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글쓰기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이혜경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헤밍웨이는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소설, 인터뷰와 기획 기사,

편지 등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일관된 생각들을 표현해 왔다.

작가인 래리 W.필립스는 수년 간의 작업 끝에 자료들을 모아 몇 개의 범주들로 나누어

<헤밍웨이의 글쓰기>를 내놓았다.

책 속에는 작가들에게 꼭 필요할 것 같은 구체적이면서도 유용한 정보들이 들어 있고,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관한 그의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덤으로, 그의 삶의 모습- 통찰력, 가치관, 유머, 작가관(직업 윤리면에서) 등을 엿볼 수

있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책의 말미에 작가라면 꼭  읽어야 할 수많은 고전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어부의 아들이셨던 나의 아버지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는 내 기억 안에서

둘이 따로 떼어 놓기 힘들다. 

살다 보면 어떤 날의 추억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학력고사 전날 (지금의 수능) TV에서 영화 '노인과 바다'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장면은 바다 복판에서 폭풍우, 칠흑같은 어둠, 기진맥진한 노인,

고기를 먹는 상어를 물리치는 장면, 고기뼈를 끌고 오는 지친 노인의 모습 등이다. 

아버지는 누워서 고기를 잡아 올리려고 사투를 벌이는 배우(스펜서 트레이시) 의

몸짓에 따라 입술을 깨물고 힘을 주셨다.

(아버지는 TV에서 극적인 장면이나 운동경기등을 볼 때 항상 입술을 깨물고 전신에

힘을 주셨다)  나는 아버지 발치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고기잡이 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딸아이 시험의 좋은 결과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 제목만으로도 (그는 제목을 정할 때 무척 고심한다. 광맥을 파헤친다. 혹은 

성경의 전도서나 잠언에서 값진 보물을 훔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깊이가 느껴지는 '노인과 바다'...

노인이 건져 올린 고기는 글쓰기라는 망망대해에서 건져 올린 그의 작품들이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있거라>, <노인과 바다>가 학생 시절 읽은

헤밍웨이의 책들이다.

오래전에 읽어 단편적인 기억들만 살아 있어 안타깝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고 싶었다.

시대를 넘어서 감동을 주는 작품들을 남기는 작가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가슴과

머릿 속에 담긴 생각들을 길어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일반인에게는 절대로 주어질 수 없는 축복같은, 신이 주신 재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놀라웠다. 

대가인 헤밍웨이가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 한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알게 된 지금 그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예의가 아닐 것 같다.

그 치열한 인간정신의 결정체인 '노인과 바다'에 대해 그는 말한다.

"이건 제 평생을 바쳐 쓴 글입니다. 쉽고 편안하게 보이는 짧은 글이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면이 담겨져 있고 동시에 인간의 정신세계도 담겨 있지요.

지금으로서는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입니다." ~ 35쪽

 

"파란색 공책, 연필 두 자루, 연필깍이(주머니 칼은 너무나 낭비가 심하다), 대리석

테이블, 이른 아침의 냄새, 빗질과 걸레질, 필요한 건 그게 전부였다."~ 56쪽

 

"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작업을 하네. 그러고는 과로로 몽롱한 상태에서 먹고, 순전히

배변을 위해 테니스나 수영을 하고 다음날이면 다시 글을 쓴다네." ~ 71쪽

 

"저는 작업 중에 손님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현관문에 나병 같은 정체 모를

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는 나이 지긋한 흑인을 세워 두고 손님을 맞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지가 헤밍웨이구먼요, 지는 댁이 너무 맘에 드네요." ~ 74쪽

 

"글을 쓰는 일은 잘해야 외로운 삶을 사는 일입니다.

작가를 위한 단체는 외로움을 덜어 주지만 글이 좋아지는가 하는 점에는 회의가 듭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면 작가의 공적인 위상은 올라 가지만 작품의 질이 떨어질 때가 종종 있지요.

