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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를 읽고서 느낀 위화감이 있었다. 하루키나 필립 로스가 전하는 작가들 삶의 모습은 성실성 그 자체다. 그것은 전에 한국 작가들이 모두 말술이었다는 얘기만큼이나 내게는 이상한 신화처럼 들렸다. 자격을 갖춘 자만이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꼭 성실하고 지적으로 떨어지지 않는 자들만이 뛰어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정도의 드로잉 솜씨가 없으면 걸작을 만드는 것은 아예 가망 없는 일일까. . 그런 심적 반발감이 없지 않았다. 성실성 이라는 단어는 번개같이 떠오른 영감 이라는 표현만큼이나 이상하다.

 

잘 그린 만화에 한창 빠져있을 때 만난 『이나중 탁구부』는 쇼킹했다. 당시의 내 눈에는 개판 오 분전의 만화였는데, 그런데도 빨려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요나라, 갱들이여』의 스타일이 문창과를 나온 깔끔한 인상의 인물들만이 작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세태라든가, 아니면 반대로 보헤미안식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져야만 문단에서 이름값 할 수 있다는 그 양극단적 신화 어딘가에서 빗겨나 있다고. 바로 그 지점이 내게 진정한 이름의 자유. 그 한 토막을 내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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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얘기는 접자. 소설의 화자를 상상해 봤다. 앞이마에 커다란 수술 자국이 있을 것 같은 순둥이 소년. 그런 이미지로 캐릭터를 잡아봤다(당연히 실제 화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건 내 머리 속에서 또 한번 꼰 이미지). 그렇게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화자가 자기가 쓸 수 있는 것을 쓴다. 거짓없이. 목적 없이. 욕심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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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지닌 큰 힘이 있다. 『사요나라, 갱들이여』는 사건을, 서사를 내부로 말아 주름을 지어낸 것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과잉의 사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문장들은, 각각의 주름들은 물방울처럼 독자의 마음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진 자리에 남은 무늬. 그건 슬픔이다. 그리고 해방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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