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를 읽다 - 중국과 사마천을 공부하는 법 유유 고전강의 3
김영수 지음 / 유유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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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는 52만 6,500자에 열전만 70권으로 이루어져 그 방대한 체계를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일독 자체도 버거운 책이다. 더욱이 사마천은 한자 한 단어에도 미묘한 함축을 부여하여 자신의 속뜻을 숨겨두기도 하였으므로, 이 역사서를 완전하게 독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점 때문에 <사기>를 읽으려는 이들은 필수라고 할 정도로 입문서나 해설서를 읽어야 겨우 이 거대한 저작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희미한 줄기라도 잡을 수 있게 된다.

사마천 <사기>를 읽기 전, 이 텍스트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그 핵심을 지적하는 책에는 한자오치의 <사기 교양 강의>가 있다. 이 책은 <사기>의 중요 인물 12명만을 추려서 사마천이 인물을 평가하는 관점, 태도, 그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면서도 <사기>가 가진 문학성에도 초점을 맞추었다. 사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는 못하고 구조적 이해를 심화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한자오치의 책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김영수의 <사기를 읽다>는 "30년 가까이 <사기> 공부에 매진"한 한국인 학자에 의해 쓰인 "<사기> 입문서"이다.

저자는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두 권짜리 책도 썼고, 150여 차례 이상 중국 현장 답사를 하였다고 자부하므로, 이 책은 <사기> 읽기에 착수하기 전에 읽어볼 기본서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책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책이었다.

일단 목차에서부터 의아한 지점이 많다. 1강에서는 왜 사마찬과 <사기>를 알고 읽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고, 2강에서는 사마천이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3강에선 사마천의 생애를 조명한다. 이미 1~3강을 통해 이 텍스트가 가진 의의를 지루할 정도로 설명해놓고서는, 4강에서 드디어 <사기>에 대해 본격적인 해설을 시도하나 싶더니, 저자는 이 '절대 역사서'의 위대함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5강에서는 또 이 책의 매력(정확히는 영향력이지만)에 대한 장황설을 늘어놓는다. 흥미로운 내용이기는 했지만, 과연 <사기>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이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나머지 6~8강도 본격적인 텍스트에 대한 침잠이 아니라 일종의 부록 같은 느낌으로 사마천의 문학성과 언어, 경제관, 사마천의 현장답사를 다룬다. 6강은 <사기>의 문학적 위대함과 흥미로운 고사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이 책의 매력을 설명한다. 이쯤되면 이 책은 <사기>의 매력에 대한 입문서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본다면, 김영수의 이 입문서에서 정작 사마천 <사기> 자체를 해설한 부분은 4강, 6~7강, 8강 일부이고 다른 부분은 대부분 텍스트 외적인 것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구성도 치밀하지 못하다. 4강에서 텍스트의 기본 사항에 대해 설명하고는, 바로 다음 강의에서 이 텍스트의 영향사를 나열하고, 흥미로운 고사와 기사들, 경제관, 현장답사로 이어지는 강의의 흐름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사마천과 <사기>의 훌륭함만 주구장창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서술과 중구난방한 구성으로 정말 입문서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가장 의아한 것은 <사기> 입문서를 자처하는 책이 정작 사마천의 <사기> 원전을 직접 인용하며 해설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있어도 <사기> 속 고사나 기사를 설명하면서 관련 부분을 인용하는 정도지, 이 텍스트의 특징을 보여주고 사마천의 사상이나 관점과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을 직접 짚어가며 해설하는 부분은 6강과 7강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다른 고전 입문서와 비교해보자. 강유원의 '고전 강의' 시리즈도 일종의 고전 입문/해설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저자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텍스트가 형성된 역사적 배경, 사상사적 배경도 짚는 동시에 텍스트의 구조도 설명하면서도, 원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직접 인용하고 해설하는 방식을 통해 매우 밀도 높은 텍스트 독해를 한다. 그래서 독자는 원전 텍스트를 직접 읽고 그에 대한 강유원의 해설도 접하면서 독서력을 높일 수 있다.( 나 역시 그의 책을 통하여 호메로스, <신곡>, 마키아벨리, 데카르트, 논어 등과 같은 어렵다는 고전 텍스트를 직접 읽을 수 있었다.)

이건 어찌보면, 이 책이 "재미 위주"로 구성된 강의를 글로 풀어 쓴 것이라는 한계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쉽기만 하면 입문서의 역할은 끝났다고 보는 저자의 관점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본이 되는 강의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내용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그 강연을 글로 옮긴 이 책도 비슷한 구성을 취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쓰는 것이 이 저작의 목표이다. 물론 저자는 깊이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하지만, 저자의 포커스는 쉬움에 맞춰져 있다.

입문서하면 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반만 옳은 말이다. 입문서의 궁극적 목표는 독자로 하여금 원전 텍스트를 읽게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입문서에는 독자가 원전을 직접 읽을 때 꼭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알려줘야 한다. 여기에는 저술 동기와 의도, 텍스트의 구조, 역사적/사상사적 맥락, 해당 텍스트의 핵심 개념에 대한 설명, 핵심 주장 등이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읽어야 하는지, 입문서 저자가 생각하는 고전의 중요 부분을 원전 인용으로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따라서 고전 입문서는 평이한 서술과 쉬움이 미덕이 아니다.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지가 입문서의 탁월함을 가늠한다. 독자로서도 쉬운 해설서는 이후 독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 어렵더라도 기본에 충실한 책을 읽어야 더 어려운 책을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 따라서 쉬운 책 여러 권이 아니라 단 한 권의 책을 반복적으로 꼼꼼하게 독파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이 책은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만약 <사기>와 관련된 기본 사항들을 알고 싶다면, <사기>의 구조를 설명하고 '보임안서'를 통해 저술 동기를 설명하는 4강만 읽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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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7-13 08: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4강에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세상의 명문장인 <보임소경서>를 보면, 임안 또는 임소경任小卿이 ˝불측의 죄˝를 안고 있어서 사형선고를 받아 대기중인데 혹시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설명을 하고 있나요? 있다면 도서관에서라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물론 그 부분만입니다.

Redman 2022-07-13 14:26   좋아요 3 | URL
아쉽게도 그건 없습니다.. 책에선 ˝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에 대한 설명만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2-07-14 01:09   좋아요 2 | URL
후한서 <임안전>에
임소경은 주둔 사령부의 관리로 태자에게서 위조된 명령서를 받았으나 성의 군문을 닫고 추이를 관망하고 있었다.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에서는 임소경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으나 나중에 부하의 밀고로 연좌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만다. 관망하던 태도가 기회주의적인 처사로 판결받았던 것.
<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 40p에 인용하고 있네요.

사기 열전 권104에서 세번째 인물 임안편에도 나와 있습니다.

Falstaff 2022-07-14 07:33   좋아요 2 | URL
아, 한무제 때 사람으로 열전에도 나왔군요!
ㅎㅎㅎ 제가 열전 2권은 좋아하지 않아서 설렁설렁 읽었더니. ㅋㅋㅋ 지금 읽어봤습니다. 그레이스님, 답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