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저 도시락이지만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 에서 탁 하고 숨이 막혔다.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을 해 준 나기네 어머니 순자,

순자의 순은 어째선지 열흘, 이라는 의미의 순().

어째서일까?

 

탁 하고 숨이 막힌,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과 어째선지 열흘, 이라는 의미의 순을 이름으로 가진 순자. 이야기의 구조 한 귀퉁이에 애자라는 블랙홀이 있고 다른 한 귀퉁이에는 어째선지 열흘, 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순자가 있다. 열흘은 서수, 세기 위한 수. 하나, . 세기 위한 수. 그저 도시락이지만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 하나, , , 모종의 질서, 순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랑()만으론 안 된다는 말은, 실은 사랑 하나도 제대로 못해본 사람들의 상투적인 변명일 뿐이지만, 사랑만으론 안 된다. 하지만 사랑이 일 순위인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 순위는 밥 먹고 똥 싸기, 삼 순위는 남하고 심하게 다투지 말기 등등.. 사랑만으론 안되지만, 사랑이 첫 번째인 삶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애자는 순서가 없다. 순서 없음의 폭력.

 

 

#

앞뒤 하나도 안 맞는 말로 모세(나나 뱃속 아기의 정자제공자(?))에게 달려드는 소라, 그런 소라를 언니야, 라고 부른 것을 분해하는 나나. 소라와 나나는 애자를 엄마라 부르지 않고 나나는 웬만해선 소라를 언니라 부르지 않고.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나는 이 소설에 대해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소라와 나나처럼, 나기처럼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설 내용을 대상으로 삼는, 직접 가리키는 글을 이미 위에 써버렸으니 망했지만, 소설 내용은 한 마디 언급 없이 그저 내가 독서하는 사이에 어떤 행위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했는지를 스스로 관찰하여 썼다면, 아니 스스로 관찰한 결과와 그렇게 관찰했다고 착각한 결과들을, 그저 했던 순서대로 나열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고 아직도 쐐기처럼 심장에 박혀있는 무언가가 저지한다. 그건 꾸미고 싶은 욕심과 꾸밈이 가능하지 않음의 간극이고, 나는 그 간극 그대로 놓아두기로 한다.

 

 

#

황정은은 간혹 심연의 간극까지 나를 데려다 놓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