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대한 한 스푼 - 365일 미각일기
제임스 설터.케이 설터 지음, 권은정, 파브리스 모아로 / 문예당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위대한 한스푼>은 음식과 사람들에 관한 맛있고, 멋있고, 재미있는 책이다.
뛰어난 아마추어 요리사이자 완벽한 미식가 커플인 솔터 부부는 음식에 대한
해박한 통찰력으로 세기의 미식가들의 식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소설가와 언론인이라는 각자의 일을 가지고 '요리'라는 공동의 취미를 가진,
솔터 부부는 친구들을 초대하여 디너파티를 열곤 했다.
같은 사람에게 매번 똑같은 요리를 대접하지 않기 위해 체계적인 정리를 한
디너북을 시작으로 제2, 제3의 디너북을 만들며 세월의 흔적들을 담은 결과,
이 책이 탄생하였다.
"이 책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음식을 단지 생존을 위한 것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으면 한다.
인생을 즐겁게 하는 여러 가지 중에서 단연 최고는 음식이다." ~9쪽
가족이 모두 둘러 앉은 식탁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맛있게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은
얼마나 정겹고 행복한 일인가.
아이들이 '엄마' 하면 즐겁게 떠올릴 몇가지 중에 맛있는 요리가 한, 두가지
있다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돌아가신 엄마가 한겨울에 해준 얼음 서린 '팥죽'과
갖은 양념으로 묻힌 간장게장이다.
식성이 좋은 남편은 시어머니가 해준 음식 중에 좋아하는 것이 아주 많다.
오이냉채, 영양탕, 콩나물국밥, 깨죽... 솜씨가 없는 내가 하는 음식도 맛있게 잘 먹는다.
자극이 강한 바깥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입맛을 잡기가 힘들다.
그나마 작은 아이는 무엇을 해줘도 맛깔스럽게 먹어 나를 흐믓하게 하지만
큰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서 늘 걱정이다.
늦지 않았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요리다운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과 피가 되고 아이들의 뇌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생각과 지식을 키우는 음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먹는 시간,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요리하는데 드는 시간과 수고로움을 투자해야겠다.
가족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뭔들 못하랴.
즐거운 만찬을 나누기 위해 오늘부터 노력 시작.
음식은 문화이며 사람 사이의 교류이고 삶 그 자체이다.
이 책의 부제들은 참으로 많다.
'한 스푼에 목숨 건 역사 속 위대한 천재들의 이야기' ~ 570명 역사 속 미식가들의 향연
'365일 미각일기' ~ 1년 365일 생생한 요리문화 체험과 80가지 신선한 레시피
'음식문화 세계사' ~ 849개의 인덱스로 총 정리된 세계의 음식문화 보고
'식탐을 풍부하게 하는 680가지 식탁 정담'
책은 일년 열두달 365일에 맞춰 일기, 칼럼, 에피소드 등의 형식으로 기록, 날마다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동.서양의 음식과 문화(주로 서양), 음식에 관한 역사와 유래, 인류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이들이 어떤 음식을 사랑했고 어떻게 음식을 대했는가, 역사 속에서 그날 일어난 이야기,
문화에 따른 음식 예절, 맛있는 식당, 레시피, 와인.사케. 맥주. 우조(그리스 술),
샴페인 등의 술, 치즈와 과일, 향신료 등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음식에 대한
박학다식함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일본의 음식과 사케, 중국음식, 인도의 커리 등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도
우리나라 음식을 대표하는 비빔밥, 김치, 막걸리 등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은 점이다.
우리 음식은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음식이 문화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할 때 우리 문화에 대한 홍보가 미흡해서일까.
음식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이 화려한 일러스트로 꾸며진데 반해 이 책의 요리 레시피들은
흑백으로 되어 왠지 친근하고 소박하다.
레시피에 나오는 소스는 이름조차 알 수 없거나,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이 있어서 그림의 떡이다.
그래도 그 중에 몇가지(오이샐러드. 감자로 만든 로스티) 요리는 쉽게 알 수 있어서 반가웠다.
* 1889년, 에펠 탑이 세워졌을 때 대다수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국기 게양대라며
비웃었다. 모파상은 점심 식사를 할 때 항상 에펠탑 밑에서 먹었다. 그 이유는 파리에서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장소가 유일하게 에펠탑 아래였기 때문이다.
반면,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쥘 베른은 에펠 탑 위의 식당을 몇 달 전에 예약,
지상에서 133미터 되는 그 곳에서 매일 맛있는 음식과 빼어난 경치를 즐기면서 점심을 즐겼다.
모파상(1850~1893)이 파리에서 손꼽히는 명소인 지금의 에펠탑을 보며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 발자크는 빚으로 허덕이면서도 <인간 히극>을 비롯,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어떤 날은 24시간 내내 글을 쓰면서 평균 30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49살에 세상을 떠난 것이 커피 때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하루 네 잔 이상의 커피는 인체에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도 두 잔, 세 잔... 쌉싸름한 커피의 맛을 거절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 발렌타인데이에 연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물은 최음제로 정평이 난 초콜릿이다.
맛도 있지만 신경을 가볍게 자극하는 카페인 효과가 있는 초콜릿은 처음에는 마시는
액체 형태였는데 19세기에 고체화하는데 성공했다.
