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한산성은 백조의 시조인 온조왕의 성터로 경기도 광주에 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한양에서 피신했던 인조 등은 성문을 열어 청나라에 항복한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적에게 내준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이다.
1636년 12월, 인조는 청의 진격을 피해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이 책은 1636.12.14~1637.1.30 일까지 갇힌 성안에서의 기록이다. 
저자는 뛰어난 상상력과 필력으로 굴욕적인 역사의 한자락을 복원시켰다.
대의를 위해 결사항쟁을 고집하는 척화파 김상헌, 삶의 영원성을 위해 화의를 청하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임금 인조, 그리고 삶의 자리를 잃고 고통받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풀어 놓는다.
글 중간 중간에 나오는 우리나라 산하의 묘사는 가슴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기에 
죽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치욕스러운 화의를 택하는 명길, 당시의 가치관과 궤를 같이 하는 
화친불가를 주장하는 상헌. 그 누가 옳은지 판단할 수 있을까.
죄없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화의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인조의 무능함에 
슬며시 화가 난다. 미리 대비를 철저히 했더라면...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는 명.청의 중립정책을 폈던 광해군에 대한 부정으로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하고 명과의 외교를 택해 청과의 관계를 단절, 청의 침략을 유발시킨 셈이다.
의심 많았던 인조는 아들 소현세자, 며느리, 아들까지 모두 몰살하는 독한 면모를 보인다. 
물론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역사에서 그를 묘사한 바로는 의심이 많고 자신의 왕위를 수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치루고 마는 독한 왕이다.
내가 아는 인조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여기까지이다.

본문에서 침략자인 용골대는 대인의 모습을 보이는 반면, 임금을 포함한 남한산성 내의 사람들은  
소인배들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라는귀절은 여러 부분에서 노래의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리더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답답했다.
수없이 많았던 이민족의 침입,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던 선조들의 모습,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 갈라진 남북, 남한 내에서도 갈라진 영.호남 간의 갈등... 주저리 주저리 화가 난다.

그는 "소설가는 순탄한 삶이 아니다. 세상을 악착같이 관찰하고, 세상과 격리되어 끈기있게 인내심을 가져야만 이뤄낼 수 있는 꿈" 이라고 말한다.
그의 예리하고 섬세한 다음 소설을 기대해 본다.

"묵은 눈이 갈라진 자리에 햇볕이 스몄다. 헐거워진 흙알갱이 사이로 냉이가 올라왔다.  
흙이 풀려서 빛이 드나드는 틈새를 싹이 비집고 나왔다. 바늘끝 같은 싹 밑으로 실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었다. 행궁 뒷마당과 민촌의 길바닥에, 산비탈이 흘러내려 들에 닿는 언덕에
냉이는 지천으로 돋아났다. 
냉이는 본래 그러하듯이 저절로 돋아났는데 백성들은 냉이가 다시 겨울을 견디었다고 말했다." ~~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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