ~ 223쪽
일본판 쉰들러라 불리는 후세 다츠지...
그는 가난한 민중들과 일본 내 핍박받는 민족들의 인권옹호와 변론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무료 법률 상담과 강연회를 여는 등 사회운동에 매진했다.
<후세 다츠지>는 일본과 조선. 한국의 교류사를 연구하는 고려박물관에서
2007년 가을, '후세 다츠지전'을 개최하고 그때의 강연록을 간행한 책이다.
강연록1의 '후세의 생애와 조선'에서는 후세의 손자인 오오이시 스스무가
후세의 마음을 엿보는 에피소드들로 그의 인품을 전하고 활동상을 보여준다.
강연록2의 '후세와 재일 조선인인 나'에서는 작가인 고사명이 어린 시절
방황하던 자신의 삶이 후세로 인해 구원된 이야기와 2차대전의 전과 후를
조명하면서 일본 근현대사의 어둠을 경고한다.
두사람의 강연 외에 '후세와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이형낭의 논고,
'후세의 한국 인식'에 대한 이규수의 논고를 실었다.
후세는 1905년부터 1953년까지 변호활동과 사회활동을 했다.
그는 조선 독립을 지향하는 학생과 애국지사, 일본의 관.민에게 토지를
빼앗긴 농부들, 술 밀조로 체포된 사람에 이르기까지 재일 조선인을 위해
변호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업신여김을 받던 조선인을 위한 그의 활동은 모두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발현된 것이다.
그가 인권 옹호를 위한 변호를 하게 된 배경에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말년에 그는 <레미제라블>에서 계급에 대한 저항정신을 배웠고 톨스토이로부터
사상적인 영향을 받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후세는 1953년 일생을 마칠 때까지 일본과 재일 조선인이 관련된 거의 모든
사건의 변호를 담당했다. 후세와 조선인의 관계는 한일 연대 투쟁의 귀감이다.
한국정부는 2004년, 조선인을 위한 그의 공적을 인정하고 일본인 최초로 후세에게
'건국훈장 애족상'을 추서했다.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 후세의 좌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