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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악의 추억'은 다소 충격적인 겉표지를 보여준다.
새하얀 밀납인형 같은 여자의 시체가 늘어져 있고 케이블 카, 화려한 빛깔의 조명으로
빛나는 도시, 높은 마천루, 검푸른 밤바다 등이 어딘지 모를 악의 음습한 기운을 담고 있다.
도시와 밤바다, 도시와 바다 위에 떠 있는 케이블카, 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인의
시체 등을 통해 소설의 내용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이 짐작된다.
![012[2].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50/77450/1/012%5B2%5D.JPG)
사건이 일어나는 도시들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가난을 상징하는 침니랜드,
또 하나는 부와 행복을 상징하는 뉴아일랜드이다.
서로 안개 속의 도시 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뉴아일랜드가 피를 빠는 기생생물 처럼 비대해지는 반면, 침니랜드는 차츰 생명력을
잃어가고 사람들은 범죄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빈부의 극명한 차이는 대를 물리면서 더욱 심화되는 법이다.
천형처럼 가난을 등에 이고 사는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빠져 죽은 목숨보다 못한
삶을 연명한다.
반도에 섬이 생기고 초고층빌딩들이 생기면서 두 도시 전체를 감싸는 깊은 안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고 배려하지 않으며,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챙기다 보니
참된 인간성을 회복할 방법을 잊어 버리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소설 전반에 걸쳐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깊은 심연과도 같은 안개가 깔린다.
짙은 안개는 사위를 분간하지 못하게 하고 분별력과 자제력을 잃게 하기도 한다.
안개는 매코이가 늘 되뇌이는 것처럼 1 과 자신만으로 나뉘는 외로운 숫자, 소수처럼 고독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생긴다.
어둠과 악으로 가득 차 있어 서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소통 부재의 고립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짙은 안개가 깔리고... 살인은 소리없이 일어난다.
![013[2].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50/77450/1/013%5B2%5D.JPG)
고통을 느껴 본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고통이 뼛속까지 깊으면 깊을수록 타인에 대한 그 이해의 폭 역시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해하는 결과가 살인이라면 지나치다.
아무리 죽고 싶을 만큼 힘들더라도, 타인이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더라도
목숨은 신의 영역이다.
지나친 고통과 번민, 자책으로 다중인격을 가지는 살인자에게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그러나 오랫동안 악과 악인을 들여다 본 결과 그 악에 동화된다는 여러 암시에도
불구하고 웃음가스와 근육경련제를 사용, 여자들을 살인으로 몰고 간 것은 지나치다.
물론 데니스 코헨의 행위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지만 웃음을 머금고 죽게 만든
이유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선의에 의해서라면 또 다른 살인자의 의지가 코헨의 결정에 개입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품게 한다.
![014[2].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50/77450/1/014%5B2%5D.JPG)
초고층 빌딩들이 생기면서 깊은 안개가 생기기 시작했다.
케이블카에서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부두의 요트, 방조제, 모두 개방된 장소에서 일어난다.
물론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속에서...
여인들의 시체는 한결같이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고, 이들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몰고 온다.
연쇄살인의 범인인 데니스 코헨을 쫓는 정직형사 매코이는 심리 분석관인 라일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그가 죽였다고 생각한 데니스코헨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한다.
그와 데니스코헨의 쫓고 쫓기는 추격...
![015[3].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50/77450/1/015%5B3%5D.JPG)
코헨에 의해 머릿속 총알 뿐만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과 과거를 가지게 된
매코이는 자신의 분노와 자책감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망가진 뇌는 몸을 망가뜨렸고 끊임없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016[3].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50/77450/1/016%5B3%5D.JPG)
![017[2].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50/77450/1/017%5B2%5D.JPG)
두 개의 도시, 세 명의 희생자와 잇따른 죽음들, 네 개의 퍼즐, 뇌과학과 기억에 관한 사실,
등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이 여자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다가 드러난 반전에 놀라서
데인 적이 있는 터라 깊이 생각하며 처음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작가가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오차없이 내용을 전개하는지 알 수 있었다.
![018[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450/77450/1/018%5B1%5D.JPG)
'나에 대한 너의 거짓말' 이라는 가제본으로 받았던 책을 " 늘 행복하세요 "라는 작가의
사인이 담긴 완성된 책 "악의 추억'을 받고 기분이 무척 좋았다.
구성과 스토리가 탄탄하고 놀라운 이야기로 반전을 드러내는 작가의 글솜씨에 늘 감탄한다.
'악의 추억' 도 작가의 생각을 추리하며 예측하면서 잠시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읽었던 터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좋지 않은 기억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 먹는다.
지독한 기억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고 마침내 그 삶을 갉아 먹는다. ~~235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