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번역본(<로마제국 쇠망사> 1, 윤수민, 김희용 옮김, 민음사)과 원문(John Bury ed, Random House, 1995) 비교



2장 안토니누스가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통일과 내부적 번영 예술 사람들

*art가 반드시 '예술'이라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2장에서는 예술 얘기가 안 나온다. art의 어원은 헬라스어 techne로, 예술보다는 기술에 더 가까운 말이다. 이런 의미를 살린다면 art는 여기서 예술보다는 '기예'가 더 적절한 역어이며, 실제로도 이 시기 텍스트에서 art가 나왔다면 표준적으로 그렇게 많이 옮긴다.

The love of letters, almost inseparable from peace and refinement, was fashionable among the subjects of Hadrian and the Antonines, who were themselves men of learning and curiosity. It was diffused over the whole extent of their empire; the most northern tribes of Britons had acquired a taste for rhetoric.

- 국내 번역본

학문을 사랑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두 안토니누스 황제 시대에는 평화 시의 세련된 취미와 떼어놓을 수 없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문학은 전 제국으로 확산되어 브리타니아 최북단에 사는 부족들도 수사학을 알았다. (62p)

-번역 수정

평화 및 세련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문예에 대한 사랑이, 학습과 호기심에 열정적이었던 하드리아누스와 두 안토니누스 시대에 신민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문예는 전 제국으로 확산되어 브리타니아 최북단에 사는 부족들도 수사학에 대한 취향을 익혔다.

letters는 학문보다는 일반적으로 문예로 옮긴다. 참고로 '편지공화국'으로 알려진 republic of letters도 '문예공화국'이 더 정확한 번역어다. 문인들이 편지로 소통했으니 아주 틀린 번역은 아니기는 하다.

'국민'이라는 번역어는 19세기 이전 텍스트에는 쓰일 수 없는 단어다. subject도 여러 의미가 있지만, 피지배민을 의미할 때는 신민(臣民)이라는 단어로 옮겨야 한다.

'평화 시의 세련된 취미'라는 것은 원문을 지나치게 의역한 것 같다. '학문을 사랑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와'라는 문장은 반대로 원문 단어 일부를 누락한 번역이다.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도 'taste for rhetoric'도 'taste'를 번역하지 않았다. 번역은 단어 하나 빼지 않고 남김 없이 옮겨야 한다. 특히 기번과 같은 문장가라면 접속사 하나도 유의해야 한다.

The sublime Longinus, who in somewhat a later period, and in the court of a Syrian queen, preserved the spirit of ancient Athens, observes and laments this degeneracy of his contemporaries, which debased their sentiments, enervated their courage, and depressed their talents.

- 국내 번역본

좀 더 후세에 롱기누스는 시리아 여왕의 궁전에서 고대 아테네의 정신을 이어갔다. 그는 정서를 타락시키고 용기를 쇠하게 하고 재능을 억압하는 동시대인들의 퇴보를 목격하고 한탄했다.

- 번역 수정

좀 더 후세에 숭고한 롱기누스는 시리아 여왕의 궁전에서 고대 아테네의 정신을 이어갔으며, 정서를 타락시키고 용기를 쇠하게 하며 재능을 억압하는 동시대인들의 퇴보를 목격하고 한탄했다.

번역할 때는 가급적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으면 번역문도 하나의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올바르다.

그리고 국내 번역본은 원문에 있는 'sublime'이라는 단어를 빠뜨린 채 번역했다.(롱기누스는 <숭고에 관하여>On the Sublime라는 책을 저술했다)


국내 완역본은 전체적으로 번역이 매끄럽지만, 가끔 잘못된 역어 선택(대표적으로 people을 전부 '국민'으로 번역하는 등)이나 단어 누락, 의역, 오역 등이 눈에 띈다.

그래서 방학 동안에 <로마제국 쇠망사> 1권을 통독하는데, 원문과 비교해서 국내 번역본 일부를 고쳐서 올려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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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독하는 뉴스레터인 '서울외계인'의 오늘자 레터를 읽었는데, 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같은 책을 번역한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한국어판에는 생략, 누락된 내용이 많았습니다.

저자가 역사학 석학인데 책을 이런 식으로 썼다는 게 좀 이상하긴 했어요. 참고, 인용한 책을 표시하는 각주나 미주가 하나도 없고, 내용은 조금 진지한 에세이 같았으니 말이에요. 그러나 영어판은 서문 중간 정도까지만해도 주가 60개를 넘었어요. 이 많은 걸 모두 무시하고 전혀 번역하지 않은 거죠.

그리고, 영어판은 352페이지이고, 한국어판은 328페이지에요. 언어 특성상 한국어판이 영어판보다 페이지 수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데 참으로 요상합니다. 마법이라도 부렸는지. 미주 페이지가 빠졌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옮긴이의 말이 책 맨 앞에 배치된 것도 이상했고, 그 내용은 책을 읽고 쓴 게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변죽을 울리는, 핵심과 별 상관 없는 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책은 <낭만적 은둔의 역사>. 출판사는 더퀘스트, 번역자는 공경희.

