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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내내 '철학'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고 세상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 안에 시대를 관통하는 올바른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진정한 철학의 의미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프랑스는 어릴 때부터 모든 과목에 우선해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라이다.
그러한 토양에서 자란 사상가들과 작가, 예술가들이 프랑스의 지성을 드러내 왔다.
저자는 19편의 단편 모음집의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날카로운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전쟁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빈곤한 나라의 아이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하여 말한다.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 이 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한때 아이였음을 잊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본 이야기들을 통해 어른들은
기억속을 더듬다가 어린 시절, 자신의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를 조우하고 배려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반성하게 되면서 올바르지 않은 삶에 대한 질책을 마주할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를 투명한 시선으로 그리는 저자의 글은 아이들의 마음 또한
따뜻하게 품어준다.
짧은 글 속에서 함축과 비유, 상징을 사용하여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간단명료하게 드러내면서 커다란 감동을 주는 저자의 역량에 감탄을 표한다.
자신들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어른들의 질서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은 이제 그만...
멀리 보지 못하고, 분별없이 자녀들을 대할 때 아이들은 슬프다.
돌 무렵에 큰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 쫓아다니며 밥을 먹였다.
시아버지는 아이들은 자연이 알아서 키워준다고 말씀하셨는데 20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그 말뜻을 알겠다.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에 아이들 공부에 강제와 간섭이 많았던 나는 몇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그때 그러지 말걸' 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다.
나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아이들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을 믿고 두었어도 괜찮았을텐데.
그러면서도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좋은 엄마일 자신이 없다.
"어른들은 만날 싸우기만 하구, 우리 말을 들어주지도 안구, 우린 웃고 시플 때
웃을 수도 없구, 졸리지도 안는데 일찍 침대로 가야 하구, 침대에서는 쪼꼬렛도
몬 먹구, 이빨도 만날 따까야 하구. 이젠 정말 더는 못 참게써서 우린 떠남니다.
잘 이써요. 아이들로부터... " ~ 11쪽 '아이들 없는 세상' 중에서
저자의 상상력이 기발하다. 어떻게 아이들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할 수 있었는지.
어느 날 아침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엄마 아빠는 통곡했고 세상은 어마어마한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집집마다 죽음 같은 고요가 흘렀고 어른들은 더 이상 말을 건네지도,
웃지도 않은 채 헤매고만 있었다.
어느 저녁, 그 정도면 어른들에게 충분한 교훈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온 세상은 축제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왕처럼 모셔졌고 지구 전체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는 것을. 아이들에게도 시간은 흐른다.
이 아이들도 자라 어른이 되고 자식이 생기고.
너무나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꾸중하고, 벌 주게 되는아이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어른이 되면 잊어버린다. 참으로 많은 것을.
무엇보다 자신도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잊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내가 사는 곳은 바그다드야. 바그다드는 '신이 내린 도시'라는 뜻이야.
나는 신을 믿지 않아. 내가 사는 거나 이 도시 사는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면 신이
있다 해도 너무 늙었거나, 귀머거리나 장님이 되었거나, 영원한 잠에 빠졌을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 사는 이 세상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렇게까지
모른 척할 수 없을거야.
잠시 죽은 척했다가 촬영이 끝나면 툭툭 털며 일어나는 그런 가짜 시체가 아니라
영원히 죽은 진짜 시체들이 이곳에는 즐비하단다.
잠들면서는 아빠 생각이 나. 전쟁이 시작되던 때 아빠는 돌아가셨어.
엄마는 우리가 아빠를 생각해야 한다고, 그 생각의 힘으로 아빠가 몸을 일으켜 우리에게
돌아올 거라고 하셨어.
그거 아니? 누군가가 우리를 떠올리는 힘으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렇게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에는 전쟁도 손을 쓸 수 없을거야.
그 어떤 방해도 할 수 없을거야...." 65~73쪽 '우리 이웃'중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전쟁, 아니 어떤 불가피한 이유라가 있더라도 전쟁은 안된다.
끊임없는 내전으로 가족을 잃고 고통과 슬픔에 찬 아이들................
매일 아침 학교에서 물뿌리개처럼 총알 자국이 있는 학교 천장과 지붕을 보면서도,
세워진 빈 차에서 날마다 폭발이 일어나 이웃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학교에 지각할 까 뛰던 친구가 총에 맞아 같이 축구를 할 수 없어도,
바그다드 소년은 태어나고 자라 수많은 추억들을 안고 있는 동네가 가장 좋다고 한다.
티그르강의 강물이 "이 도시 백성의 눈물'이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코끝이 찡하다.
"여섯 살배기 재메는 쓰레기 더미 언덕을 오릅니다.
졸려서 질질 끌려오는 남동생의 손을 잡아당겨 재촉합니다.
주위에 수많은 아이들이 보입니다.
마르고 힘없는 어린 죄인들. 갈매기와 싸워야 하는 어린 인생들.
저 도시가 써서 버리고는 잊어버린 거대한 배설물을 뒤지고 뒤지고 또 뒤져야 하는 삶.
이 가난, 지나갈거야. 내일이면 꿈꿔 온 삶이 현실이 될거야.
내일은 꽃이 피어나게 할거야." ~ 117~119쪽 '재메 이야기' 중에서
하루를 살기 위해 매일의 노동에 지치고 쓰러져가는 어린 영혼들................
아침이면 해가 뜨기 전 호미를 들고 쓰레기를 뒤져야 하는 수많은 재메들.
우리가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을 한 것입니까?
결이 고운, 시적인 글들은 (잘된 번역도 한 몫을 한다) 마음을 울리고 찡한 감동을 준다.
이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를 가슴 저미도록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