초콜릿에는 28그램당 10그램의 지방이 들어 있지만 콜레스테롤과는 무관하다.
다크 초콜릿의 경우 노화를 억제하는 항산화제가 브로콜리보다 15배나 많다.
* 송로버섯과 가재 역시 최음제 역할을 한다.
식당에서 남자가 여자를 위해 가재요리를 시키는 것은 흔히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전주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 쌀로 빚은 일본 술 사케는 향, 맛, 도수에 따라 6000가지가 넘는 브랜드가
있고 도수는 15~20도이다.
* 그리스의 전통 술 우조는 색이 투명하고 지중해에서 자라는 향료식물인 아니스 열매로
향을 낸다. 물을 타면 탁해지고 강하게 쏘는 맛을 내는 43도의 독주가 된다.
마시면 목이 타들어가는 듯 하면서 맵다.
* 1940 ~ 1950 년대쯤 프랑스 어느 바의 뒷벽에 있는 낙서이다.
물을 마시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56세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의 평균 수명은 77세다.
둘 중 선택하시오.
* 바빌로니아에서는 기원전 4600 년경에 이미 이쑤시개를 사용하고 있었다.
헤밍웨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셔우드 앤더슨은 1941년 브라질로 향하는 배 위에서
칵테일파티 도중에 실수로 이쑤시개를 삼켜 복막염으로 사망했는데 그의 나이는 65세였다.
* 주방장의 모자에 있는 주름 하나 하나는 주방장이 만들 수 있는 달걀요리 가지 수이다.
유니폼으로 흰 옷을 입은 것은 150년 전, 요리사의 제왕인 카렘에 의해서인데
그는 재킷을 양쪽으로 여밀 수 있게 고안해서 한쪽이 더러워지면 다른 쪽으로 단추를
바꿔 낄 수 있게 만들었다.
* 이브의 선악과가 사과로 그려진 것은 고대에서 로마시대까지 사과가 귀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사과가 귀하고 비싸 신혼부부가 첫날밤에 사과 한 개를 반씩
잘라 먹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 놓았다.
지금도 이탈리아 시실리에서는 처녀가 사과를 창문 밖으로 던져 그걸 줍는 총각과
결혼하는 전통이 있다.
불행히도 사과를 성직자가 줍게 되면 그 처자는 처녀로 늙어 죽어야 한다.
* <성경>, <코란>과 마찬가지로 인디언 전설에도 에덴동산의 금단의 열매가 나오는데
그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이다.
벗은 몸을 가리는 데에 커다란 바나나 잎이 낫기 때문이다.
바나나, 토마토, 아보카도는 다른 과일과 같이 두어 그 과일을 숙성하게 하거나 색이
좋아지게 하는 용도로 쓰인다.
* 유럽에서는 식사에 초대할 때 안주인이 메뉴에 맞춰 신중하게 와인을 골라놓는 것이
전통이다. 손님은 요리에 관계된 것은 캔디조차도 가져가지 않는다.
상류사회로 갈수록 주인 측이 모든 걸 갖췄다고 인정하는 의미로 선물을 자제한다.
*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느 겨울날 홍차에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 입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향에서 숙모 집에서 먹던 마들렌의 향기를 떠올렸다.
생생하게 떠오른 소년 시절에 대한 회상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배경이 되었고
그 이후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 내는 것을 '푸르스트 현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식품 저장실에 수백 개의 잼 단지를 갖고 있는 어느 부인은 팁트리(Tiptree) 제품을
애용했다. 그녀의 남편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며칠 후 팁트리 회사 밴이 그녀의
집 앞에 멈추더니 잼단지 600개를 내려놓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라즈베리(복분자), 살구, 마멀레이드 등이 들어있는 단지였다.
죽은 후에도 아침식사 때마다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남편의 마지막 작별 선물이었다.
* 옛날 프랑스 왕가에서는 장차 왕이 될 아이가 태어나면 최상품 프랑스산 와인으로
갓 태어난 아기의 입술에 축여 평생 그 맛을 기억하도록 했다.
저자는 아이가 태어나자 그 입술에 샤토 라투르 레드 와인을 몇 방울 적시게 한다.
후일 아이가 포도주를 마셔도 될 만큼 자랐을 때 라투르 한 잔을 내밀었다.
"너, 이 맛을 알아보겠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그 맛을 아는 것 같았다고 한다.
* 영국 도버해협 샌드위치 지방의 영주인 샌드위치 집안의 4대 백작 몬태규는 일을
좋아했다. 그는 낮에 항상 사무실에 있었고 밤이면 도박 테이블에 앉아 있느라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 고기를 빵 조각 사이에 끼워서 먹었는데 그것이 샌드위치의 시작이 되었고
백작의 후손들은 11대째 샌드위치 백작이라는 식품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2월 31일 위대한 만찬
저녁을 만드느라 꼬박 하루 반이나 걸렸지만 섣달그믐에 두 아마추어 요리사가
힘을 합쳐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보람있는 일이었다.
새해 축배를 들 수 있도록 저녁을 늦게 시작했다.
대지 위에 흰 눈이 소복하고 밤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좋은 밤이었다." ~ 4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