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책을 아시아를 생각하고, 역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저자는 내용에 들어가기 전, 책의 맨 앞에 위와 같은 헌사를 기록하고 있다.
지도자들의 폭압으로 고통받고 눈물 흘리는 아시아인들과 함께 포탄과
총알이 튀는 혁명의 자리에서, 외신기자들이 하나 둘 떠나는 전쟁터에서,
자신의 양심의 자리에서, 역사의 현장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으로
우리에게 보내 준 전장에서의 생생한 기록들...
전선기자 정문태. 그는 숨가쁘게 전해 왔던 기록들을 다듬어 <현장은 역사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아시아를 포함, 세계 분쟁지역 40여 곳에 이르는 전선을 뛰면서
현장의 소식들을 발빠르게 전했으며 대통령, 총리, 혁명 지도자들, 일반인들을
인터뷰했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 아쩨, 동티모르, 버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7개 나라들에 대한 생생한 역사의 기록을 담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진한 애정과 진정성이 묻어나는 그의 기록은 살아 있으며
기운이 넘치고 날카롭기 그지 없다. 그가 인터뷰한 기록물과 인터뷰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서 혁명가, 고뇌어린 민주전선의 한사람, 어머니, 가족을 잃은
아버지, 형제, 시민, 지도자로서의 고뇌, 여전히 계속되는 정치인들의 아집과 독선
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도 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20년 동안 전쟁터를 누볐던 것은 자신이 취재하는
현장, 그 나라 역사에 대한 이해와 깊은 통찰력,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피땀이 어린 그의 기록들을 보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써내려간 글들을 보면서,
강한 소명의식과 역사인식을 보면서 나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
지난한 우리 역사에 대해 다시 점검하고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무관심과 무지에 대해...많이 반성했다.
역사는 되풀이되면서도 결국은 발전의 방향으로 나간다고 굳게 믿는다.
지금도 진행중이지만. 우리나라 또한 지금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어 왔는가.
그 과정들을 비슷하게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
여행하면서 '왜 이렇게 가난한거야' 라는 외침이 목울대까지 넘어오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입장권 수익마저 베트남의 소유이다),
아직도 민주화의 길이 요원하게만 보이는 버마,
특히, 일제 치하의 우리를 연상시키는 동티모르와 아쩨의 경우는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아시아인의 현실이었다.

아쩨 계엄 군사작전은 시민을 벼랑 끝으로 몰아 붙이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결국, 희생자는 비무장시민인 여성이고 어린이들이었다. 2003.6.18
포루투칼, 네델란드, 일본, 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침략의 역사 아쩨.
인도네시아의 인구 2% 에 해당하는 아쩨는 천연자원과 기름진 땅을 지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쩨의 모든 생산물과 이윤을 실어갔고 아쩨시민 40%가
절대빈곤에 시달렸다.
2003년, 대통령 메가와띠는 경제와 치안을 비롯,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물러나라는 시위대 닦달에 시달렸고 결국 해묵은 비장의 카드 '민족주의'를
꺼내 아쩨를 제물로 삼았다. 군부는 오랜 독재자 수하르또 퇴진으로 날려버린
패권탈환의 기회로, 정치판은 2004년 총선과 대선의 득표 기회로 삼은 전쟁,
바로 아쩨전쟁의 숨겨진 속살이다.

자유아쩨운동 사령관 무자낄의 어머니 2005.9.6
"평화가 뭔진 몰라도 그저 아쩨 사람들끼리만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아이도 돌아와야 오는거지. 내 손으로 만져보기 전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어. 내 바람은 하나뿐이야. 그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서 푹
쉬었다가 메카로 순례를 떠나는거야."
아쩨의 무장 게릴라 어머니의 인터뷰...그저 말이 막힌다.
저자는 세상이 오직 어머니와 아이, 그 둘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모든 혁명 투사들과 그 고난의 세월을, 눈물로 희망을 그리는 어머니들...

인구 100만의 동티모르... 20여 만 희생자 위에 독립국가를 세웠다. 2001.9.2 딜리
포르투칼, 일본, 인도네시아로 이어진 4백여 년 식민통치 끝에
2002. 5월. 20일 21세기 첫 독립국가가 된 동티모르, 그러나 국기와 헌법을
손에 쥔 시민들은 가난과 혼란에 휩싸였다.
정치. 경제적 잇속을 노린 주변국들은 신생공화국을 뒤흔들어 놓았다.
독립한 나라에서 호박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던, 동티모르 민족해방군
사령관과 동티모르초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현재 실권자인 '사사나 구스마오'는
현재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태평양 섬나라들로 식민지를 넓혀 가려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동업자가 되어 있다.
그가 호박 농사꾼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정치적 통합 경험이 없는 동티모르의 현대사는 여전히 '분열의 전통'과
'학살의 기억'이 되풀이될 것이다.
1999. 8.29 살렘바 형무소에서 귀국하면 맨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는
저자의 질문에 답한 구스나오의 말이다.
"어머니의 땅에......(북받쳐 말을 못한다) 입맞춤, 할, 것.....
가난하고 작은....조....국이지만, 우리에, 게는, 모든....것이다.
우린 결코....그, 땅을(눈물이 맺힌다)....잊, 은 적....이 없다."
이랬던 구스마오가...
사람을 변질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욕심일까.
도대체 무엇이... 청춘과 열정을 다 바쳤던 삶의 지고한 가치와 명예를
저버리게 했을까.
나는 왜 이순간 머나먼 동티모르의 지도자에게 화가 나는가.
사람의 본성이 그토록 깨지기 쉽다는 것에 무진장 화가 난다.

