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백야행'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소설 3 권의 분량을 상영시간 135분으로 압축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됬고 영화로는 우리나라에서 먼저 제작되었다.
충무로의 기대주인 젊은 감독 박신우가 연출한 이 영화는 잔상이 오래 남는다.
그만큼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리얼해서 주인공들의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다 보니 그 슬픔과 아픔이
쉬이 가실 것 같지 않다.
일본소설이 원작인 만큼 줄거리의 정서를 받아 들이기는 참으로 어렵다.
가정폭력과 존속살인, 가학적인 성, 선악의 개념을 떠나 당연시되는 살인 등등...
흑백의 색깔을 대비한 충격적인 영상과 음악, 배우들의 뛰어나고 절제된 연기력이 없었다면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훨씬 떨어졌을 것 같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따라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 주는데 비약과 간극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다. 상상에 의해 채워 넣으면 되니까...



배역을 소화하기 위함일까... 더욱 슬림하게, 깊어진 눈빛으로 나타난 고수.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요한의 모습을 슬픈 눈빛과 표정으로 완벽하게 표현한다.
밝은 태양 아래 걷고 싶은 요한, 그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결국 없는 것인가.
조금 더 이르게 멈췄더라면 햇빛 아래서 얼굴을 가리지 않고 걸을 수 있었을까...
요한의 정사신은 참으로 슬프다...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 때문인가. 욕망을 빛이라고 생각했던 유미호.
너무나 힘겨운 과거,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할 현재를 살아가는 미호는 빛 속에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어둠이다.
심장을 쥐어 뜯으며 울어도 상처는 그대로이다.
조용한 말과 미소를 잃지 않지만 얼음과도 같은 차가움을 지닌 여자 미호...
불륜녀나 이혼녀보다 미호역이 훨씬 어려웠다는 그녀의 말대로 쉽지 않은 미호의 캐릭터를
손예진은 완벽하게 표현한다.
과거와 현재의 희생으로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까.
상처가 너무도 깊었기에 14년 전에서 한치도 자랄 수 없었던 비틀어진 유미호는 자신의 끝없는
욕망 때문에 자멸한다.
구원의 손길은 여러번 있었다.
그만 하자는 말을 받아 들였어도, 마지막에 요한의 방문을 열었다면, 요한이 누구인지 안다고
대답했더라면 그녀는 구원됬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은 멈출 수 없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이미 지옥문으로 한발을 내디뎠으니까...
멈출 수도 있었을 욕망, 멈췄어야 할 욕망...


한석규는 30대에서 50대까지의 형사 역할을 하는데 역시 이름값을 하는 배우이다.
"내게서 똑같은 연기를 기대했다면 선택하지 않앗을 것이다." 라고 말한 그는 백야행에서 인간을
배려하면서도 자신은 고통과 자책으로 가득 찬 역할을 표현해 낸다.
미호보다도, 요한보다도 더욱 괴로웠을 캐릭터다.
극을 이끄는 중심인물로 미호와 요한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고 자책한다.
그는 14년 전의 사건 때문에 아들을 잃었다.
그 슬픔으로 인해 당뇨병에 퇴락한 형사로 인슐린 주사에 의지하고 눈마저 멀어 가는 합병증으로
시달리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결코 잃지 않는다.
" 요한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때 내가 너를..."

빛과 그림자.
미호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 줘. 네가 나를 살게 했잖아.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숨을 쉴 수 조차 없었어".
살인보다 더, 더 나쁘다.
"너를 지켜 줄거야"

“미호와 요한은 샴쌍둥이 같은 존재야. 같이 붙어 있으면 괴롭지만, 떨어져서는 절대 살 수 없는.”
미호가 가위를 쥔 요한의 손을 잡았던 순간부터, 상처를 공유하던 그 순간부터 둘은 붙어 있어
괴롭고 떨어지면 힘들어 하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요한을 이용하는 미호, 그녀를 지켜주려는 요한의 비극적 운명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어둠 속...백야이다.
태양이 뜨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인간의 숨겨진 상처와 고통이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가.
상처를 가진 사람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모두 그 내면에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상처의 치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어야 할까?
사랑을 위해 타자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집착과 아집의 다른 이름일 뿐, 이기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