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양영란 / 동문선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겉표지에 20세의 장 도미니크 보비의 멋진 흑백사진이 보인다.
가지런히 모인 두 손과 멋진 스카프, 잘 생긴 청년이다.
그는 저명한 저널리스트에 유머러스하며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44세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유일하게 움직이는 왼쪽 눈꺼풀을 20만 번 이상 
움직여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불친절한 의사가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두 겹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에 마음 깊은 곳에서 "머저리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으로 보이는군요." 
라고 하면서 쾌감을 맛본다.
그는 정상적인 호흡 만큼 감동하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어한다.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 엽서에 그려진 발튀스의 그림, 생 시몽이 쓴 한 편의 글이 
흘러가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미적지근한 체념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적당한 양의 증오와 분노심도 간직하려 한다.
그는 희곡을 쓴다.  그 끝은 자유롭게 걸으며 "제길할, 꿈이었군." 이다.

그는 잠수복 안에서 여행을 즐긴다. 기름 썩은 냄새가 나는 뉴욕의 한 선술집, 
양곤의 시장에서 맡았던 가난의 냄새, 세상의 끝, 백색으로 얼어붙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밤, 네바다 주의 사막 퍼니스 그릭의 이글거리는 태양,  
길을 찾을 때 애를 먹는 홍콩까지...

그는 쓰러지기 전, 마지막 날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내 삶 속의 어느 하루’에서 말한다.
"여인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육체 곁에서 정상인으로서의 마지막 잠을 자고 눈을 
떴으면서도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르는 채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그 아침... 면도하기, 
옷입기, 코코아 한 사발 마시기 등, 지금 생각하면 기적같은 일... 보기로 한 연극은 
취소해야지...그런데 아들은 어디 갔을까... 그리고 나서 나는 혼수 상태에 빠져 들었다."

"캥거루는 벽을 넘었습니다. 동물원의 벽을, 
하느님 맙소사, 벽이 어찌나 높던지요. 
하느님 맙소사, 세상은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 172쪽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강력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174쪽

젊은 자유인이고 젊은 지식인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97.3.9 잠수복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나는 이 책을 나의 두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쓸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은,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주어진 시간을 정말 잘 살아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