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제목 '러브 차일드'의 해석이 궁금했다.

(love child 의 사전적 의미는 사생아이다)

저자는 '러브 차일드'적인 존재들을 시스템이 소외시킨 존재들이라고 칭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기성질서에서 도태되거나 낙오된 존재들을 일컫는 것 같다.

 

책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시간의 역순으로 글이 시작, 마지막은 처음으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태아령胎兒靈' 을 화자로 정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선을 유지하도록 이끄는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놀랍다. 

책의 말미에 문학 평론가 조형래와 작가 김현영의 대담 내용을 실어 다소

난해한 작품의 배경지식과 이해를 돕는다.

암울한 미래사회를 독특한 시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

필립 리브의 <모털엔진> 과 비슷하다.

영화 <아일랜드>,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 <더 로드> 처럼 SF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가장 처음 본 것은 난도질된 우리의 몸이었다.

 우리가 존재했던 존재임을 증명해주는 세상의 언어도 있었다.

 세상이 우리에게 붙여준 처음이자 마지막 이름.

 유일한 그 이름은 '의료폐기물'이었다." ~ 9-10쪽

화자 '태아령'이 시작하는 말은 충격적이다.

 

극악한 죄를 저지른 사형수들이라도 그 생명은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형제의 폐지론을 주장한다.

뱃 속의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는데도 엄청난 고통과 불안을 느끼며 죽어간다.

기계를 피하며 움찔, 움찔 피하는 태아들의 모습...

그 아이들을 죽이는 것은 정말로 큰 범죄이다. 

 

"딸이 어미를 수거했다. 딸이 아비를 심사했다. 아들이 어미를 분류했다.

아들이 아비를 적재했다. 그리하여 자식이, 부모를, 폐기했다." ~ 65쪽 

 

60세를 기준, 늙은 사람들을 재활용 심사를 통해 분류하고 불필요한 자들은

쓰레기로 처분하는 장면에서는 온갖 종류의 동물 실험과 소, 닭, 돼지, 닭,

오리 등의 살처분이 연상된다.

저자는 이 책의 숨은 제목은 '살처분'이고 동물들의 자리에 인간을 대체했다고 한다.

이 책은 쓸모가 없어진 인간이 좀더 유용한 인간들에 의해 폐기물로 분류되고

매립과 소각 등의 방법으로 처리되는 참혹한 미래도시를 통해 국가와

인류문명의 허구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부족함은 그것으로 인해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연민과 배려의 대상으로 보호 받아야 한다.

 

애완생물로 영원히 어린이로 머물러 있으면서 지도계급의 성의 노예인 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국가에 아이를 낳아주는 수,

도시의 시스템에 공모하는 민간인들,

모든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지도계급,

도시의 바깥쪽 경계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인간의 질서를 가진 '우리 동네'

사람들이 등장한다.

수와 진은 어린 시절 만나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헤어져 다른 생을

살아가며 만나기 위해 포기하고 싶은, 삶의 끈을 놓지 않는다.

'우리 동네'라고 칭해지는 쓰레기 도시에서 폐기 직전에 구출되는 진과 수의

결말에서 저자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시는 여전히 경계로 나뉘어 늙고, 힘없고, 능력이 없는

'러브 차일드'들은 쓰레기 더미 위에서 쓰레기를 먹고 쓰레기를 입고

쓰레기와 함께 살아갈것이다.

 

작가는 인터뷰 후기에 '지금 여기'의 사실들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비참에 대한 외면은 세계 전체에 대한 유기적 상상을 근본적으로 저해한다.

.......... 비정규직원들, 파견근무자들... 은 부품과 다를 것이 없다.

가장 싼 가격에 자재를 구입하겠다는 마인드로 기업들이 구인활동을 한 결과이다.

약간의 과장을 걷어낸다면 '지금 여기, 나의 현실'과 명백히 만날 수 있다." ~ 261쪽

 

"자기는 절대로 속하고 싶지 않은 집단을 만들어 나는 거기 포함되지 않는다고

안심하기 위해 그 집단을 계속 소외시키고 내 안의 두려움도 거기에 투기한다.

반면 자기가 속하고 싶은 어떤 집단에 대해서는 그 집단과 나 사이에 아무 접점이

없는데도 동일시하려 들고 그들의 가치가 마치 자기 것인양 내면화한다." ~ 269쪽

 

저자는 소설이 허황하게 읽히지 않게 하기 위해 현실과의 접점이 필요했고

용산참사가 그 씨앗이었다고 밝힌다.

난해한 이 책의 주제는 저자의 후기까지 읽고 보니 확실해진다.

빈부격차와 소외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각성, 나아가 지구촌 안에서 나의

잉여가 상대를 부족하게 하는 일임을 알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기...

저자는 물질이 만능인 사회에서 덜 가지고 소외된 이들의 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못사는 사람이 계속해서 못산다면 결국,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와서 모두가

소외되고 공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서로, 같이,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공동선을 지향하고 지구인의 한사람으로 살기...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은 곧 내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다." ~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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