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6살 소녀 클레어는 초원에서 시간 여행자 헨리를 만난다.
미래의 어느 시간에서 왔다는 헨리의 말을 믿는 순간 평생의 사랑은 시작된다.
모든 사랑의 뿌리는 믿음일 것이다.
시간을 여행하는 헨리와 그런 그를 기다리는 클레어...
시간여행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 저자는 영원 불멸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조건을 말하고 편안한 삶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남녀간의 사랑이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것인가...
인스탄트식의 사랑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한자리에서 변함없이 기다리고 불확실한 헨리를 이해하며
사랑으로 껴안는 클레어의 자세는 실로 배울만하다.
"나는 헨리를 사랑해요. 그는 내 인생이예요. 나는 평생 동안 그를 기다려 왔어요.
헨리와 함께 있으면 나는 모든 것이, 과거와 미래가 지도처럼 한꺼번에 펼쳐져 있는 걸 느껴요.
마치 천사와 함께 있는 듯... 그 사람한테 손을 뻗으면 나는 시간을 어루만질 수 있어요.
이미 일어난 일이예요. 모두 한꺼번에 다." ~~ 1권 233쪽

헨리는 유전자의 이상으로 인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낯선 시간, 낯선 장소로 떨어진다.
헨리가 두려워 하는 것은 추운 겨울, 경찰, 엉뚱한 시간과 장소에 떨어져 차에 치이거나 얻어 맞는 것이다.
그는 클레어를 잃게 될까 봐 두렵고 시간 사이에 꼼짝없이 붙들려서 돌아갈 수 없게 될까 봐 두렵다.
그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기를 연습하고 도둑질과 소매치기, 무단가택 침입, 거짓말,
폭행 등을 저지르기도 한다.
헨리에게 있어 어머니의 죽음은 중심이 되는 축과 같아서 모든 것이 그것을 중심으로 돈다.
그 장면을 꿈꾸기도 하고 그곳으로 시간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을 돌이킬 수도 없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그의 참담함과 비통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과거로 갔을 땐 예전에 행동했던 대로만 할 수 있을 뿐, 그곳에 있었던 그대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일은 그 시간에 항상 일어나게 되어 있다. 오로지 단 한번.
그는 시간여행을 하며 살아 있는 어머니 주변을 맴돈다. 비록 큰 고통을 동반하지만 어머니가 그립기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에 알코올 중독에 빠진 헨리의 아버지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폐인처럼 살아 간다.
어머니의 반지를 클레어에게 전해 주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간 헨리는 말한다.
"수백번도 더 본 어머니는 공원에 가고 악보를 익히고 쇼핑을 하고 커피를 마신다.
전철에서 나는 어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슈퍼마켓에 따라가고 어머니에게 말도 건다.
시간여행이 마냥 저주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 버린 아버지 인생을 안타까워하실 것이다."
"그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기쁜거지. 가장 괴로운 건 네 어머니가
가 버렸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네 어머니가 거기 존재한다면 그걸로 좋은거야.
비록 내가 볼 수 없다고 해도..."
과거의 시간, 과거의 어느 공간. 내가 기억하고 있다면 현재의 내 마음과 내 공간 안에 있는 것이다.
나의 추억 속에서 살아서 흐르고 있는 것... 내 마음 속에 새겨진 엄마...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가능하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무엇을 해야 더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까 고민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는 아버지와 엄마가 살아 계셨다.
그도 아니면 아버지, 엄마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 원도 없이 효도를 할 수 있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아버지의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아침잠을 깨고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배 아플 때 내 배를 쓰다듬던 울 엄마의 투박한 그 손의 감촉을 마음껏 느껴 봤으면 원도 없겠다.
신에게는 천년도 한순간이라지만 백년도 못 사는 인간...
한방향으로 내달리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 시간들은 마냥 흘러가고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헨리의 말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미래의 시간을 맞는다면 두렵기는 하지만 어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예정된 시간들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간의 삶에서 때로, 문득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려운 미지의 시간들이다.
낙관적인 시간들에의 암시가 자신의 행복의 씨앗을 가꾸는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하자...
모두가 잘될거야...

데렉 월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