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 망태 부리붕태 - 전성태가 주운 이야기
전성태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본 이유가 제목 <성태 망태 부리붕태>에 있었다.

'성태, 망태, 부리붕태'는 저자 전성태의 어릴 적 살던 마을의 할아버지가

저자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아이들을 유별나게 사랑했던 할아버지는 마을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별명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성태, 망태, 부리붕태'는 일종의 별명짓기 공식인데 예를 들면,

내이름 재홍은 재홍, 망홍, 부리붕홍이 되는 셈이다.

별명을 부르고 불리우는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주고 받는

유쾌한 일이다.

내가 지은 내 별명 '재벙이'는 '꺼벙한 재홍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별명이 참 좋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남자아이들이 붙여준 내 별명은 꽁치였다.

대체 나의 어디가 꽁치를 연상시키는지 모르지만 나는 꽁치로 불리웠다.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무슨 어장의 '꽁치' 대목을 내가 읽노라면

아이들의 웃음보가 터지곤 했다.

남편의 별명은 헤보, 두부였다.

마냥 웃고 있어서 헤보, 살결이 하얗다고 해서 두부였다.

남편은 꽁치를 좋아했다.

5살 적에 리어카에 생선을 싣고 팔러 다니는 아줌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집으로 와서 어머니에게 꽁치를 사달라 졸랐다고 한다.

하고많은 생선 중에 유독 가시가 많은 꽁치를 좋아한 남편과

별명이 꽁치인 내가 부부가 되었으니 그것도 인연이지 싶다.

 

저자는 첫 산문집인 이 책의 글들을 일상에서, 어린 시절 기억에서,

혹은 길에서 주운 얘기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는 가난하고 누추하게 살던 고향의 이야기들, 근대화 과정의 풍경들,

몽골 체류기, 고독한 사람들에 대한 단상, 우리나라 자연의 풍경묘사 등을

맛깔나는 글솜씨로 풀어낸다.

 

아버지의 셈법 ~ 24-27쪽

아버지의 인생은 반 토막 인생, 담배 한 개비는 두 번에 나눠 피고

막걸리도 늘 반 되를 받아다 드셨다.

두발 검사가 있던 날, 마을 공용 바리캉으로 머리를 깍아 주셨다.

기름을 둘렀는데도 바리캉이 머리카락을 통째로 뽑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할 수 없이 이발사에게 가야 했다.

머리는 반 정도 깍여 있었고 아버지는 200원을 주었다.

(이발료는 500원이었다)

"반만 깍아 주고 제값을 다 받으면 그 이발사는 도둑놈이제."

이발사는 "머리 깍아 주는 디 면적 따져 돈을 받더냐?" 하며

200원을 내미는 나를 내쫓았고 나는 운동복 상의를 덮어쓰고 교실에 앉았다.

선생님이 머리에 둘러쓴 옷을 강제로 벗겼고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아이답지 않게 오래 통곡했다.

아버지는 일 년에 쌀 한 말씩을 주고 단골 이발소를 잡았고 우리 형제들은

그곳에서 눈치보지 않고 언제든지 머리를 깍을 수 있었다.

 

사람좋기로 소문난 어머니도 아들이 머리를 자르고 오면 항상 아들 손을

잡고 잰 걸음으로 이발소 문을 들어섰다고 한다.

요기, 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바짝 다시 깍으라는 이유에서였다.

없는 살림에 이발값이 아까웠던 어머니 눈에 흡족하게 차야 했으니...

남편은 그당시 엄마 손에 이끌려 이발소에 다시 가는 것이 무척 싫었다고 한다.

창피하고 얌체짓 같아서라나.

 

가끔 옛이야기를 할 때 ~ 56-58쪽

어느 해 질 녘, 멀리 들에서 어머니와 손수레를 끌고 오던 고갯길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뒤에서 끌고 나는 앞에서 끌었는데 수레에 짐이 가득해서

서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달이 떠서 익어갔고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차올랐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른이 되면 우주선을 만들어 달구경을 시키겠노라 말씀드렸다.

그 저녁의 일을 나 혼자 기억하고 사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내 아내에게 그 저녁의 얘기를 들려 주는 걸 들었다.

어머니가 병들어 눕고 모든 기억을 잃어 갈 때 그 일을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이

얼마간 위안이 되었다.

어머니를 잃어 가는 나로서는 어머니에게 달구경 약속을 한 일보다

어머니가 그 얘기를 고맙게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이 더 소중한 추억이다.

 

저자의 추억처럼 엄마를 기쁘게 했던 말이 있었을까...

배 아플 때 솥뚜껑같이 크고 거칠거칠한 엄마손을 그리워할 줄만 알지.

정작 나는 엄마와 아버지께 해 드린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엄마, 아버지가 생전에 나로 인해 많이 즐거우셨다면 좋겠다.

 

몸을 내려놓는 일 ~ 171-174쪽

외국의 어느 작은 섬에서 사흘을 보낸 적이 있었다. 너무나 무료했다.

서양인들의 틈 속에서 휴식은 커녕 알 수 없는 초라함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짐승이 앞발과 뒷발을 함께 움직이는지

교차해서 움직이는지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던 일에 몰두했다.

해변을 걷는 개들을 한나절은 구경했을 것이다.

문득 나는 외부로 향한 시선이 조용히 나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이 어느 손아귀에선가 놓여나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는 게으른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는, 누구나 외치며 갈망하는 삶의 충만이 있었다.

 

고독한 사람 ~ 219-221쪽

광주에 사는 노작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계엄군이 광주 사람들을 도륙하던 시절, 그의 집 근처에 어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탱크소리와 총탄이 난무한 밤을 지나고 무력한 자신이

더없이 부끄러운 발걸음으로 거리에 나섰다.

그는 어린 은행나무 둥치가 총탄을 맞고 구멍이 난 것을 보았다.

나무가 살까 싶어서 다음날 다시 찾아와 보고, 구멍 자리에 새살이 돋는 걸

보고 또 찾게 되고, 이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한동안 나무는 성장이 더디었지만 지금은 여느 나무처럼 우람하게 자라

공원에서 한 풍경을 담당하고 있다.

노작가는 말한다. "이제 그 나무를 두고 소설 한 편을 써도 괜찮을까?"

그 아득한 시간에 가슴이 서늘하다.

시간 위에 세워진 존재가 인간이고 인생이다.

 

누구나 외롭고 고독하다.

자기 안에는 약하고 어리고 부서지기 쉬운 아이가 들어있다. 

 

"논물 소리에 귀가 간지럽다.

축축이 젖은 길가에 띠풀이 서걱대고 달개비꽃이

멀리 바다와 한 빛깔로 피었다.

참쑥 키가 껑충하게 푸른데 올콩 밭만 녹음 속에 누렇다." ~ 254-255쪽

 

노을 자리에서 나락을 거두는 사람,

호박 한 줄기 올려 돌담을 가꾸는 농부는 말한다. 

"세상이 좋다기도 하고 나쁘다고 하기도 하는 세상이 되얏제.

옛 어른들이 하는 말이 농새도 내년 일을 생각하고 하드랬네.

한 해 쏙 빼 묵고 말거이 아니란 말여.

근디 누구 인자 그러나? 사람도 그렇구 일도 그렇구......

진득허니 살어 내는 거이 인생 아니드라구." ~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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