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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 - Trick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안제이 자크모프스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 ’트릭스’는 아름답고 정겨운 이야기이다.
깊고 파란 눈망울, 귀엽고 야무진 스테펙 역을 맡은 데미안 울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도쿄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누구나 영화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 한자락을 들여다 볼 것 같다.
부모에게 떨어져 시골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나는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오시면 새옷, 새 신발, 과자 등을 사오셨고 그것들을 동네 아이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마을 이정표를 가르키는 큰 바위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만 기다려야지 하면서 가다가 다시 돌아와 기대서 기다리기를 반복하고 어둑해질 때까지 마을
입구 쪽을 바라다 보곤 했다.
꼭 큰바위에서 기대서 기다려야 아버지가 오실 것 같았다.
아이는 누나가 때로는 아빠처럼, 엄마처럼 돌보아 주고 따뜻한 엄마 밑에서 구김살없이 자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도 간절했을 것이다.
원망의 감정으로 아빠의 사진에서 한쪽 눈을 파내고 이빨을 뽑고 색연필로 험하게 낙서했지만
낡은 사진을 주머니 속에 간직한 것은 그리움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아마도 아빠가 떠났던 곳이 기차역이었을 것 같다.
떠난 기차역에서 아빠가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렸을 것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열차는 우리네 어릴 적 비둘기호나 통일호처럼 낡았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그 열차와 기적소리가 무척이나 정겹다.
평화로운 폴란드 시골 마을의 정취, 맑고 파란 하늘을 날아 다니는 비둘기떼, 정다운 시골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스테펙은 누나 엘카로부터 트릭이 행운이 되는 방법을 전수받는다.
쓰레기통에 휴지를 제대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햄버거가 든 종이봉투를 쓰레기통 옆에
세워놓는다.
옆 가게에 비해 사과를 팔지 못하는 사과장수 아저씨에게는 사과를 사는 대신 빈카트를 세워 놓는다.
사람들은 세워놓은 카트에 카트를 밀어넣고 난 다음에 사과를 사고 사과장수 아저씨는 밑바닥에
깐 신문지마저 털어 버린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참 아름답다.

누나 남자친구의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달리는 기차와 달리기 시합을 제의하고...
오토바이 씬이 나올 때마다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시골길의 아름다움은 화면 가득히 퍼진다.
그림과도 같은 장면들이다.
기차보다 더 빠른 오토바이. 이 오토바이는 자주 시동이 꺼져 남자친구를 쪽팔리게(?) 하고
비오는 날 시동이 걸리지 않아 누나와 그는 비를 쫄딱 맞고 집에 오는 날도 있다.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스테펙의 이야기를 듣고 믿어준다.
아빠를 잡아 두기 위해 카페 밖에 병정들을 세워 놓으면 아빠가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믿어
주고 아빠가 나오지 못하도록 밖에서 문도 걸어 잠근다.


스테펙은 3가지의 트릭을 써서 아빠가 기차를 놓치고 마을에 머무르게 하는데 성공한다.
철로에 장난감 병정을 세워 달려오는 기차 안으로 넣어 두었을 때 넘어지지 않기,
철로에 동전을 뿌려 기차의 출발을 지연시키기, 비둘기들을 속이기 위해 비둘기 할아버지의
모자를 쓰고 담배를 피우며 할아버지처럼 '딱' 소리를 내서 비둘기 날려 보내기( 여러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다.)
누나는 자신을 기다릴 때 주먹을 꼭 쥐고 있으라고 말한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남의 차에 오줌을 누다가 조준을 하지 못해 비상벨이 울리게 하고 떨어뜨린
돌들을 주먹을 쥔채로 올리는 등등 아이는 그야말로 순수하기 짝이 없다.
생활력이 강하고 속깊은 누나 엘카,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간혹 시동이 걸리지 않는 고물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며 고물스포츠카와 고물세단 중 어느 것을 구입할지 고민하는 남자친구,
끊지 못하는 담배를 피우면서 행복해 하는 비둘기 할아버지와 친구들, 잠시 들른 아버지를
반기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더 많이, 더 풍족하게, 더 편리하게만을 외치는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한지를 보여준다.
시골에서 사는 것이 나의 꿈이니 트릭을 어떤 것으로 써볼까나...

아빠가 기차를 타고 가 버린 것을 알고 비장한 각오로 차를 세우는 스테펙.
애고애고 영화니까 망정이지. 기차에서 노는 모습이 몇번이나 불안하다.
기차를 타고 잠이 든 스테펙, 뒷날 아침 역 의자에 길게 누운 아빠를 발견 한다.
아빠는 마을 사진관에서 자신을 제외한 가족사진을 보고 역에서 자주 마주쳤던 스테펙이
아들임을 알게 된다.
희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주문과 암시를 하는 스테펙에 의해 가족은 분명 예전의 단란함을
찾으며 지금보다 더욱 행복할 것이다.
아빠를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아이의 강한 믿음과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행운을 가져올 것이다.
지금 행운이 필요한 모두에게 트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