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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머신, 길자 - 환상 스토리
김창완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평점 :
'산할아버지'로 유명한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은 배우, 방송 진행자,
작곡가, 가수로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이다.
그가 제목도 독특한 책 <사일런트 머신 길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환상적인 이야기 6편인데 그가 사유하는 세계에 대해 엿볼 수 있다.
"글쓰기만큼 재미있는 놀이도 없다.
연필 끝에서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볼펜 끝에서 '길자'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흘러 나온다." ~~ 서문
글쓰기가 재미있는 놀이라니... 참 부럽다.
연기를 봐도, 노래를 들어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속에 있는
것들을 쉽게 꺼내는 것 같다.
본인은 힘들지 모르지만 지켜보는 나로서는 모든 일들을 쉽게 쉽게
하는 것 같아 부럽기 짝이 없다.
영원한 피터팬 김창완...그가 피터팬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언제나 오늘은 경이, 경이로운 새 날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말을 없애는 기계...
때로 긴 말보다 침묵하는 편이 훨씬 위로가 되고 설득력이 있다.
아마 저자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들의 주위가 무척이나 시끄럽고
떠들석하다는 것에 지쳤는지 모른다.
애정이 담기지 않은 잔소리에, 기운 빠지게 하는 무시와 무관심에 상처를
입고, 사건사고로 넘쳐 나는 뉴스, 남의 일에 귀기울이고 호기심을 보이는
무리들에 지친 사람들은 한번쯤은 말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 않을까 싶다.
주인공 이씨는 말을 없애는 기계를 발명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본인의
침묵마저 바친다.
그는 완성한 기계의 이름을 아내의 이름인 '길자'라고 짓는다.
침묵의 기계 '길자'를 밤새 켜둔 다음날 아침 뉴스를 보니 차들이 엉키고
어떤 사람은 들것에 실려 나가고 "갑자기 아무 소리도 안 들렸어요." 라는
인터뷰로 여기저기 야단법석이다.
환불 소동이 벌어진 극장 앞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농성 중이다.
이씨는 지금 37킬로미터(서울 동서간 거리는 36.78 킬로미터) '길자'에
도전 중이다. 이씨는 서울 한복판에 산다.
그는 어느 날 아침 동네에서 고양이가 죽어있는 것을 보고
'숲으로 간 조조'를 썼다고 한다.
"여러분을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죠죠'가 살고 있는 글 동산에
초대합니다.
슬픈 목숨을 이어가는 모든 동물들과 악의없는 몽상가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 서문
버려진 고양이들이 많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 음식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를 만나거나 차 밑에 숨어 있는 고양이를 본다.
섬찟하기도 하지만 산 목숨인데 먹고 살기 위해 사람의 눈을 피해
먹을 것을 뒤지는 모습이 처량하고 안스럽다.
저자는 사람의 세계에 편입하지 못하고 버려진 동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아기 고양이 죠죠는 언제나 배가 고프다. 형은 자동차에 치여 죽고
동생인 징요도 헝겊인형처럼 쓰러진다. 엄마 고양이는 미친다.
절망적인 바깥세상에서 살지 못하는 죠죠는 희망을 찾아 아빠와 함께
숲으로 들어간다.
무서워하는 그에게 앞서 걷는 아빠 고양이는 말한다.
"두려움은 네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는 것이란다.
죽음이 네 앞에 있더라도 아빠 꼬랑지가 있다고 생각해라."
죠죠는 검은, 자기의 운명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는 쿤트라의 아들이 되었다.
"숲 속에는 다른 빛이 가득 차 있다.
숲 속에는 혼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전나비떼가 우르르 지나갔다.
제비꽃 꽃잎이 바람에 흩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 덜 익은 도토리가 발 앞에 굴러 떨어졌다.
또르르 굴러가는 도토리가 마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같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푸른 하늘이 나뭇잎 사이로 죠죠를 찾고 있었다.
죠죠는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숲으로, 숲으로" ~~ 66-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