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도 넘은 저편의 세계, 고향을 다녀왔다.
기억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아버지, 엄마와 함께 떠오르는 바닷가 갯마을.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고기를 잡으며 김을 말리고 굴을 따서 살아가던
내 아버지들의 고향 동고리.
장사를 하는 부모님은 나를 취학 전까지 할머니에게 맡기셨다.
둘째딸을 보고 싶어 오셨을까.
그 시절, 젊디 젊은 아버지는 가끔은 꽃신을, 운동화를, 새옷을 안고 찾아 오셨다.
집의 골목길 어귀에 세워진 이정표 큰 돌에 기대어 아버지가 오실까 기다리고
초승달도 없는 어두운 밤에도 오실까 기다리다 지쳐 집에 가다... 오실까 다시 돌아와 기대고 섰던
그 돌은 없어졌지만...
새벽이면 갯내음 풍기는 모래사장을 뛰놀다 키질하는 아저씨들의 볏잎 날아가는 소리도 기억 저편에 있지만...
이제는 오실 아버지도 가시고 기다리던 아이도 아이보다 훨씬 큰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지만...
불어나는 빗물에 찰박찰박 건너던 개울도, 둠벙에서 놀던 그 아이들도 다 흩어졌지만...
모래 속에 옷을 묻고 지나는 스님이 옷을 가져가 버릴까봐 물속에서 마음 졸이던 그 아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할아버지 산소에서 떨어져 있던 달큼한 유과사탕의 향에 행복해했던 아이도...
산소의 할아버지가 학교 갔다 왔냐고 물으셨다고 태연스레 거짓말을 하던 소녀도...
그 모든 것들이 옛날과 달라졌지만...
이제 다 자라 어른이 되었어도 그시절 그 이야기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그곳 동고리에 갔다.
백사장에서 뛰며 소리지르며 아버지를 기다리고 들로 산으로 뛰다니던 나를 만났다.

여기쯤일 것이리라.
여기쯤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있을 것이리라 했던 곳에 정자가 놓여 있었다.
정자에서 쉬고 계신 어르신 두 분에게 여쭈었다.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 집에서 부르던 아버지의 아명을 대자 그 딸이라며 신기해 한다.
옆 슈퍼 주인에게 물어보면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집을 알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먼 친척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들었던 이름인 듯하다.
동고리는 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고 옆마을 실리는 임씨들이 살고 있었다.
임씨인 엄마는 1남 8녀의 딸부자집에서 2대독자인 아버지 정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하였다.
효자였던 아버지는 젊어 홀로 된 어머니와 아내 가운데에서 어머니를 조금 더 생각하였고
그러기에 엄마는 할머니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하였다.
남의 집에서 점원살이로 출발한 아버지와 집집마다 돼지밥을 얻어다 돼지를 키웠던 억척 엄마는
결국 자수성가하였고 두분은 한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셨다.

세상을 이만큼 살았으니 어린 시절 고향을 마주하고 싶었다.
마음속에 언제고 자리하고 있었던 그 고향바다. 섬마을 동고리.
나는 고향집을 찾지 않았다.
굳이 변해버린 그 모든 것을 마주할 필요는 없었다.
충분히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그 시절의 엄마와 아버지 모두 마음에 소중하게 담고 왔다.
하늘과 그 바다를 보고 왔다.
나는 또 그 힘으로 살 것이다.
그리운 것들은 맘껏 그리워 하면서...
여전히 아이들의 엄마로, 아내로, 형제들의 형제로, 또 나 자신으로 살 것이다.
내 어릴 적 고향바다와 함께 하는 따뜻한 추억들을 되새김하며 멋지게 살 것이다.
고향을 찾았을 때 따뜻하게 감싸주고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혹시라도 있을 내 마음의
쓸쓸함을 위무해 주는 남편과 아들이 있기에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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