카렌민족해방군이 무너지면서 버마-타이 국경의 민족해방.민주혁명 전선은
급격히 시들어갔다. 1994.4.26 매너플라우.
최장기 군사독재 국가 버마, 야만적인 군인들을 탓하는 사이 버마해방혁명 투쟁은
길을 잃고 아웅산 수지라는 이름은 우상에 갇혔고, 국제사회는 변죽만 울렸다.
저자는 민주혁명 지도부가 도시의 아파트를 버리고 다시 전선으로 간다면,
민주화 운동의 동력이 아웅산 수지에서 시민의 이름으로 옮겨 간다면,
민족민주동맹이 외세를 버리고 홀로 서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그리하여 랭군과 국경에 통일전선이 세워지고 수많은 이들이 민주투쟁에 힘을
보탠다면 버마의 해방혁명이 이뤄질 것이라고 희망한다.
2009. 7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 버마로 들어갔다.
버마 방문의 핵심사안인 '아웅산 수지 석방'과 '군부와 야당 대화' 중 어느 것
하나도 끌어내지 못한 그는 불투명한 차기 사무총장 자리와 유엔 운영의
큰 부담을 짊어진 셈이다.

이 유골들 가운데 미군 폭격 희생자와 크메르 루즈 학살 희생자를 온전히 가려내는
일은 가능할까? 그 희생자가 어림잡아 150 만인데 과연 누구에게 킬링필드 책임을
물을 것인가? 1995.4.16
'킬링필드', '크메르 루즈', '폴보트'. 30년도 더 지난 해묵은 말들이 아직껏
캄보디아를 누르고 있다. 1970년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학살전모를 파헤쳐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희생자를 보듬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 크메르 루즈의 단죄와 더불어 캄보디아 인민학살에 책임이 있는
모든 이들을 함께 심판대에 올리는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필요하다.
식민주의자 프랑스, 인민학살자 미국, 침략자 베트남 그리고 크메르 루즈를
도왔던 중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을 모조리 한 법정에 세워 사실을
밝혀야 한다.
1기 킬링필드는 1969~1973년 미국이 저지른 인민학살이다. 60만 정도 사망.
2기 킬링필드는 1975~1979년 크메르루즈가 미국에 빌붙은 공무원, 지식인,
자본가들을 숙청하면서 죄없는 인민까지 죽인 학살이다. 크메르 루즈에 의한
죽음 20만. 미국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구호단체들의 캄보디아 지원을 막아
기아와 질병, 자연사한 숫자까지 더해서 100만 정도 사망.
미국은 폭탄 539,129톤을 캄보디아에 퍼부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쏟았던
폭탄의 3배, 그 파괴력은 히로시마 핵폭탄 25배에 이른다.
폭탄은 불바다를 만드는 네이팜탄, 자손대대 치명상을 입히는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 수천 개의 새끼탄으로 아이들을 집중 살해한 집속탄이었다.
미국의 학살주범은........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키신저이다.
미국과 키신저를 전범으로 국제 법정에 세우지 않는 이상 킬링필드도,
학살재판도 반쪽자리이다.
"미국식의 킬링필드 전설을 끊어버리는 일이야말로 다시는 세계 시민사회가
미국에게 '개죽음' 당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경고다." ~ 374쪽
"나는 지난 20년 동안 캄보디아를 취재하면서 배웠다.
'뒤집어 보지 않는 역사는 배반이다.'" ~ 343쪽
"'아시아', 뉴스', '현장', '기록'을 묶어내는 고민, 기자의 몫이라 여겼다.
'오늘'이 실종될 낌새를 붙들어 매고 버팅기기. 기자 숙명이라 여겼다.
그걸 역사라 믿으며.
아시아의 슬픔과 기쁨, 아시아의 분노와 용서, 아시아의 절망과 희망,
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그 아시아 현대사의 현장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아시아와 역사를 두루 고민해 온 이들과 함께.
그렇게.
아시아를 안고 가자고.
아시아 시민사회의 한 울로." ~ 2009.12 카렌민족해방군 6사단 지역에서 정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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