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의 철학
마시모 도나 지음, 김희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디오니소스의 철학>의 저자 마시모 도나는 이탈리아 라파엘레 대학의

철학부 교수이자 4개의 음반을 발매한 음악가이다.

철학과 음악 두 부문의 전문가라는 기이한 약력 못지 않게 특이하게 여겨지는

이 책의 주제인 철학과 술...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르네상스로부터 현대철학,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이면서 방랑하는

음주가들, 그들의 철학 만큼이나 다양한 술에 대한 생각과 술사랑에 대한

일화들이 실려 있다.

시대를 풍미한 사상을 집대성햇으며 여전히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철학자들이 거의 모두가 애주가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들 대부분은 동전의 양면처럼 술이 주는 긍정적인 효능과 무절제로 인한

방종의 해악(술의 양의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수의 성혈로서의 포도주 부분에 많은 지면을 활용하는 저자는 다른 술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동양의 학자들과 동양의 술에 대한 궁금증이 슬며시 생긴다.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영혼을 충만하게 만드는 술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술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무척 아쉽다.

그래도 마라톤과 막걸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살다 보니 한두잔 쯤은 같이 마시게 된다.

때로 술이 주는 열락에 빠지고도 싶고 한번쯤은 필름이 끊기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 이번만은 꼭 마시리라 다짐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이 아닌, 인위적인 다짐에

문제가 있는건지. 두통이 오거나 토가 나올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하게 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도 그중 맛있게 느껴지는 술이 있다.

저자는 주로 포도주에 대해 말하는데

나는 왠지 고향의 맛이 이러리라 느껴지는 막걸리가 좋다.

딱 한 잔까지는. 김치쪼가리에, 때로는 시장에서 갓 지진 빈대떡과 어울려 마시면

푸근하고 마음이 처억하니 가라앉는다.

 

아버지는 평소 말씀이 없었고 차갑고 이성적인 분이셨다.

60이 넘어 가끔씩 술을 마시던 아버지는 자식 여섯 중에 아픈 아이 이름을 부르며

우시곤 했다. 아마... 술을 마시면 어느 순간엔가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아픔을 토로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아버지는 깊이 감춘 아픔을 밖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아니면 자신의 아픔을 잊고 싶어 술을 마셨을까.

그도 아니면 삶이 허무하다고 느끼셨을까.

 

* 소크라테스는 아무리 많은 술을 마셔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흔히 구제불능의 상태로 여겨지는 취함의 상태가 존재 그 자체의

내면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술취함은 인식의 상태를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깊숙이 자리한 신념을

표현하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술에 취하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으며 나쁜 생각으로

기운다고 말한다. 오직 절제하여 마시는 자만이 양식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취함을 진리 탐구와 결부지었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달리 '중용'을 강조한다.

 

* 창세기에서 노아는 포도주의 최초 발명자이다.

그는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 잠이 들고 비웃음을 당한다.

포도열매는 선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위험을 안고 있다.

유대교에 있어서 포도주는 종교의식에 쓰이면서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탈출을 기념하는 날과 부림절 축제 기간에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

그리스와 라틴 문명에서 술은 분석, 찬양, 처벌의 대상이었지만 구약과

유대교에서는 포도주의 상징적인 가치가 드러났다.

 

* 그리스도교에서 포도주는 다른 실체에 대한 상징 또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생명과 구원의 상징이자 그리스도의 성혈이다.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사하려고 많은 이들을 위해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십자가와 생명의 나무는 종종 포도나무로 재현되며 최후의 심판은

포도 수확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 "술의 힘이 스며들어 우리 몸이 무겁게 느껴질 때

   비틀거리는 다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혀는 잘 돌아가지 않으며 머리는 멍해진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헛소리, 요란한 딸국질,

   그리고 시비가 붙는다." ~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

스토아학파와 몽테뉴는 마시는 것과 취하는 것은 영혼의 가치를 실추시키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몽테뉴는 술취함은 비천하고 어리석은 악행이며 시민사회를

송두리째 동요시킨다고 생각한다.

 

* 현대 합리주의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스페인 포도주를 지나치게 많이 마셨다.

그는 구토를 일으키기 위해 포도주에 담배를 우려낸 물을 마셔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 칼 마르크스는 종종 취할 때까지, 주머니의 돈이 바닥날 때까지 마시곤 했다.

마시고 취하는 행위는 거의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났다.

엥겔스는 빈곤의 증가와 술의 수요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 말한다.

"노동자는 피곤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집에 도착한다.

불편하고 습기 차 있고 더럽고 아늑하지 않은 그곳에서, 하루하루 똑같이 이어진

똑같은 오늘 속에서 어떻게 노동자가 술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노동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필요하다."

 

"거나하게 술에 취해본 적이 없는 자는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 키엘케골

 

"저자는 필연적인 무절제를 동반하는 술, 그 술의 즐거움에 건전하게 빠져드는 현상은

순수하게 철학적인 주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절제의 미덕으로 술의 기쁨을 체험한

자만이 악에서 선을, 또는 거짓과 진실의 경계선을 분별있게 지각할 것이라고 본다.

인류가 술을 사용한 역사는 까마득하다.

철학.종교.시.문학의 세계에서 술은 중요한 상징체계이다.

기분좋은 상태로 만드는 포도즙을 누가 처음에 맛보았을까?

셰익스피어는 술취함을 총명한, 활기찬, 창작력이 풍부한, 명민함으로 가득찬,

정열적이고 유쾌한 두뇌로 바꾸는 것으로 정의했다.

무아지경의 원천인 술은 종교행사에서 자신의 중요한 소명을 수행했고 신과의

직접적이고 진정한 결합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였다.

술과 정신, 술과 인식. 인식과 결합된 술이 그 너머의 철학의 세계로 가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 7-8쪽

 

"눈크 에스트 비벤둠 Nunc est bibendum...(자, 한 잔 합시다!)" ~ 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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