혼자 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정말 훌륭한 작가라면 매일 영원의 세계를 직면해야 합니다.

아니면 영원의 세계가 없다는 것을 직면해야겠죠." ~ 79쪽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그토록 치열한 글쓰기 작업을 통한 정신세계의 긴장 때문이었을까.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꺼렸다.

문인들과의 어울림은 돈을 벌게하고 사회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겠지만 좋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자신을 고립의 세계에 두고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작가에게 해를 입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은 정치, 여자, 술, 돈, 야망이지.

그리고 정치, 여자, 술, 돈, 야망이 결여된 것이라네."~ 95쪽

 

그는 현존하는 작가가 정치적 명분을 지지하고 그 명분이 득세하면 좋은 입지를

얻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 인류의 지식에 보탬이 되는 뭔가를

발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책이 좋다면, 내가 정말 잘 알고 쓴 것이고 진실한 글이라면,

다시 읽어도 그렇다는 걸 안다면 다른 작자들이 뭐라 깽깽거리든 내버려둬도 좋다.

그 소리가 아주 추운 눈 쌓인 밤 그 작품을 팔아 번 돈으로 마련한 오두막에서 듣는

코요테의 울부짖음처럼 기분 좋게 들릴 것이다."~ 132쪽

 

그는 부양하는 가족이 있어서 돈이 필요하다고도 했고 한꺼번에 지불해서 목돈으로

투자를 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돈을 구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절실하게 원했다.

 

"현존하는 작가에 관해 지껄이는 개 같은 글들은 읽지 말게.

항상 죽은 작가들을 목표로 최선의 글을 써야 하네.

그들이 어떤 위업을 이룩했는지 파악해서 한 명씩 한 명씩 무찔러야 하네." ~ 194쪽

 

"도스토옙스키. 그는 어쩌면 그렇게 형편 없는 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글을

써서 읽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걸까?" ~ 194쪽

 

"우리 시대의 작가들이 해야 하는 일은 이전에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은 것에 대해

쓰거나 죽은 이들이 이루어 놓은 것들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작가로서 잘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은 이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 199쪽

 

"저는 야망이 없는 사람입니다만 세계 챔피언은 꼭 한 번 되보고 싶습니다.

톨스토이는 때려 주기 쉬운 상대입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이 얼마나 센지.

제가 60세까지 산다면 톨스토이를 이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투르게네프와 모파상은 어렵지 않게 이겼습니다.

셰익스피어처럼 그 누구도 감히 두들겨 패줄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챔피언이죠)

두꺼운 책으로는 멜빌과 도스토옙스키랑 붙고 싶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 진흙을

수없이 날렸습니다. 우리는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 뿐입니다." ~ 205-206쪽

 

진실하지 않은 작품을 쓰는 작업을 매춘으로 표현했던 헤밍웨이.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쓰고 싶었던 열망이 그를 지배하면서 글쓰기가 집착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더 좋은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없다는 자기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

그의 아버지가 자살했던 것처럼 그 자신도 우울증 때문에 엽총사고로 자살했다.

(추측이기 때문에 엽총을 손질하다가 죽었을 수도 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시간이 흘러도 공감할 수 있는 위대한 작품 몇 권을 놓친 셈이다.

 

좋은 책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작가가 평생 혹은 반평생을 걸쳐 만든 작품을 길어도 며칠이면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책을 읽다 보면 헤밍웨이가 말한 그대로 나는 작가들의 1인칭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작가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때때로 새로운 소설을 시작했는데 잘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벽난로에 앉아서 작은 오렌지 껍질을 쥐어 짜 불길 언저리에 떨어뜨리며

푸른 불꽃이 타닥타닥 피어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그리고 일어서서 파리의 지붕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걱정하지 마. 항상 글을 써 왔으니 지금도 쓰게 될거야. 그냥 진실한 문장 하나를

써내려가기만 하면 돼.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이면 돼.'" ~~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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