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눈동자
알렉스 쿠소 지음, 노영란 옮김, 여서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그날 밤,모두가 자고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 ~ 15쪽

'최고의 이야기꾼, 할머니는 평범한 일상을 동화로 바꾸어 놓을 줄 알았다.

윌리엄은 할머니의 수다가 그립다.

햄이 들어간 꽃상추 샐러드를 먹던 날 슬그머니 내 꽃상추를 대신 먹어

주면서 눈을 찡긋 해 주던 것도 그립다.

할머니의 미소, 웃음 가득한 눈을 잊지 못할 것이다.' ~ 24-25쪽

  

주인공 윌리엄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와 보낸 세월은 8년이다.

나는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져 바닷가 어촌 마을에서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아마도 할머니와 같이 사는 아이들이 정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손자 손녀에 대한 할머니들의 전폭적인 애정 때문일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야 하고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어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래서 아이의 따뜻하고 여린 감성을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라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겨울이면 이제 그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어디선가 꼭 꼭 나오는 찐밤과 밤고구마, 큰 대봉시 감, 곶감....

할머니가 주는 간식은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야말로 황홀할 지경이었다.

따뜻한 시선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담담하게 그려 나가는 작가의 덕으로

오랫만에 할머니에 대한 추억,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윌리엄과 비올렛 역시 할머니를 일상 속에서 그리워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를 추억하듯이....


프랑스 동화작가 알렉스 쿠소는 할머니의 삶과 죽음을 통해 꿈과 이별,

그리고 그리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신이 꿈꾸었던 인생을 아이들에게 들려 주었던 할머니, 이를 믿는 동생,

할머니의 말이 거짓임을 알지만 동생의 믿음을 깨고 싶지 않아 침묵하는 오빠.

소년 윌리엄은 할머니의 유품과 생전의 말들을 생각하면서 할머니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가 꿈꾸었던 삶 또한 할머니의 인생이었다는 소년의 깨달음은 소년의

마음의 키를 한층 자라게 한다.

말벌도 벌이라며 할머니가 벌로 변했을 것이라 믿으며 묻어 주었던 동생,

할머니의 육신은 땅 아래에 묻히지만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가슴을 두들기는

소년, 둘은 매일의 나날에서 할머니와 같이 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떠올리며

행복해 하면서 할머니를 무척이나 그리워할 것이다.

삶과 죽음, 이별, 그리움, 꿈에 대해 아이들의 마음을 키우는 성장동화이다.

마음을 따스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 인간의 삶이

유한한 것에 대한 슬픔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죽은 날, 비가 오지 않고 태양이 찬란한 것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머니가 돌아 가셨고 우리는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울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아마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럴거예요.

우리는 아주 많이 할머니를 사랑했어요.

 



 

할머니는 오래된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그 음악에서 북 치는 사람이 할머니라고 했어요.

숲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할머니는 들풀을 한무더기 모아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뗀 채로

산에서 달려 내려 왔어요. 집에서는 늘 숲의 향기가 났어요.

할머니는 할머니 나이보다 더 오래된 것 같은 옛날 영화를 보여 주었어요.

할머니의 미소, 웃음 가득한 눈을 잊지 못할거예요.

 



 

퍽! 퍽! 퍽! 비올렛이 말렸지만, 귀 뒤쪽에서 윙윙거리는 말벌을 때려 눕혔어요.

비올렛이 울면서 "오빠가 할머니를 죽였어." 그 말이 내 머릿속에서 스무번 메아리쳤어요.

 



 

비올렛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 쪽으로 걸어 갔어요.

"할머니가 죽은 날, 할머니가 나한테 말했어. 할머니는 죽으면 벌이 될거라고."

나는 질세라 벌이 아니고, 할머니도 아니고, 말벌이라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어요.

길옆으로 들판이 있고 들판 가장자리에 소들이 바보처럼 큰 눈을 껌벅거리며 우리를 쳐다봤어요.

 



 

'공잘로 고무줄'은 고무공장인데 버려진 낡은 창고랍니다.

할머니가 평생 일한 고무공장이라고 비올렛에게 알려 줬어요.

그런데 비올렛은 할머니가 북을 쳤다고 믿고 있어요.

"할머니가 말한 것 중에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어. 할머니의 진짜 인생은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재미있지 않았어. 할머니가 죽으면 벌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진짜야.

할머니가 벌로 변한 과정 중에 약간의 문제가 생겨 말벌이 된거야."

 



 

어쩌면 공장에서 고무줄을 만들면서 북을 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할머니는 우리한테 음악을 들려 줬거든요.

그래도....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인생에서 진짜와 가짜를 알 것 같아요. 

 



 

고무 공장! 할머니가 평생 고무줄을 만들며 살았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가끔은, 현실이 꿈을 닮은 것 같아요. 누군가가 매일 아침 고무줄을 만들기 위해

일어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살면 매일 매일... 무언가 다른 인생을 꿈꿀 수 밖에 없겠지요?

 



 

나는 땅을 팠어요. 흙이 부드러웠어요.

레코드플레이어 하나와 몇 킬로미터의 고무줄을 충분히 묻을 수 있는 예쁜 구멍을 팠어요.

말벌을 묻고 흙을 다지고 둥근 돌을 굴려서 말벌을 묻은 자리에 세웠어요.

나중에 이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해서요.

나는 소리없이 조금 울었어요.

 



 

비올렛과 나는 죽은 벌이나 말벌은 볼 때마다 숲에 묻어주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마음 속에 간직하기로 했어요.

고무공장 앞을 지났어요. 나는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비올렛도 똑같이 했어요.

우리는 울음을 삼켰고 미소를 지었어요.

할머니가 들풀을 꺽어 들고 숲에서 돌아올 때 지었던 그 미소였어요.

노래 부르던 그 눈동자였어요.

행복했던 할머니의 눈동자. 생기 넘치는 할머니의 그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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