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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ㅣ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1950년에 태어난 저자 요네하라 마리는 1959 ~ 1964년
아버지의 직장 사정으로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다.
50여 개의 나라에서 모인 아이들을 교육시켰던 학교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비교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후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와 작가가 되는데 좋은 양식이 되었을 것이다.
책 속에는 그리스인 망명자의 딸, 루마니아 공화당 간부의 딸,
유고슬라비아인 급우들과의 기억, 통역사 일을 하며 느꼈던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일본의 차이, 언어 사용의 차이 등에 대한 일화, 공산주의자이던
뚱뚱한 아버지와 독설가였지만 말년에 치매에 걸려 부처님처럼 따뜻한
사람으로 변한 엄마에 대한 추억등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여러 나라의 문화적인 차이를 느끼고자 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다만, 많은 나라들에 대한 문화 편력이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작가의 단편적인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라
다문화의 비교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고픈 책이라는 것이 유감이다.
그녀는 2006년 난소암으로 5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글을 읽으며 그녀의 곱고 여린 심성을 군데 군데에서 만날 수 있다.
* 일본인의 두한족열(頭寒足熱) ~ 숙면과 건강, 사고력과 판단력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차갑게, 발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경우 이마에 찬 물수건을 대는데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러시아인들은 한겨울에 모자를 쓰지 않고 다니면
추위로 모세혈관이 끊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열이 심하게 오를 경우 찬 물수건을 이마에 대고 열을 식히는데
저자는 일본만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아마 동양권의 간호 방법이 아닐까.
많은 부분에서 일본과 한국의 문화가 유사한 것 같다.
* 미국은 야구의 발상지이고 일본에서 야구는 스모를 능가할 정도로 인기있는
운동이다. 그러나 쿠바나 동남 아시아의 몇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야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야구라는 운동경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 각 나라의 속담에 풍류보다는 실리를, 겉보기보다는 내실을 추구하라는
훈계가 들어있다.
일본 ; 꽃보다 경단, 꽃 밑보다 코밑(아름다움을 즐기기보다 입에 풀칠부터 하라)
미국 ; Bread is better than the song of birds. 새의 지저귐보다 빵
러시아 ; 휘파람새를 이야기로 기를 수 없는 노릇이다.
하늘을 나는 학보다 손아귀의 박새.
미남미녀로 태어나기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나라.
집의 매력은 건물의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파이의 맛에서 결정된다.
한국 ; 금강산도 식후경
여러 나라에서 꿈보다 실리를 중요하게 여기라는 격언이 많은 것은 역으로
인간이 실리를 무시하고 꿈을 향해 내달리기 쉬운 존재라는 반증이다.
* 일본의 농부는 쌀의 작황을 좌우하는 강우량에 신경을 쓴다.
러시아의 농부는 밭을 덮는 눈의 두께가 두둑할수록 흐뭇해 한다.
한겨울에 내리는 많은 눈은 초봄 즉, 파종할 때 습기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일본 가수의 노래에는 "비야 비야 내려 내려 좀 더 내려. 내 좋은 사람 데려와 줘"가
있고 러시아 가요에는 "내게 연인을 마련해 준 것은 어쩌면 눈雪인지도 몰라" 가 있다.
*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는 학문관의 차이, 지식관의 차이, 교육방법 자체의 차이가 있다.
프라하에서의 5년 동안 논문 제출, 구술시험 형태의 시험에 익숙해 있던 저자는
일본에 돌아와서 사지선다의 객관식 지문과 O X 문제를 보고 당혹스러웠다.
지식과 단어가 전체 속에서 어떤 위치인가를 묻지 않고 그저 머릿속에 채워
넣을 것만을 요구하는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학입학성적에 수능과 논술을 병행해서 점수를 매기지만 어릴 적부터 훈련받지
않은 아이들의 어려움은 실로 크다.
논술시험이 추가된 몇 년 전부터 수능 이후 학원에서 논술을 두 달 정도 배우고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른다.
