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특수성이라는 딱지가 망막에 붙어 있었나. 일상화된 테러, 분리장벽, 분노와 불안, 흥건한 피와 부러진 뼈들. 공포에 절은 눈빛.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이미지는 이런 것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소설을 읽기 전에 나 스스로는 그런 것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그 딱지는 의외로 착 달라붙어 있었던 거다.
이 소설의 도회적 분위기가 그래서 의외였다. 현실이 초현실을, 초현실이 현실을 침투하는 소설의 형식보다 오히려 뉴욕이나 서울, 파리나 도쿄. 세상의 모든 대도시 시민들이라면 느낄 만한 것을 이 소설에서 똑같이 느꼈다는 것이 의외로 다가왔다.
작가의 주된 관심사와 그 관심사들간의 평행성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한 원인 아니었을까. 첫 단편을 시작으로 주요 주제를 대략 나열해 본다면 - 심심함, 거짓말, 싱글맘이 된 딸, 위장결혼, 바람난 아내, 이혼 후의 외로움, 이혼 후 아들을 자주 못 만나는 아빠, 내 안의 나도 모르는 나, 항상 싸우는 부모, 향수에 미친 아내, 유산한 아내와 그녀의 남편, 고독, 투기를 통해 횡재를 노리는 사람들…
단편을 한 편씩 읽어나가다 보면 작가가,
이 모든 도회적 주제 하나 하나를 폭탄테러나 자살테러와 동급으로 보고 있음이 느껴진다. 아빠와 엄마와의 일상적 싸움으로 인해 누구보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아이가 지닌 문제가 폭탄테러만큼 똑같이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듯 하다. 라고 썼지만 실은 같다고, 나 또한 그리 생각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서운 것. 우리가 드라마에서 시트콤에서 개그프로에서 자주 접하는 도회적이고 현대적인 문제들과 폭탄테러로 누군가의 팔다리가 잘리는 것은 똑같다는 것. 똑같이 무서운 일이라는 것.
두 개의 이야기만 언급해 볼까.
표지 디자인에 등장하는 금붕어 이야기. 세르게이 고랄리크는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남자다. 그가 젊었을 적에 KGB가 집 문을 자주 두드렸다. 아버지가 시온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래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겁나 이주했다. 그에게는 금붕어가 한 마리 있는데, 이게 마법의 금붕어다. 그 금붕어는 세르게이의 두 가지 소원을 들어준 상태인데… 여동생의 암을 치료해 달라는 것과 동거녀의 아이의 기형적인 뇌를 치료해 달라는 것(얼마 지나 동거녀는 다른 남자에게로 갔다). 그런데 요나탄이라는 남자가 소원을 들어주는 금붕어가 있다면 어떤 소원을 빌겠냐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묻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세르게이의 집을 방문하고… 세르게이는 그가 마법 금붕어를 낚아채기 위해 왔다고 생각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금붕어는 마지막 한 가지 소원을 요나탄을 다시 살리는데 사용하라고 종용한다. 결국 그는 우발적 살인을 없던 일로 하는 소원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그냥 금붕어. 다시 살아난 요나탄(그는 자기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영원히 모르겠지만)이 그에게 묻는다. 물고기에게 어떤 소원을 빌 건가요? 세르게이는 아무 소원도 빌지 않을 거라고. 그저 커다란 유리병에 물고기를 넣어 선반 위에 올려두고는 하루 종일 얘기를 할 거라고. 아무 얘기나 상관 없다고, 스포츠든 정치든. 아무거나.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 금붕어에게 무슨 소원을?)
세르게이에게 고독은 KGB만큼 무서운 것. 그렇게 된 것이다.
남편이 죽었다.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개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남편을 묻은 다음날 식당을 열려고 한다. 아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그래도 그녀는 연다. 역시 손님은 들지 않는다. 이제 영원히 식당 문도 닫아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스무 명 가까운 러시아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그러고는 자기들이 싸 온 음식을 식당에서 그녀와 함께 시끌벅적 마시고 먹는다. 그러고는 이제 그녀에게 요리를 시켜 또 마시고 먹는다. 손님으로 온 남자가 마지막으로 지폐를 지불하고 묻는다. 남편 분은 언제 돌아오십니까. 아내를 혼자 두고 갔네요? 그러면 안 되는데.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눈물을 참는다. (애도하는 자들의 식사)
이 초현실적인 식사 이야기를 읽은 나도 안간힘을 써야 했다.
‘크고 파란 버스’는? ‘완전히 혼자는 아닌’은? ‘문예창작’은 어떤가? 내가 이 단편들에서 쓰라린 아픔을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여기 나, 바로 여기 내가 아는 사람들의 삶의 단면들. 저 멀리 모래 먼지로 희뿌연 도시의 자살 폭탄 테러가 실은 서울 한 복판에서도 다른 양상으로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진실 때문 아닐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면? 아무도…