내가 무슨 책이 나와도 절대로 안 사는 출판사, 번역자, 저자 리스트가 있는데, 오늘 오랜만에 새롭게 리스트를 갱신했다.


나도 이 책을 사려고 했는데, 돈 아꼈다.

집에 있는 저들의 책을 다 버려야겠다.

심지어 그중에는 내가 읽으려고 사놓은 C.S.루이스의 소설도 있어서 더 충격이다.

다음은 같은 번역자가 번역한 민음사 <호밀밭의 파수꾼>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대한 코멘트.

https://blog.naver.com/asnever/220173717219?

https://blog.naver.com/asnever/220138551705?


안타깝게도, 이 평가를 보니 저 역자에게 번역의 질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나는 일부 오역이나 번역체 투성이의 번역일지라도, 그 노고를 알기에 공개적으로 이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똑같은 지적(문장 누락, 맥락을 무시한 오역 등)이 들어오는데도 고치지 않는 역자라면, 이후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실상을 알려야 한다. (그나마 민음사는 새 번역자를 구해 <호밀밭의 파수꾼> 개정판을 내기라도 했다)


출판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 저런 무책임한 짓을 한 번역자와 출판사다. 다른 책에는 성실하게 임했을 것이란 보장이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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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7 1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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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7 2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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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3
알베르 카뮈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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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완성되지 못한 유고작이다.

그래서 퇴고를 거치지 않아 문장이 거칠고 정돈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가난과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카뮈의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주인공 자크 코르모리는 어머니의 권유로 자신이 1살 때 사망하여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무덤을 처음으로 찾아간다. 무덤 앞에서 그가 본 것은 현재 자신의 나이(40살)보다 더 젊은 나이에 사망한 아버지(26세에 사망)였다. 그는 부조리("억울하게 죽은 어린아이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느끼는 기막힌 연민의 감정", 33)를 느끼고 아버지의 자취를 찾아나선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정체성과 가난에 대한 묘사가 합해져 이 소설의 깊이를 더한다.


"가난이란 일부러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없어지지 않고 줄곧 따라다닐 수는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76)


"가난한 사람들의 기억은 벌써 부자들의 기억만큼 풍요롭지 못하다.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 떠나는 적이 거의 없으니 공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고 그게 그 턱인 단조로운 생활을 하니 시간적으로 가늠할 만한 표적이 더 적었다...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는 것은 오직 부자들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죽음이 지나간 길의 희미한 자취를 표시할 뿐이다. 그리고 잘 견디려면 너무 많이 기억을 하면 못 쓴다" (90)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난에 쪼들리지 않았지만 습관이 들어서, 그리고 또 삶의 고통을 견디어 온 사람들 특유의 불신 때문에 여전히 궁핍을 먹고 살았다. 그들은 동물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삶이란 또한 그 뱃속에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불행을 규칙적으로 낳아 놓곤 한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143)


그는 이민자인 아버지가 발 밟았을 항구에 도착하여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는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키가 큰지 작은지도 알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 본 항구의 부두에서 기중기들이 여행 동안 무사히 견딘 보잘 것 없는 가구들을 실어 내리고 잃어버린 가구들 때문에 말다툼이 벌어지고 있을 때의 그 이민들 가운데서 아버지를 본 것이다." (195)


그 이민자들은 마치 자크의 아버지처럼 "자식들을 낳아 놓고 사라졌다. 이렇게 그들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또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 역시 오늘 자크 자신이 그렇듯이 과거도 윤리도 교훈도 종교도 없는 채 이 땅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고 또 그렇게 된 것을...행복해 하고 있었다. 그 모든 세대의 사람들, 서로 다른 고장에서 지금은 어느새 황혼의 기미가 떠오르는 이 기막힌 하늘 아래로 찾아왔던 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를 안으로 닫은 채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들 위에는 엄청난 망각이 드리워졌다."


최초의 인간은 가난한 이주민들의 망각의 땅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지금을 사는 것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과거의 좋은 일도 힘든 일도 기억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를 잊고, 그저 동물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자손들에게 남기는 자취도 없다. 그래서 자손들은 앞선 세대를 망각하고 저마다 새로운, 최초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203)


'최초의 인간'은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자크의 아버지, 또는 자신의 뿌리가 되는 최초의 인간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동시에 그 뿌리에서 잘려나가 세상의 모든 사태를 최초로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최초의 인간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는 전통은 무의미하다. 과거의 '종교, 윤리, 교훈'은 지금의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으며, 모든 인간은 삶의 지침이 되어줄 수 있는 과거와 전통으로부터 유리되어 전적으로 처음 접하는 세계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실존주의의 테제이며, <최초의 인간>은 실존주의의 인간관을 집약하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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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서유럽의 흑사병 - 사상 최악의 감염병과 인간의 일상 知의 회랑 39
이상동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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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가 정교하지는 않지만, 흑사병에 대한 배경지식을 익히는 데는 도움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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