학부형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논술시험 대비 학원에 수백만원을 내야 한다.
논술이 대학시험에 정착하고 초등학생부터 논술학원을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공교육에서는 나몰라라이고 논술교육을 체계적으로 전담할 수 있는 여건조차
미흡하다.
학원이 아니라 공교육에서 논리적인 글쓰기와 구술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논문이나 구술 시험을 평가하는 교사의 자질을 높이고 근본부터 바꾸는
교육정책이 시급하다.
동시통역사인 저자는 일본인들의 논리적인 구조가 아닌, 나열식의 산만한
문장들을 외국인들에게 통역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객관식 시험 유형으로 길들여진 우리의 현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렸을 때부터 논리 교육과 철학 교육을 중요시하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교육 방식을 도입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 러시아와 서양 문화에는 공통적인 수사학이 있다.
바꿔 말하기의 미학이 그것이다. 같은 단어를 되풀이하지 않는 러시아인은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경제나 과학 논문에서도 같은 경우라 해도 같은 말로
지칭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을, 저자가 일본어로 통역하려고 할 때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이 없어 한 단어로 번역되는 고충을 털어 놓는다.
일본어에서는 바꿔 말하기의 미학이 중시되지 않거나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학생들의 작곡 실력을 칭찬하는 첼리스트 로스토로포비치의
"admirable, amazing, brave, brilliant, excellent, fine, fantastic,
glorious, magnificent, marvelous, nice, remarkable, splendid, wonderful... "
(그는 러시아로 말했지만 영어 단어로 바꿈) 표현 전체를 저자는 일본어로
'아와레'(우와 멋지다!) 라는 한 단어로만 번역했다.
미국인이나 러시아인들은 감탄하게 하는 대상을 칭찬하는데 어울리는
형용사를 풍부한 어휘 가운데에서 다양하게 고른다.
마치 그들이 표현하는 감동이 거짓이나 가식이 아니라고 납득시키는 것 같다.
형용사 선택 범위의 풍요로움, 사용법의 적확함, 감탄한 당사자의 교양,
감수성을 보여 준다.
우리말의 형용사도 참 곱고 예쁜데. 우리 말은 어떨까...
* "저자는 어느 심포지엄에서의 한 여성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 저는 이런 식으로 높은 곳에서 대단한 체하며 이야기를 하는 게
서투릅니다. 너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도
억지로 밀어 붙여서는..........."
듣는 이의 과분한 배려를 강요하는 뒤틀린 표현은 일본의 중년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고 이것을 문화라고 부른다면 나는 야만인이다.
사퇴하려는 것이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인지, 단순히 예의를 차린 것뿐인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 146-147쪽
저자의 지적이 왠지 통쾌하다. 가식을 싫어하는 저자의 생각이 드러난다.
일본의 문화는 일견 겸손해 보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들만의 독특한 사무라이 문화에서 속을 보이지 않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처세였을 지도 모른다.
몸을 모두 감싸는 기모노, 무릎 꿇고 앉는 다다미, 정중한 인사와
조용한 말씨 등등. 저자의 말과 느낌처럼 친절한 얼굴 뒤로 일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일본을 떠나 체코에 살면서 지리 교과서에
'일본은 몬순 기후대에 있다'는 글을 보고 기뻤다고 술회한다.
"바다에서 멀고 연간 강수량이 일본의 10분의 1 정도인 체코에 비해
고온다습한 조국이 자랑스럽다.
공중에 수분이 많아 호흡기도 피부도 머리카락도 촉촉하게 숨 쉬는
감각을 상기하며 그리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나라 사람을 접했을 때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만들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
반면에 자신과 관련된 조상, 문화를 이끈 자연조건, 무조건 친근감을
느끼는 것, 이것은 일종의 자기보전 본능, 자기긍정 본능이다.
애국주의 내셔널리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밑바닥에,
이치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틀림없이 숨어 있는 불씨이다."
~ 5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